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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잉여의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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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는 주로 책에 관하여 다루고 있지만, 다른 분야도 애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잉여입니다.

JHALOFF에 대한 발음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쟐롭, 쟐로프, 자알로프 등등 원하시는데로 부르시면 됩니다.


사실 JHALOFF란 아이디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러시아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글자들의 나열입니다.
물론 각각의 글자엔 의미가 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짧은 잡념: 사무엘 베케트, <엔드게임> 독서일기-희곡

<불행보다 웃긴 것은 없어, 내가 보장하지. 그래, 그래, 그건 세계에서 가장 익살맞은 거야. 그래서 시작할 때, 우리는 웃고, 우리는 의지를 갖고 웃지.
하지만 그건 언제나 같은 거야. 그래,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듣는 웃긴 이야기처럼, 아직도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웃지 않는 것처럼.>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은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반복될 것임을 암시했다면, <엔드게임>에선 그 이후의 일, 고도를 기다리는 수많은 막이 흐른 후의 그러한 세계를 다룬다.

베케트는 원래 <고도를 기다리며>를 3막으로 기획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막까지 쓰면서 그는 3막이 필요없음을 느꼈다. 2막까지 완성된 시점에서 이미 관객들에게 2막 이후에도 그들이 계속 고도를 기다릴 것임을 암시됨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1에다가 계속 1을 더하는 행위를 계속하면, 무한에 가까워지듯 말이다.

그러나 <엔드게임>에서 베케트는 그러한 노력조차 할 필요을 느끼지 못한다. 0에서 1이 된 순간, 이미 2까지 가는 무한한 시간이 흐름을 그는 느낀 것이다.


<끝은 시작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넌 계속해.>

이 이야기는 이미 의미불명의 멸망한 세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생존자는 단 4명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론 단 두 사람의 투쟁이 그 중심이다.
멸망하였으나 모든 것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폐허 속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햄, 그리고 그가 거두고, 키운 시종 클로브. 그 외 햄의 부모이자 쓰레기통에서 다리 없이 사는 넬과 네그가 있지만, 햄은 그들을 사실상 부모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은 <엔드게임>의 세상 속에선 무의미하다. 곧 클로브와 햄의 관계 자체가 곧 하나의 세계가 되며,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이미 멸망이 확정된 세계의 멸망이 완전히 확정되기 때문이다.


<난 당신이 내게 가르친 단어들을 사용해요. 만약 그것들이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다면, 내게 다른 걸 가르쳐줘요. 아니면 내가 침묵하게 놔두든가.> - 클로브

<네놈은 내게 언어를 가르쳤고, 내가 얻은 이익은 저주하는 법을 내가 안다는 거지. 내게 네 언어를 가르친 네놈은 저주나 받아라!> - 캘리번,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마치 프로스페로에게 항의하는 캘리번의 그 대사가 연상되듯, 클로브는 햄이라는 유사 부모, 혹은 주인 아래에서 지배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면모가 있다.

햄은 장님이며, 몸을 움직일 수 없고, 클로브는 언제나 서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왜 떠나지 않느냐는 햄의 질문에 클로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대답하며, 자신을 왜 곁에 머물게 허락하냐는 클로브의 질문에 햄은 더 이상 사람이 없어서라고 답한다.

이렇게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를 두 사람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극의 핵심은 두 사람의 결별이 언제 이루어질까이다. 늙은 햄은 늘 진통제를 찾으며, 클로브는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필요한 것을 훔치고 달아날 궁리만을 한다.

<네 머리를 써봐, 어서, 네 머리를 쓰라고, 넌 이 땅 위에 있어, 그리고 거기엔 어떤 대책도 없어!>

그러나 베케트가 그리는 종말론적 세계엔 어떠한 답이 없다. 끝은 예정되어있지만, 그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게 만들 수도 없다. 그저 무의미하게 기다림과 또 기다림뿐.

<모든 삶들에서, 같은 질문들과 같은 답들.>

<오래된 막판 오랫동안 져왔고, 놀고 지며, 계속 지고 있어.>

승부의 끝, 체스에서 이미 승부가 났지만, 체크메이트 이전까지 무의미한 왕의 도피를 해야하는 그러한 게임처럼, 멸망한 세상의 왕 햄은 무의미한 몸짓을 반복하며 극 위에서 극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계속한다.


<Me - to play. Old Stancher!

내가 - 놀아볼까. 오래된 방해꾼을!>


햄의 첫 등장 대사는 여러모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대사다. 그는 다시 한 번 놀고자 한다,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몰락한 왕을 연기하고자 한다. 이미 너무나도 오랫동안 상대해왔기에 친구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오래되고, 친숙한 방해꾼과 함께, 혹은 자신이 스스로 그 방해꾼이 되거나.

고도도 더 이상 오지 않는 그러한 세계. 그럼에도 베케트는 이미 초반부터 여기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준다.

<불행보다 웃긴 것은 없어, 내가 보장하지. 그래, 그래, 그건 세계에서 가장 익살맞은 거야. 그래서 시작할 때, 우리는 웃고, 우리는 의지를 갖고 웃지.
하지만 그건 언제나 같은 거야. 그래,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듣는 웃긴 이야기처럼, 아직도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웃지 않는 것처럼.>

극에서 유일하게 안식인 '죽음'을 맞이한 넬은 말 그대로 불행에 대해 웃고, 또 웃는 법을 깨달았기에, 작가에 의해서 안식을 맞이하고, 퇴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어떠한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할 것이다, 마치 불교 세계관의 끝없는 윤회처럼.


왕은 모든 것이 반복될 것을 암시하며 퇴장한다. 아니, 잠시 무대 위를 떠난다.

<오래된 방해꾼....넌...남아있어.>



감상 <혁명의 아이오너> - '하지만 어떻게 다룰지 몰랐다' 감상-라이트노벨



페터 바이스의 희곡 <사드 후작의 지도 하에 샤량통 요양원 수감자들이 공연하는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 혹은 <마라/사드>는 혁명에 대한 마라와 사드, 두 인물의 투쟁을 그린 희곡이다.

사드가 그려내는 마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혁명을 발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다룰지 몰랐다.'

실로 그러하다. 우리에겐 <혁명의 아이오너>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이 담긴 이야기는 어떻게 다뤄져야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이 책을 굉장히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외계인의 지구 침공 덕분에 침공을 빙자한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졌고, 그 디스토피아에서 혁명을 일으키려는 테러 조직과 '평범한' 소년이 만나서, 어떻게 사회에 대한 저항과 혁명을 일으키는가이다. SF 메카닉 판타지라는 괴이한 혼종과도 같은 소개 문구에 따르자면, 어찌되었든 막판 끝내기 용으로 거대 로봇도 한 번 등장해주고 그런다. SF와 판타지라니 그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공은 과거 외계인 침공으로 멸망한 도시 출신이고, 그렇기에 트라우마로 '사람이 죽는 광경'을 절대로 못 본다고 본인이 여러 차례 강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여러 번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주인공과 메인 히로인이 만나기 위한 필연적인 전개를 위하여 주인공은 소꿉친구와 등교하다 쫓기는 히로인을 본다. 총을 들고 즉결처형을 받으려는 광경 때문에 도와준다.

주인공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한 괴이한 심문에서조차 사람 좀 죽을 수도 있지 않냐, 란 히로인의 거짓된 연기에 히로인에게 '살의'를 느끼며 멱살까지 잡을 정도이니 주인공은 참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박애주의자일 것이다.

그런데 추격전에서 소녀가 권총과 단검으로 쫓아온 자들을 망설임없이 제거하는 것엔 아무 말 안 하더라. 주인공의 관점에서 사람은 미소녀만 해당되는 듯 싶다.

아무튼 그 직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분량을 채우기 위한 갈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지하조직에 들어간다. 기괴한 만담 이후, 테러 가담 제의에 거절을 한다. 여기까진 좋다.
그랬더니 테러리스트 수장이 다시 보내주더라. '감시'를 붙이긴 했는데 당연히 히로인과의 호감도 쌓기 용이고, 아무튼 테러 조직이란 놈들이 감금하는 것도 아니고, 걍 보내준다.

그 후에야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찌하여 이러한 일들일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대체 왜일까, 왜 기본적인 세계와 히로인들을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런 것이 히로인을 위해서 작가가 세계를 포기하는 세카이계인 것인가, 정작 그 구한 히로인마저 무가치한데도? 

단순히 분량을 위한 사건을 만들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히로인과의 관계 쌓는 것이 꼭 정해져있기에(주인공과의 동거라든가) 어쩔 수 없이 부조리한 세계를 그려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설명충 대사들, 주크박스처럼 떠드는 기괴한 주인공, 모순되는 사상과 행동, 단순히 '귀여움'을 보여주기 위해 부조리하게 희생되는 세계, 패션-혁명과 사상.....

아니, 내 의문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이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세계의 부조리함을 나타내고, 그렇기에 그 부조리함에 저항하라는 작가의 메시지일지.
아무튼 혁명의 아이오너는 혁명에 관한 메카닉 SF판타지 물이다. 혁명에 관해 무언가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혁명'의 무가치함을 비웃기 위해서가 아닐까, 마치 <마라/사드> 속 사드처럼?

'자연의 침묵에 맞서 나는 행동을 사용해 
거대한 무관심 속에서 나는 의미를 발명하지 
나는 냉정하게 지켜보지 않아 나는 참견해 
그리고 이것과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나는 그들을 바꾸고 그들을 개선시키기 위해 일해.- <마라/사드>

우리는 거대한 글의 부조리 속에서 이것과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당신들을 살해할거야! 
언제 당신들은 보는 법을 배울거야! 
대체 언제 당신들은 일어서는 법을 배울거야!' - <마라/사드>

아니면 거대한 폭발이 우리가 일어설 수도 없게 만들 것이다.

'살고 싶나?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혁명을 일으켜라!' - <혁명의 아이오너> 中

<마라/사드>도 부조리극에 속하고, <혁명의 아이오너>도 부조리 소설에 속하듯, 부조리끼린 무언가 통하는 결론이 있나보다.

감상 <가출천사 육성계약> 1권 - 아재 라노베 써요? 감상-라이트노벨


<가출천사 육성계획> 1권이다.

읽으면서 제일 느낀 것은 다른 한국 라이트노벨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글의 세계관은 몬스터들이 등장하여 좀 많이 붕괴된 한국 사회에다가 그걸 사냥하며 사는 헌터들, 그리고 그 헌터들에게 힘을 주는 초월적인 존재인 천사들이 있는 세상이다.
주인공은 어릴 적에 '메타트론'이란 투명드래곤 천사를 만났었고, 시체팔이를 하며 사는 중이다.

일반적인 라노베라면 주인공을 10대로 설정하든가, 메타트론이 초반에 직접 등장하여 주인공과 같이 집에 동거하다 무언가 관계를 위협하는 몬스터나 천사가 등장 후, 각성-배틀 후 다시 일상으로 회귀, 그리고 다음 권에서 계속과 같은 전개를 취할 텐데

가출천사는 약 50여 쪽이 사실상 과거의 일이나 프롤로그, 즉 10대 때의 잠깐의 만남에 묘사하고, 바로 10년 후로 건너뛰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지 히로인의 본격적인 등장도 사실상 중반 이후부터고, '일상' 파트도 위기 직전의 폭풍 전야를 위한 분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건 이후 잠깐 쉬어가기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다.

몬스터....헌터들....게임적 시스템....

그렇다 가출천사는 라이트노벨보단 조아라-문피아와 같은 웹소설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고, 그것도 아재들이 좋아하는 익숙한 갑질물의 냄새가 나는 낯선 라이트노벨이다.
아재...라이트노벨 써요?

라이트노벨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웹소설을 재밌게 읽는 사람들이 더욱 좋아하고 친숙할 것 같은 내용이며
못 쓴 것은 아니지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무엇보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성의 올드-함이 느껴지는데, 이건 내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므로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라고 받아들이겠다.

종합하자면 라이트노벨의 탈을 쓴 웹소설이다. 물론 이게 그저 패션-라노베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것이 분명 다른 라이트노벨처럼 보이게 노력한 점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그게 성공적이었는진 잘 모르겠다,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감상 <종언의 나이트메어> - 끝...끝...끝 감상-라이트노벨


<종언의 나이트메어>는 브이노벨에서 나온 라이트노벨입니다. '종언'이 들어가네요. 크..큭 나는 어.둡.다.를 풍기고 있습니다. 물론 일종의 컨셉입니다.

프롤로그가 시작됩니다.

감금된 죄수들. 틀에 박힌, 그러나 굳이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게 만드는 대사들을 계속 뱉어내는 관리인. 말 그대로 떡밥을 앞에서부터 던져주겠다란 의미인지, 아니면 세계관을 대놓고 보여주기 위한 설정인지, 둘 다인지, 아무튼 말 그대로 설명충적인 대사들. 

그리고 본격적인 시작.

프롤로그 자체는 굳이 필요했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떡밥들이야 다른 방식으로 던지면 되겠고, 굳이 내가 저 장면들을 읽어야하는가란 의문이 먼저 앞서고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사자가 울부짖는 그런 장면들 있잖아요, 아니면 디즈니 성이 나오든가, 제작사 로고 뜨는 그런 장면들. 강제적으로 넘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분입니다.

아무튼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이상한 실험실에서 깨어난 주인공. 왜 자신이 이런 곳에 갇혀있고, 왜 주변이 폐허인지 의문에 빠진 '생존자' 다섯 명.

보통은 그냥 다섯 명을 한 장소에 깨어나게 할 텐데 작가는 분량과 사건을 늘이기 위한 놀라운 방법을 썼습니다. 첫 챕터의 절반은 드래곤볼 찾듯, 다섯 명의 파티를 전부 모으기 위해 찾는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 억지로 넣은 개그씬들과 기타 등등 언급하기도 귀찮은 것들이 대부분이군요. 그냥 다섯 명이 동시에 깨어나고, 주변 탐색하는걸로 해도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낯선 장소를 묘사하고, 숨겨진 무언가를 찾고, 기괴한 것들과 만나고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포스트아포칼립스에 생존한 인류가 적들과 맞서는 일종의 능배물입니다. 읽고 싶은 사람은 읽겠죠.

이 책은 상당수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분명 포스트아포칼립스일 텐데 왠지 모르게 머릿속은 꽃밭인 아이들, 신파조의 어색한 대사들, 너무나도 많은 필요없는 부분들.

물론 종말물이라고 해서 개그가 없어야한다는 법은 없죠. 그런데 독자가 어두운 분위기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듯 개그를 즐기는게 아니라 부조리적 장치인가하고 의심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없는게 좋지 않을까요.

라이트노벨이니까 라이트하게 써야한다, 란 모종의 강박관념이 지배하고 있는게 아닐까 의문이 좀 듭니다. 어두운 쪽도, 밝은 쪽도 어중간합니다. 

일단은 생존자가 다섯 명이나 되다보니, 난 이 5명 모두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알리겠어라고 외치는 듯, 서로 돌아가며 대사들이 배분되는데, 차라리 몇 놈은 침묵 좀 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무의미한 부분을 전부 잘라내고, 대사도 줄이고, 신파조도 없애고, 이런저런 강박관념도 좀 벗어나면 어떻게든 2권은 그나마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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