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과 분노>,시간의 환영에 속박당한 백치들의 이야기 독서일기-소설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 <음향과 분노>입니다.

남부 명문 집안 콤슨 가의 몰락을 천천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목 '음향과 분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저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삶은) 음향과 분노로 가득찬 어느 백치가 읊조리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 

역사적으로 남북전쟁 이후, 남부 사회는 서서히 몰락했습니다.

애당초 흑인 노예 부려먹으며, 대농장에서 귀족 생활하던 애들이고,
과거의 환영에만 속박되어 몰락하는 경우가 많았죠.

작가인 포크너는 콤슨 가를 통하여, 이런 시대상을 아주 잘 표현합니다.

콤슨 가는 한마디로 막장가족입니다.

아버지 제이슨은 비관주의자에 술주정뱅이고, 어머니 캐롤린은 자신의 친정인 배스콤 가문 드립이나치면서, 하루종일 우울해하고,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백수 엄마이며,

장남 퀜틴은 하버드에 다니는 지식인이지만, 전형적인 남부 귀족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차남 제이슨은 냉혹한 현실주의자,

막내 벤지는 말도 못하는 백치입니다.

그외 중요 흑인 하인 딜시를 비롯한 여러 흑인하인들이 있군요.

이 책의 가장 중심인물은 콤슨 가의 유일한 딸, 캐디입니다.

총 4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각각 벤지, 퀜틴, 제이슨의 의식을 다루지만,

이 모두가 집착하는 소재는 캐디입니다.

벤지에게 캐디는 엄마와 같은 존재이며, 퀜틴에게 캐디는 가문의 명예, 제이슨에게 캐디는 출세의 수단이자 원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캐디는 이런저런 자신을 향한 가족의 시선을 견디지 못 하고, 삐뚤어져, 소위 말하는 '걸레'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사생아 하나 낳고, 결국 콤슨 가를 떠나게 됩니다.

가문의 명예와도 같던 여동생의 '순결'이 박살나버리고, 여동생의 결혼과 자신의 하버드 입학을 위하여 남동생 벤지의 땅을 팔았던 일 등,
여러 일이 겹치자 이를 견디지 못한 퀜틴은 결국 스스로 물에 빠져 목숨을 끊어버리게 되고요.

캐디가 낳은 사생아 '퀜틴'은 서서히 몰락하는 콤슨 가에서 제이슨과 다투며 살다가,
결국은 제이슨이 모은 재산을 들고, 야반도주 합니다.

줄거리는 사실상 이것들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의식의 흐름'기법에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은 단순히 기법 이상을 넘어,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하여, 각 장의 화자들은 시간상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자신의 기억'으로 이야기 진행을 하게 됩니다.

사실상 이 책에서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콤슨 가의 '백치들'은 전부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힌 백치들에 불과하니까요.

벤지는 이미 자신의 누이 캐디가 떠난지 한참 지났지만, 언제나 캐디와의 추억만을 생각합니다. 그는 현실의 어떤 사건이 일어나던, 
자동적으로 캐디와의 추억을 연상합니다.

퀜틴은 하버드 지식인이자, 충분히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남부 귀족집안의 명예라는 과거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동생 캐디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캐디와 근친상간을 범했다는 거짓말을 한채 말이죠.

현실주의자 제이슨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홀로 몰락하는 콤슨 가를 일으키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지만, 
어린 시절 캐디와의 악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캐디를 닮은 캐디의 딸 '퀜틴'을 학대합니다.

콤슨 가의 아버지 제이슨이나 어머니 캐롤린 모두 과거 남부 귀족 집안의 기억에 사로잡혀 아무런 행동도 못 하는 유령에 불과하고요.

이는 아버지가 아들 퀜틴에게 자신의 시계를 주는 장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아버지 제이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에게 지금 희망과 욕망의 무덤을 준다..(중략)... 내가 너에게 주는 이유는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지금, 
잠깐동안이라도 잊어버리고, 너의 모든 힘을 시간을 정복하려는데 쓰지말라는 것이다.
어떤 전투도 승리로 끝난 적이 없기 때문이지. 그들은 싸운 적도 없단다. 전장은 사람에게 어리석음과 절망만을 상기시킬 뿐이고,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환영이지."

충실한 흑인 하녀 딜시는 이런 콤슨 가의 몰락을 천천히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럼에도 몰락한 콤슨 가에서 아예 인간적인 면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딜시를 비롯한 흑인 하인들은 그들의 백인 주인보다 
인간적이라 할 수 있으며,
콤슨 가의 막내 백치 벤지는 작중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인간입니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가장 순수한 그가 정작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백치란 점이죠.

작품은 벤지가 꽃을 떨어뜨리며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과연 이걸 긍정적으로 봐야할지, 부정적으로 봐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벤지 또한 누구보다도 순수하며, 누구보다도 과거의 환영에 갇힌 죄수니까요.

3장이 읽기 좀 지루했지만, 읽는데 비교적 즐거운 책이었습니다.

특히 1장이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백치 벤지가 바라보는 세상 모습은 굉장히 감각적이었습니다.

포크너의 다른 작품들은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읽겠죠.

어쨌든 이것으로 음향과 분노로 가득찬 백치들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덧글

  • 9625 2012/01/13 23:37 # 답글

    이 책은 저에게 충격과 공포의 학점을 안겨준 악마의 책입니다. 지금도 책장에 The Sound and the Fury라고 무시무시한 제목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특히 2장에서는 제 스스로가 미쳐서 시간감각이 사라지는 경지에 이르렀었지요...결론은...벤지 개객기!!!!
  • JHALOFF 2012/01/14 15:20 #

    벤지 욕하지마세요, 불쌍한 고자인데, 고, 고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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