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바틀비와 바틀비들>, 작가의 죽음 독서일기-소설


개인적으로 책을 살 때 충동구매는 비교적 적은 경우입니다. 만화책 살 때는 몰라도, 적어도 문학책 살 때,
충동구매해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늘 서점에 간 근본적인 목적은 새로 나온 (가격이 애미나이없는) 쿤데라 전집 구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틀비와 바틀비들>이란 책이 딱-!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실 처음에는 제목을 <바틀비와 바틀바틀>로 봤습니다.

어쨌든 '바틀비'란 단어 하나 때문에 책에 손이 갔습니다.

바틀비는 멜빌의 걸작 단편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I would prefer not to."란 희대의 명대사를 남발하는 굉장히 특이한 친구죠.

책을 몇 번 훑어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 바로 구입했습니다.

책 자체의 구성은 특이한 편입니다.

스스로를 '행복한 남자'라 칭하는 익명의 화자는 문학의 역사에서 '바틀비 증후군'을 가진 작가들을 추적하고,

그들에 관한 주석들을 썼으며, 이것이 사실상 소설의 전부입니다. 군데군데 이 '행복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책의 대부분은 '바틀비 증후군'에 걸린 작가들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보르헤스를 연상시키는 글쓰기였습니다.

즉, 작가가 말하는 '바틀비 증후군'에 걸린 작가들 가운데 완벽하게 허구인 사람들도 있고, 일화가 허구인 경우도 섞여있다는 점이죠.

'바틀비 증후군'은 필경사 바틀비가 글쓰기와 모든 것을 거부했던 것과 연관되있습니다.

즉, 역설적이게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란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바틀비 증후군'입니다.

책은 랭보나 샐린저 같이 작품활동을 한 이후 아예 절필을 했거나, 한 편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작가가 된 자들 등
여러 바틀비 증후군 환자들을 다룹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주석들을 쓰는 '행복한 남자' 본인도 바틀비 증후군에 걸린 환자이며,
그렇기에 그는 이 '바틀비 증후군'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죠.

여러 작가들의 일화가 우선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들어보지 못 한 작가나 아예 허구의 작가들도 비롯하여 카프카, 베케트, 톨스토이, 와일드, 랭보 등등
여러 대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작가의 일화는 플로베르가 '가르송'이란 제목의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결코 쓰지 못 했고, 이 '가르송'은 쓰이지 못한 책임에도
평생 플로베르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는 일화였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겪는 이 '바틀비 증후군'이란 병은 사실 어떠한 공통적인 부분을 찾기 힘듭니다. 작중 화자도 이 점을 인정했고,
실제 사례의 작가들의 경우도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면 제각기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도 결국 이러한 바틀비 증후군이란 본질적으로 '문학에 대한 회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가? 과연 문학이 가치있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제 스스로 답을 해볼려고 했지만,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저의 경우는, 나 스스로가 문학 작품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정도 밖에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이에 대해 마음에 드는 답은 책에서 찾을 수는 있었습니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일화라고 하는군요.

"그래, 그래. 하지만 내가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데요?" 깜짝 놀란 제자들이 물었다. 그러자 루카치가 대답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모른다는 데 있다네."

원래 제목이 '바틀비와 친구들'이라는데, '바틀비와 바틀비들'로 바꾼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응24보니까 판매량이 저조한 것 같던데 아쉽네요. 괜찮은 책인데.

마지막으로 책 뒷면에 나와있는 바틀비들의 대답을 인용하며 끝마치겠습니다.

‘바틀비 여러분, 도대체 왜 글쓰기를 거부하는 겁니까?’라는 물음에, 바틀비들은 대답한다.

후안 룰포“내 책에 쓰인 이야기를 해준 셀레리노 삼촌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보비 바즐렌“나는 이제 책이 쓰일 수 없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책은 주석이 부풀려져서 결국 책으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

클레망 카두“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가구라고 느꼈는데,
내가 아는 한 가구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하트 크레인“쓰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글쓰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마르셀 뒤샹“단어는 어떤 것을 표현할 가능성을 전혀 갖지 못한다.”

오스카 와일드“나는 삶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글을 썼다.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금은 더 이상 쓸 게 없다.”

비트겐슈타인“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사뮈엘 베케트“모든 것은 허위고, 아무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다.”

쥘리앵 그라크“소설 쓰기가 내게는 부족한 엄청난 에너지와 힘,
신념을 요구하기 때문에.”

톨스토이“문학은 저주다.”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덧글

  • 작고예쁜아이 2011/12/05 14:2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 <바틀비와 바틀비들>의 편집자입니다. 책을 내어놓고 인터넷 기사가 난 게 있는지 찾아보다가 이렇게 올려주신 서평 읽고 감사한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책 제목을 저렇게 정해놓고도 한참 고민을 했는데요, 한눈에 책 제목을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더라고요. ㅠㅠ JHALOFF 님처럼 바틀비와 바틀바틀 외에도 바틀비와 비틀비틀, 바틀비와 바들바들 등 다양했어요. 그래서 <바틀비와 바틀비들> 마감에 쫓길 때 제 메신저 알림말이 '비틀거리거나 바들거리거나'였던 적도 있었고요. (ㅋㅋㅋ) 그런데 책 제목이 마음에 드신다니 감사하고 뿌듯하네요! JHALOFF 님 말씀처럼 이 아이의 판매가 매우매우 잘 되는 건 아니지만(ㅠㅠ), 한 분이라도 즐거운 독서 되셨다면 편집자로서 가장 행복한 일일 테니까요. ^-^ 앞으로 더 좋은 책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책과 함께 훈훈한 겨울 보내세요.♥
  • JHALOFF 2011/12/05 23:26 #

    오, 서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 님께서 이렇게 댓글 달아주시니 영광이네요. 앞으로도 더 좋은 책들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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