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악령> - 나는 수꼴이다 독서일기-소설


만일 도스토예프스키(=도끼) 형님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이문열과 비슷한 일을 겪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수구꼴통’에다 조중동 비스무리한 신문에 투고했었고, 소위 말하는 수꼴 프로파간다도 썼으니까요. 분명 열 받은 진보 세력들이 도끼 책 장례식을 치렀겠죠.


도끼가 수구꼴통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정통 슬라브주의 극우수구꼴통입니다. 도끼느님의 기구한 삶을 보면 감옥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은 열혈 진보 청년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사형선고 + 시베리아 유형 크리를 얻어맞으니 사람이 수구꼴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감옥은 무섭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악령>은 도끼의 <나는 수꼴이다> 간증 버전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소설은 그 당시 러시아 허무주의자와 무신론자, 공산주의자들(좀 더 좋게 표현하면 러시아를 개혁시키려는 젊은이들)을 까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구상되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소설적’ 완성도로 보면 굉장히 덜 된 소설입니다. 원래 도끼 소설이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퇴고가 덜 된 느낌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이 바뀌거나, 묘사가 서로 어긋나거나, 연도 헷갈리거나 등등. 줄거리 자체도 산만하죠. 전체적인 줄거리는 그 당시 러시아에 실제로 일어났던 네차예프 사건을 모델로 합니다. 진보 모임을 탈퇴하려는 자가 밀고할 것이 두려워 그를 죽인 사건이 네차예프 사건이고, 소설 <악령>에서는 이름도 무서운 ‘5인조’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주도 아래 샤토프의 살해가 이루어집니다.


E.H.카의 도끼평전에서 <악령>을 도끼 최고의 풍자소설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겠스니다. 그 당시 러시아 상황은 잘 모르니까요. 그래도 자신에게 돈도 빌려준 작가 투르게네프를 ‘까르마지노프’란 작가로 풍자해서 까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보일 정도로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소설 자체는 희극적이며 비극적입니다. 몇 개의 비극적인 장면을 제외하면, 진지해야할 장면해서조차 왠지 모르게 희극적인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소설 속 끼릴로프의 자살 장면조차 매우 희극적이고, 쓰쩨반 베르호벤스키의 최후조차 죽기 직전의 장면을 제외하면 희극적입니다.


여러모로 부실부실한 부분이 보이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는 매력은 바로 인물들입니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넘사벽적으로 도끼의 최고작품이지만, 인물적인 측면에서는 이 소설이 가히 최고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찌질하거나 악한들이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5인조의 인물 하나하나까지 전부다요. 러시아 슬라브주의자 샤토프는 또 어떻고요? 아, 단 한 가지 단점은 도끼 장편 중에서 여성 비중이 가히 0에 수렴합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스타브로긴과 키릴로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 진짜 전 모든 도끼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이 두 명을 제일 사랑합니다. 엉엉 날 가져요-!!!


키릴로프만큼 인간적인 캐릭터가 또 있을까요?? 그의 인신사상, 자살을 통한 신으로의 길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은 캐릭터 자체입니다. 개인적으로 <백치>의 미쉬킨이 살짝 맛간 버전이라고 보고 있어요. 아, 진짜 키릴로프의 최후는 너무나도 희극적이면서도 너무나도 비극적입니다. 아, 진짜 이런 캐릭터 만든 도끼란 사람, 야속한 사람. 좀 더 많이 만들지 그랬어.


스타브로긴에 대해서는 뭐라고 표현해야할까요? 미쉬킨이 도끼가 창조한 최고의 선이라면, 스타브로긴은 도끼의 최고의 악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감성적으로 미워할 수 없고, 끌리는 악이죠. 분명 그는 난봉꾼이며, 성격 괴팍하고, 허무주의자며 소녀나 여자를 후리며 버리기도 하는 악한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인물이 있으면 절대 좋아할 일은 없겠죠. 그러나 분명 도끼조차 이 인물에게 홀린 것이 소설 내내 보입니다. 애당초 스타브로긴이란 인물 하나 때문에 악령이 프로파간다에서 정상적인 소설로 바뀌었으니까 그 마력은 알 수 있죠. 모든 것을 홀리고, 자신마저도 홀리는, <악령>이란 제목이 가장 어울리는 등장인물이 바로 이 스타브로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분량은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다음으로 가장 긴 소설이지만, 도끼의 모든 장점과 단점이 극대화되서 들어난 소설이 <악령>이라고 봅니다. 다 필요없고, 그냥 인물들만 믿고 읽으면 됩니다. 아니, 그냥 키릴로프랑 스타브로긴만 믿고 따르면 되요.


이런 리뷰 읽을 시간에 차라리 <악령>을 읽으세요. 정말입니다. 이번 리뷰는 좀 너무 많이 흥분해서 썼네요. 어쩔 수 없어요. 지금 HIGH한 상태입니다. 다음은 아마도 <미성년>이겠죠. 도끼의 5대 장편 중 갠적으로 젤 재미없고, 이질적인 작품이지만, 읽어야죠. 다음 기회에.


추신: 근데 진짜 도끼가 한 10년 정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끼가 죽던 해 황제 암살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수구꼴통 도끼라면 분명 이 사건 보고서 꼭 소설을 썼을 텐데. 생각해보니 까라마조프 2부 자체가 ‘황제암살’에 관한 것이라는데. 아 아쉽다. 아 도끼 이 야속한 사람.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덧글

  • 비정규인생 2012/03/23 13:22 # 답글

    스타브로긴은 19세기 낭만주의 영웅 분위기가 풍기는 인물인것 같습니다. 매력적이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탯으로도 아마 최고일꺼에요.

    투르게네프 디스한거는 진짜 ㅋㅋㅋ 투르게네프를 미워한게 도스토예프스키 스스로가 이런 놈한테 돈을 빌렸다니 젠장 이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ㅋ

    도스토예프스키의 불가사의한 천재성중 하나라고 보는건 죽을때까지 활활 타올랐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외모야 겉늙었지만 내면은 죽을때까지도 20대의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JHALOFF 2012/03/24 22:53 #

    사실 투르게네프는 빌려달라는 돈 반만 빌려줘서 더 그랬을 수도.

    진짜 스타브로긴이 최고죠.

    도끼가 좀 더 장수했으면 좋으련만.
  • Wachtraum 2013/08/22 00:32 # 답글


    오, 이글루스로 도스토 빠질이 가능하다니...;;;
    태그로 검색해서(이제야;;;) 아주 효율적으로 이글루스 스토킹 중인데요. (오늘 댓글 폭주합니다...)
    얼마 전에 <악령>을 다시 읽었거든요! 그래서 감흥이 생생ㅋ (하지만 이 글은 2011년;;; )
    <백치>의 나스타샤 같은 캐릭 생각하면 확실히 <악령>은 여자캐릭이 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르바라 빼뜨로브나(스따브로긴 엄마)가 있잖아요. 리자는 좀 아깝긴하고..
    다샤는 저에게는 비호감이긴 함;;; 그럼에도 도스토만큼 여자캐릭 잘 그리는 남성 작가도 드물...
    다는 생각과 함께 <안나 까레리나>가!

    단 한 문단만으로도 인물을 다 훑어내는 미친 재주때문에
    아무리 구성이 엉성해도 그런 건 눈에도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신들린 상태가 느껴져서 형식을 뚫고 나가 버렸다고 할까요.
    보르헤스 단편 중에 과거의 자기를 만나는 내용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직 소년에 불과한 자기 자신이 도스토예프스끼 운운하자
    약간 비웃는(?), 그래. 아직 넌 거기로구나. 뭐 이런..뉘앙스가 살짝 있어서,
    아,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이 쌓이면 도스토는 별로가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아직 교양이 덜 쌓였는지, 읽을 때마다 감흥이 출렁ㅋ

    각설하고, 왜 뜨로피모비치가 '결코 값싼 만족과는 바꿀 수 없는 우수'를 가진 스따브로긴을 묘사하면서
    '해리왕자'라고 하잖아요? 셰익스피어 <헨리 4세>에 나오는 왕자라고,
    제가 그건 안 읽어 봐서;; 혹시 어떤 면에서 그런 건지 감이 있으신지요?
    (오래된 글에 죄송함다...)
  • JHALOFF 2013/08/22 07:43 #

    할 왕자 같은 경우는 헨리 4세의 아들이자 미래의 헨리 5세가 될 아들인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일종의 돌아온 탕자 처럼 묘사됩니다. 극 시작에는 술집에서 폴스타프라는 일종의 희극적 소악당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행동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키아벨리적인 캐릭터처럼 행동하는데, 헨리 4세 1부 끝에서는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를 도와 반란을 진압하고, 점점 왕으로 향한 행보를 보여주죠. 개인적으로 뜨로피모비치는 헨리 4세 1부의 왕자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거 같습니다.

    술집이라는 어두운 세계에서 하층민들과 술을 마시고, 그렇게 선하지는 않고, 악한 농담으로 상대를 조롱하기도 하고, 야심에 찼으면서도 그저 그런대로 행동하는 일종의 방탕아요.
    어떤 면에선 뜨로피모비치가 폴스타포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둘 다 선량한 인간은 아닌 노인네인데,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라서.
  • Wachtraum 2013/08/22 22:49 # 답글


    오, 그렇군요! 독보적 스따브로긴을,
    체스터튼의 <목요일의 남자>에서 묘사된 '일요일'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고는 했는데요,
    마키아밸리적이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 JHALOFF 2013/08/23 10:05 #

    아무래도 도스토예프스키 자체가 좀 희곡적이다보니, 셰익스피어 등의 영향도 많이 받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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