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인의 탄생: 도끼 라이즈, 지하로부터의 수기>- 감상 독서일기-소설

<지하인의 탄생- 도끼 라이즈, 지하로부터의 수기>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선정되지는 못 해도

그 작가의 뿌리가 되는 작품은 여럿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끼)의 최고 걸작을 묻는다면, 의문의 여지 없이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뽑힐 것이고,

유명한 작품을 묻는다면, 대개 5대 장편 소설 중 하나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이러한 진정한 도끼의 시발점과 같은 작품입니다.

일면 도끼 더 비기닝, 정도로 볼 수 있겠군요.

사실 도끼 작품 중에선 어느 정도 유명한 축입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치고, 비교적 분량이 짧은 이 '중편'은 도스토예프스키란 한 작가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나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옥과도 같은 걸작들, <죄와 벌>부터 시작하여,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막을 내리는 5개의 비극들은
사실상 이 짧은 중편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매우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 아니 '수기'는 어느 지하 생활자의 회고록입니다.

제 1 부에서 지하 생활자는 냉철한 이성으로 인간에 대해 고찰하며,

제 2 부에서는 어째서 지하 생활자가 '지하실'에서 생활하게 되었는가, 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술 방식이나 이야기 또한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지하인의 사상과 지하인 본인입니다.



사실상 우리의 지하 생활자는 앞으로 나올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옥과도 같은 악역들의 선배이자 대표자 같은 존재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수많은 악들은 모두 지하 생활자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 루쥔, 스비드리가일로프, 로고진, 이뽈리뜨, 키릴로프, 베르호벤스키, 스타브로긴, 베르실로프, 이반 까라마조프, 스메르쟈코프, 대심문관 등등

결국 모든 악들의 원형은 지하 생활자요, 모든 악들은 각기 다르게 변형된 지하 생활자들입니다.


지하 생활자의 사상은 곧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대한 감상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들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 생활자는 분명 다른 자들보다 현명한 자입니다.

그는 2 곱하기 2= 4로 상징되는 이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와 같이 이성을 통한 유토피아의 건설을 믿지 않고,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성에 대한 믿음과 수정궁으로 대변되는 이상을 건설하려는 인간에 대한 지하 생활자의 답은 간단합니다.

인간은 '충동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때때로 도박에 빠지거나, 술에 재산을 탕진하는등,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서습치 않고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모욕받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하 생활자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비하하고, 남에게 멸시받는 것에 대한 마조히스트적 쾌감을 느낍니다.

결국 세상은 세상일뿐, 인간의 '이성'은 미약하며, 결코 바뀔 수 없다는 것이 지하생활자의 기본 믿음이자, 심리학자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석입니다.


이러한 지하 생활자의 분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2부에서 지하생활자 본인에 의하여 파괴되려고 시도됩니다.

과거 회상이지만, 지하 생활자는 한마디로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는 책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으며, 언제나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리자라는 창녀를 구제하려는 것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결국 지하 생활자는 실패하고, 세상이라는 지하실에 숨은채 이 음울한 수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 생활자는 실패한 채 지하실에 있지만,

이 '불쾌한 힘'이 넘치는 작품은 앞으로 등장할 무수히 많은 지하 생활자들의 종말을 예견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고, 충동적이기에 스스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나

이러한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성'을 통한 수정궁을 건설하려는 라스콜리니코프 나 이반 까라마조프 등등

지하 생활자의 등장은 결국 수많은 도끼의 악들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만일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하고, 그가 창조한 악들을 사랑하는 독자께서는 반드시 이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읽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들의 시발점이자 그의 지하 생활자들이 탄생을 예고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니까요.

분량도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게 잦절하고 재밌습니다.


이 뻘글을 놀란 감독과 곧 개봉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바칩니다.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덧글

  • 무중력고기 2012/01/12 17:06 # 삭제 답글

    이런...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읽고 싶어지는군요!
  • JHALOFF 2012/01/12 18:50 #

    분량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치고는 아주 잦절한 편이라 강력 추천합니다.
  • 9625 2012/01/13 23:50 # 답글

    초등학생때인가 중학생때 읽었던걸로 기억되는 죄와벌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다 읽은 도스~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분량도 내용도 재밌고, 히키코모리와 중2병에 대해 다룬 선지자적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JHALOFF 2012/01/14 15:21 #

    여러모로 선지자적이죠.
  • 비정규인생 2012/04/07 22:41 # 답글

    홍상수 영화와도 좀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의 의도된 찌질함과 자기비하에서 오는 쾌감 묘사같은것.
  • JHALOFF 2012/04/09 00:36 #

    홍상수 감독 영화는 직접 본 것이 없어 잘 모르지만, 평보니까 비슷해보이네요. 언젠가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289
577
604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