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독서일기-소설


영국의 '여성'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이라 불릴 수 있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입니다.

본격적으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소설을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바로 희대의 변태작가 생산국 아일랜드 출신 조이스의 <율리시스>입니다.

두 소설 모두, 모더니즘 소설을 상징하면서, 독자를 지속가능하게 엿 먹이는 기법으로 쓰인 대표작이라 불리죠.

울프가 비록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열심히 디스했지만, <율리시스>는 울프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울프의 조이스 디스가 단순히 질투심 때문이란 말도 있고, 애당초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면서 <율리시스>를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향을 받았다고 캅니다.

두 작품 모두 상당한 공통점이 있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였고, 단 '하루'를 위해 모든 장들이 할애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을 담고자 했는가, 같습니다.

<율리시스>는 작가가 스스로 ''모든 것''을 담으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에, <댈러웨이 부인>은 말 그대로 '''댈러웨이 부인''이란 소설에만 집중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평론가나 연구가들의 반응을 떠나서, 조이스와 울프 두 작가 중 누가 더 뛰어나냐, 같은 애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애기를 시작하죠.

우선은 '글 자체에 대해 애기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이는 소설들은 '글'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죠.

이 부분에서는 찬사를 늘어놓고 싶네요. 유려하고, 시적입니다.

다만, 글 자체가 정말 딱 ''여성'' 작가가 썼구나, 란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건 뭐, 딱히 성차별적인 발언은 아니지만,

원래 나라별이나 성별에 따라 작가 문체 느낌 차이가 조금씩은 존재하듯이, 딱 '여성작가'삘이에요.

조이스를 비교하면, 조이스는 뭔가 살짝 남자같거나 좀 ''야성적이고 거친 것 같은 부분이 있다면,
울프는 그냥 잘 정돈되고, 매끄럽고, 부드럽네요.

이건 개인적으로 울프가 중요 남캐인 셉티무스 애기 할 때도 강하게 느꼈지만. 남자 애기를 잘하지만, 뭔가 좀 더 미친놈이니까 선을 더 넘어야되는데, 살짝 안 넘은 것 같은 느낌.

도끼의 미친 남캐가 정말 야성적이고 선을 넘었고, 광기가 느껴진다면, 버지니아의 셉티무스는 뭔가 좀 더 넘었으면 좋겠다, 란 아쉬움이 드네요.

물론 글적인 부분에서 말입니다. 제가 써놓고도 애매하네요.

책의 줄거리 자체는 간단합니다. 이 소설은 크게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무스 웨렌 스미스란 젊은이란 두 명의 주인공으로 나눠집니다.

댈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파티를 하는 일상과 전쟁에 나갔다, PTSD 걸린 셉티무스가 자살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나눠지고, 이 두 명의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 이어집니다.

우선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긍정적인 인물들은 없습니다. 대부분 위선적이고, 인간적이지 못 하죠. 적어도 결점은 있는 인간들입니다.

댈러웨이 부인의 이야기는 영국 상류층 쪽에서, 셉티무스는 자신을 대하는 의사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댈러웨이 부인, 아니 클라리사 댈러웨이란 인물 자체의 서술은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이후,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아닌, '댈러웨이 부인'으로 살아가면서, 사실상 클라리사는 사라지고,
투명인간과 같이 되어버렸다는 부분이나, 상류층 부인으로 나름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지만, 지나온 인생의 여러 갈래길들 중 잘 못 선택했을 수도 있죠. 

이러한 점은 이 날 하루 우연히 옛 사랑과 옛친구가 나타나면서 더욱 강조되죠. 클라이막스적인 부분은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 장면이겠고요.

셉티무스의 경우는 뭐, 일단은 ''전쟁''의 상처를 지닌 젊은이인데다가, 그를 ''치료''한다는 의사들이 결국 그의 대한 이해가 없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미친놈이지만, 미친놈이 아니다, 가 셉티무스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셉티무스보다도 전 개인적으로 셉티무스 아내가 더 애착이 가더군요.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무스, 이 두 주인공은 얼핏 보면 공통점이 없어보입니다. 여자와 남자, 중년과 청년, 상류사회와 평범한 계급, 전쟁을 모르는 자와 전쟁을 겪은 자.

그래도 얼핏 이렇게 대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둘이 가장 가까운, 일종의 정신적인 쌍둥이나 거울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댈러웨이 부인이 셉티무스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난 직후에 강하게 느꼈고요.

댈러웨의 부인의 공허함이나 셉티무스의 자살 등을 보면, 울프는 결국 당시 영국 사회의 여러 점들을 비판하고자 한 듯 합니다. 
셉티무스의 이야기도 있는 것 처럼  그저 당시 영국 런던을 살던 여러 인간상들을 고찰하고, 비판한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주인공은 클라리사와 셉티무스지만, 다른 인물들의 내면 또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니까요.


근데 결말의 경우에 개인적으로 매우매우매우 불길하더군요. 과연 그 후 댈러웨이 부인은 어떻게 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란 막연한 불안함이 책장을 덮자 남았습니다.


과연 공허하고 투명한 클라리사는 셉티무스의 자살이란 하나의 해소방법을 듣고, 후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녀는 끝내 '댈러웨이 부인'으로 남았을까, 셉티무스를 모방했을까, 아니면 클라리사로 돌아갈 다른 '방법'을  찾았을까?

잡글이었습니다.

울프 조만간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작가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든 작가였습니다.

역시 전 모더니즘이 좋은 한 사람의 아해인가 봅니다.

P.S. 책의 난이도라... 잘 모르겠네요. 단어는 조이스에 비해 그렇게 어려운 단어도 별로 없고, 분량도 잦절하고, 전 개인적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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