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인의 노래- 현대의 신곡 지옥편 프로젝트-에즈라 파운드

서사시는 현대로 올수록 상당히 찬밥 신세를 받는 시다. 고전으로 남은 서사시를 봐도, 주로 고대, 중세에 집중되있고, 현대로 올수록 적어진다.

하지만 에즈라 파운드의 인생의 역작 <캔토스>는 미완의 거대한 서사시이고, 20세기 모더니즘시의 걸작 중 하나이자, 최고로 긴 분량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20대 중반부터 구상이 시작되어, 죽기 직전까지 무려 60여년동안 파운드의 인생을 지배한 작품이고, 크게 9부분으로 나눠진다.

신곡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분량인 2만 3천여 행이지만, '미완'이다.

예이츠는 <환상록> 서문에서 파운드의 이 <캔토스>를 바흐의 푸가에 비유한다. 오디세우스의 저승 여행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 두 커다란 주제가 중세와 현대사의 인물들과 혼합되어,
플롯도 없고, 사건도 연대순이 아니며, 쟁점의 논리도 없는 거대한 시 한 편. 그 당시는 30여편밖에 쓰여지지 않았지만, 100편이 완성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 파운드는 자신했다.

그러나 파운드가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인만큼, 파운드의 파시즘 경력이 항상 커다란 문제로 남는 작품이 <캔토스>다.

캔토스(Cantos), 혹은 시편들.

이 시편들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 바로 <피산 캔토스>, 혹은 <피사 시편>이다.

미국 시문학의 가장 권위있는 볼링겐 상을 처음으로 수상하게 되면서, 이 작품은 파운드의 파시즘 경력과 '정신문제'로 큰 잡음을 일으키지만, 프로스트, T.S. 엘리엇 등 파운드가 키워낸 수많은 대작가들의 옹호로 결국 수상한다.


실제 파운드는 피사 전범수용소에서 감금되었을 때, <피사 시편>을 썼으며, 이 수용소에 감금되어있는동안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켰고, 결국 반역죄로 선 재판에서 십여년을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처벌을 받는다.

파운드 본인이 <캔토스>를 쓸 때 가장 염두했던 작품은 그가 존경했던 단테의 <신곡>이었다. 그의 꿈은 현대의 신곡을 쓰는 것이었다.

<피사 시편>은 단테의 신곡 중에서도 <지옥편>을 가장 닮은 시편이다.

파운드는 피사인의 노래를 통하여, 현대의 지옥을 그려낸다. 그의 주요한 주제는 '이상의 좌절'이다.

'농민의 굽은 어깨에 놓인 거대한 비극'이란 행과 그가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무솔리니와 그의 애인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의 이상의 좌절과 동료 예술가들의 고난, 그리고 '경제전쟁'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을 그려낸다.
(사실 피사 시편에서 파시즘으로 논란될만한 부분은 무솔리니의 죽음 부분 빼고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멘붕으로 그려낼 여력이 없지 않았을까?)

단테의 지옥 여행처럼 오디세우스는 '우티스(아무도 아니다)'란 가면을 쓰고, 끝임없이 자신을 숨긴채, 지옥을 여행한다.

정의로운 전쟁은 없지만, 경제전쟁은 살라미스 해전, 나폴레옹 전쟁, 1,2차 세계대전 등의 형태로 끝없이 변주되고, 야누스 신전의 문은 결코 닫힐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 태산에서 시인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만나고, T.S. 엘리엇과 조이스, 예이츠, 윈덤 루이스 등 그의 예술가 동료들은 예술을 위해 노력하지만, 전쟁과 세상은 그들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

세상은 마치 기울어져가는 피사의 사탑과도 같다.


피사 시편을 구성하는 총 11편의 시들은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며, 지옥을 노래한다.

파운드는 친절한 시인은 아니다. 자신의 작품에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주는 엘리엇과 달리, 파운드는 어떠한 주석도 달지 않는다.

또한 그는 여러 언어를 동시에 이용한다. 언어를 통해 그 문화를 그대로 표현하려는듯이.

그는 단테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그리고 수많은 문학작품을 등장시킨다.

파운드는 현대의 신곡을 창조하는데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 그와 <캔토스>는 모더니즘을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한때의 파시즘 경력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중2병적인 글을 쓰냐면, <피사 시편> 오랜만에 부분부분 읽었는데, 좋아서 그럼.
저거 읽을 때는 외국어 나오면 구글번역기 돌리고 그래서 짜증났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피사 시편>만 따로 출간한 것 있던데, 저건 주석이 편집자가 아예 따로 달았던데. 저거도 하나 있어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네요,

<농민의 굽은 어깨에 놓인 꿈의 
거대한 비극
마네스! 마네스는 잔뜩 타버렸고, 배가 불렀다
그리하여 벤과 밀라노의 클라라는
밀라노에서 거꾸로 매달렸으니
그 구더기들은 죽은 거세한 수송아지를 파먹어야한다
디오고노스, 디오고노스(그리스어), 두번 십자가에 수난당한
그를 당신은 역사의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아직 이 말을 주머니쥐에게 하지 마시오: 쾅과 함께, 흐느낌 없이,
쾅 소리와 함께, 흐느낌 없이,
별들의 색을 가진 테라스들이 있는 데이오세스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정중한, 조용하고, 경멸하지 않는 눈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과정의 일부이니라
그대가 떠나온 곳은 길이 아니며
바람 아래 하얀 꽃 피운 올리브 나무는
주강(江)과 한강(江)으로부터 물을 얻는다
이 순백에 그대는 어떤 순백을 더할 것인가, 어떤 순결을?
"위대한 지도(Periplum)는 별들로부터 우리의 해안까지 가져다준다."
그대, 루시퍼가 노스캐롤라이나로 추락할 때,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 밖으로부터 온 자여,
만약 상냥한 바람이 시로코에게 길을 내준다면.
우티스, 우티스(그리스어)? 오디세우스
내 가족의 이름.
바람 또한 과정의 일부이니라
내 누이, 달이여(이탈리아어)
신과 대중의 어리석음을 두려워하라.>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아름다움은 어려워요, 예이츠" 오브리 비어즐리가 말했다
 예이츠가 왜 추한 것을 그리는지,
 번-존스말고 다른 것은 그리지 않는지 묻자,
비어즐리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빨리 완성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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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서운 것은 문학과지성사에서 1990년에  <칸토스>로 번역했습니다. 300쪽이니까, 전부는 번역 못 했겠지만.


덧글

  • CATHA 2012/04/15 14:00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나중에 준비가 좀더 되면 제힘으로 다는 못읽을지라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주석이 없다니!!......
  • JHALOFF 2012/04/16 20:01 #

    주석연구서들도 몇 권 있긴 있습니다. 언젠가는 구입할 예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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