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처녀작 <마리> 독서일기-소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역량이 집약된 작품들을 뽑으라고 한다면, 대개 <롤리타>, <창백한 불꽃>, <아다> 정도가 언급될 것입니다. 

어느 한 작가를 덕질할 때, 초기작부터 읽지 않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짓입니다. 

대표작이자 최고작품부터 읽고, 초기작을 읽으면, 퀄리티의 차이 때문에 상당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이미 대부분의 나보코프의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보코프의 데뷔작 <마리>를 읽는 것은 상당히 모험이었습니다.

결과는 그래도 다행, 이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나보코프는 참으로 여러모로 특이한 작가입니다. 러시아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작품들을 썼으며, 이 각각의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모두 작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죠.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써서, 고전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나보코프는 그 일을 해내었죠.

<마리>는 나보코프가 최초로, 러시아어로 써서 출판한 소설입니다. 원래 러시아어 제목은 <마셴카>지만, 영어로 번역시, 나보코프 본인이 <마리>란 제목으로 썼다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데뷔작이고, 여러모로 전성기 작품에 비해서 미숙한 면모를 보이지만, 이후 등장할 일련의 나보코프 작품들에서도 끝없이 등장할 요소들은 가지고 있는 씨앗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주인공 레프 가닌은 러시아 혁명을 피해 독일로 망명온 수많은 러시아인 중 하나이며,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하숙집에서 사는 남자의 아내가 자신의 헤어졌던 옛사랑 마리라는 것과, 그녀가 곧 남편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이란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는 마리와의 러시아의 추억을 끝없이 회상하며, 그녀와 도피할 계획을 세우며 행복해하죠.

나보코프 본인이 러시아 혁명을 피해서 독일로 피난온 수많은 러시아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나보코프 본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마리'는 아마도 그의 사라져버린 러시아로 상징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뿐. 추억 속에 갇혀 사는 러시아인은 현실에 절망하기 마련.

책 자체는 100여쪽을 조금 넘는 짧은 분량이고, 결말 자체는 상당히 맥 빠지면서도, 참으로 나보코프스러운 결말이라고 하고 싶군요. 사실 오히려 좀 나보코프스럽지 않은 결말이 맞는 표현입니다. 나보코프라면, 왠지 이렇게 끝낼 것 같아, 이렇게 생각했는데 조금 다른 방향으로 끝났습니다.

이 책 자체는 앞으로 나보코프의 소설 속에서도 끝없이 등장할 공통 요소들을 포함을 하고는 있습니다. 상당히 기괴하고 나약한 예술가형 인물이라든지, 그의 예술의 도피처라든지, 마성의 여인, 러시아에서 망명온 러시아인, 다채로운 표현, 파멸 등등

하지만 그의 대표작 <롤리타>와 같이 뭔가 포스트모더니즘적 소설이라 불릴만한 소설은 확실히 아니죠. 아직은 그냥 우리가 아는 평범한 소설입니다.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제는 그의 최후의 작품 <할리퀸을 보아라!>를 읽을 차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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