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좋은 날 지름


새침하게 흐린 품이 비가 올 듯 하더니, 비는 아니 오고 무더운 햇빛이 추적추적 내리쬐었다. 이 날이야말로 도갤에서 잉여 노릇을 하는 JHALOFF에게는 오랜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평소에는 그리 찾아도 없던 좋은 중고책들이 방문하는 서점마다 넘쳐흘렸으며, 운좋게도 그것들을 지를 돈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았던 운수는 책사냥 대박으로 이어졌으니, 첫째 책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모음집 1권, 둘째 책은 같은 작가의 시모음집 2권 - 이렇게 딱딱 맞다니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책사냥에 재수가 옴 붙어서 근 한달 동안 지름 고민만 하고 책 구경도 못한 JHALOFF는 새 것 같은 중고책 2권을 얼싸앉고 제 거의 눈물을 흘릴만큼 기뻐했다.


JHALOFF는 기분도 좋고, 책도 질러서 주머니가 가벼워진 상태에서 도갤에 접속했다. 만약 그가 주머니가 텅텅 빈 상태가 아니었다면, 도갤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뻘글만 난무하고, 책애기는 인증사진조차 볼 수 없었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드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무엇인가 인증하는 글만이 보일 뿐이었다.

하여간 JHALOFF는 그 지랄맞은 인증글을 왈칵 눌렀다. 도서전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여러 책들의 할인 소식의 홍수가 쏟아져나왔다.

도갤에 들어서 지른 중고책을 인증할 새조차도 없이 그는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 인증글,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라는 소리와 함께 인증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댓글 밑에 채이는 건 한마리 댓글돌이 같은 느낌만이 있었다.

댓글을 달아도 여전히 상황이 변하지 않는 걸 보자 JHALOFF는 인증글이 떠오른 모니터에 얼굴을 비비작 거리며,

"이 도서전! 이 도서전! 왜 하필 주머니가 털렸을 때 시작하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도게이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노트북 위의 뻣뻣한 화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JHALOFF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화면에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책은 이미 질렀는데, 왜 이제서야 도서전을 하니... 왜 이제서야 도서전을 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지름이 좋더니만....지름이 좋더니만...."


그래도 사고 싶었던 책 싸게 사서 기분 좋다.




덧글

  • 등푸른돼지 2012/06/20 22:17 # 삭제 답글

    아~ 가슴이 미어지는 패로디입니다.
  • JHALOFF 2012/06/21 21:32 #

    눈물만 납니다.
  • ㅎ1ㅎ1 2012/07/18 01:01 # 삭제 답글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ㅋ
    근데 닉이 진짜 낯익다했떠니 도갤에서 눈팅하다 몇번 뵌 분이시구나 ㅋㅋㅋㅋㅋ 반갑습니다
  • JHALOFF 2012/07/18 05:04 #

    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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