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너,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 과거는 죽지 않는다 독서일기-소설

 "삶은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찬 어느 백치가 읊조리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 - 맥베스, 셱스피어

"나는 너에게 지금 희망과 욕망의 무덤을 준다..(중략)... 내가 너에게 주는 이유는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지금, 잠깐동안이라도 잊어버리고, 너의 모든 힘을 시간을 정복하려는데 쓰지말라는 것이다. 어떤 전투도 승리로 끝난 적이 없기 때문이지. 그들은 싸운 적도 없단다. 전장은 사람에게 어리석음과 절망만을 상기시킬 뿐이고,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환영이지."
- 음향과 분노, 포크너



포크너의 <성역>은 상당히 충격적인 소설입니다.

뭐, 민음사 번역판 광고보면, '미국 사디즘의 최고의 예'다, 어쩌다하긴 하는데, 그건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상당히 자극적인 소설이죠.

대충 설명하자면, 고자 뽀빠이가 옥수수 속대로 여대생 템플을 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 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 한 후에 매음굴에 팔아넘기고, 살인하는등, 여러가지 막장 남부사회를 묘사한 소설입니다.

물론 이 <성역>이 포크너가 쓴 '대중 소설'이란 점에서 상당히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포크너는 문체상으로 절대 대중소설을 쓸 것 같지 않은 작가거든요. 마치 프루스트가 귀여니식 인터넷 소설 쓰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성역>은 사실 그 후속작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여대생 템플을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의 심각한 과거는 잊혀졌는가? 등을 다룬 후속작이 바로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입니다.

알베르 카뮈가 직접 희곡으로 개작하기도 했다는 이 소설은 포크너의 실험적인 정신 아래에 쓰여졌습니다.

한마디로 소설과 희곡의 짬뽕입니다. 

이 소설은 총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소설 부분에서는 포크너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상의 요크나파토파군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희곡 부분에서는 성역 이후의 템플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요크나파토파군의 역사를 다룬 부분은 포크너의 독자라면 익숙한 일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토리스 일가라든지, 콤슨 일가라든지.

사실상 '남부 고딕문학'이라 불릴만큼 기괴한 남부사회를 묘사하는 포크너답게, 샷건들고 위스키 처먹으면서 남부사투리 쓰고, 흑인들 채찍질하며 근친상간해대고, 남북전쟁 이후 서서히 몰락하는 기괴한 남부 사회의 축소판을 이 요크나파토파군의 역사 속에 담고 있죠.

사실 소설 부분은 사실상 걍 설정 짜기 요소입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희곡 부분이죠.

<과거는 죽지 않았다.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 란 작중 유명한 포크너의 대사처럼,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둔 템플과 주변인물들은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마치 <음향과 분노>의 콤슨 일가들이 과거로 가득찬 백치들인 것처럼 말이죠.

소설은 템플의 갓 태어난 딸을 살해한 흑인 하녀이자 창녀 출신 낸시가 사형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과연 낸시는 왜 어린 아이를 살해한 것일까?

템플은 어째서 가난하고 무식하며 전직 흑인 창녀를 자신의 하녀로 고용한 것일까?

템플과 낸시는 어떻게 연관되어있는가?

템플은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났는가? 등의 의문을 중점으로 점차 희곡은 진행됩니다.


<과거는 죽지 않았다.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


뭐 결국 제목의 어느 수녀는 낸시를 가리키는 것이고, 낸시는 사실상 템플의 과거를 구원해주는 구원자입니다.

둘 다 끔찍한 과거에서 제대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전직 창녀지만, 부패하고, 쇠락한 남부 상류사회에 억지로 편입된 템플과는 달리, 아이러니컬하게도 흑인인 낸시가 그 구원을 하게되죠.

희곡 자체는 일종의 고백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낸시의 입장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자신을 구원하고 사형선고를 받게된 낸시를 향해 괴로워하는 템플의 모습을 포크너는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죠.

과거는 죽지도, 지나가지도 않은 것처럼, 아무리 구원된 템플이라도, 여전히 자신의 죄에서 완벽하게 도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소설 자체가 종교적 색채를 좀 강하게 많이 띄고 있습니다.

구원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악랄한 <성역>의 세계와는 반대로, 이 작품은 복음서의 예수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점에서는 <8월의 빛>이 좀 연상되기도 하는군요.

좀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은 강했지만, 나쁘진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긴 하여도, 작가가 말하고 싶은바가 종교를 떠나서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 소설은 템플의 고백록이자, 낸시를 위한 진혼곡이고, 앞으로 죄악의 십자가를 끝까지 간직해야할 '인류'를 위한 찬송가입니다.

다만 역시 포크너는 이런 색채 없이 어둡게 나가는 것이 더 좋은 작가란 생각도 듭니다. <음향과 분노>라든지, <성역>이라든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라든지. 구원이 존재는 하여도, 거의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좀 더 어울린다고하고 싶네요.

<8월의 빛>도 좀 너무 오바하는 경향이 있었고.


어쨌든 이것으로 짧은 감상을 마칩니다.  

 

덧글

  • CATHA 2012/08/10 23:22 # 삭제 답글

    성역...엄청 멘붕하면서 본 진심 여주 능욕쩌는 소설이었는데 시퀄이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JHALOFF 2012/08/23 18:16 #

    성역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후속작이라 볼수있습니다
  • Wachtraum 2013/08/22 00:10 # 답글


    그저 번역본만 보다보니 저도 이런 게 있는 줄은... <성역> 거의 첫 장면에, 그 변호사 주인공이 '옥수수 속대' 악당 놈을 연못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 '엠마 보바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검은물' 이런 식의 묘사가 있어서 가차없이 차가워질 것을 예감하게 되지만 그 정도일 줄은;;; 특히 위증할 때... 포크너도 아무래도 찜찜했나봄다.
    (참고로 저는 <압살롬, 압살롬>을 젤 좋아해요! 쿨럭;;;)
  • JHALOFF 2013/08/22 07:39 #

    <압살롬, 압살롬>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조만간 읽어볼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속편 자체는 찜찜함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나 싶은데, 사실 이 책도 좀 찜찜합니다.
  • Wachtraum 2013/08/22 22:51 # 답글


    <압살롬, 압살롬> 보시면 서평 올려주세요!
  • JHALOFF 2013/08/23 10:05 #

    조만간 읽어볼 예정입니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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