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쇼 읽을줄 알았어: (1) 인간과 초인: 지옥의 돈 주앙 프로젝트-버나드 쇼


잘도 이런 미치광이 희곡을!!!


펭귄판 커버: 지옥의 돈 주앙!


<희극과 철학>이란 부제목이 붙어있는 이 거대한 분량의 희곡 <인간과 초인>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문장은 '잘도 이런 미치광이 희극을! 쇼 이 미친 영감탱이!' 였다.

단순히 희극적으로 보면, <인간과 초인>은 남주인공 탠너와 여주인공 앤의 결혼을 향한 희극적이고 독설적인 투쟁이다.

그러나 이 희극은 우선 버나드 쇼가 '돈 주앙'에 관련된 희곡을 원한 극장의 주문에 의하여 집필되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돈 주앙이 누구인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카사노바와 더불어 바람둥이와 난봉꾼의 대명사가 아닌가.

그러나 쇼는 이 돈 주앙을 모델로 한 희극에서 두 가지 독특한 비틀음을 시도한다.

첫째는 관계의 역전이다. 돈 주앙은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유혹당하는 존재이지만, <인간과 초인>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된다. 여자는 마치 '보아뱀'처럼 남자라는 사냥감을 집어삼키려는 존재고, 남자는 그것을 최대한 피하려는 존재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은 작중 주인공이자 사회주의자 잭 탠너의 대사 하나로 쉽게 설명된다.

탠너: 가능한 일찍 결혼하는 것이 여자의 비즈니스라면 가능한 늦게 결혼하는 것이 남자의 비즈니스라네.

그러나 이러한 첫번째 비틀음도 결국은 두번째 비틀음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과 '''초인'''>, 그리고 <희극과 '''철학'''>. 초인과 철학. 그렇다, 바로 철학자 니체의 그 초인, 위버멘쉬다.

쇼는 이 돈 주앙과 관련된 희극을 니체의 철학과 접목시킨다. 그 결과가 바로, 제 3 막에 해당하는 <지옥의 돈 주앙> 부분이다. 애당초 희곡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도, 이 이질적인 환상극을 접하는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저 단순히 결혼과 남녀관계에 관한 희극적인 소품처럼 보였던 이 작품에서 갑자기 꿈으로 변하면서, 마치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의 밤>처럼 환상극으로 변해버린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선율과 함께 지옥이 등장하고, 돈 주앙과 악마, 석상, 그리고 돈 주앙이 마지막으로 유혹했었던 여인 안나가 등장하면서 한참동안 극과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악마: 불행하게도 그는 여기서 바그너를 만나, 그와 다투었다네.
석상: 맞는 말이군! 난 모차르트가 좋지!
악마: 오, 음악에 대한 다툼이 아니었다네. 바그너는 생의 힘 숭배에 한때 매료되었고, 지그프리드란 이름의 초인을 창조했지. 그러나 그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그래서 그들이 여기서 만났을 때, 니체는 그를 변절자라고 비난했고, 바그너는 그가 유태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팸플릿을 썼지. 


이 무슨 미치광이 짓인가?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인 대화도 결국은 이 모든 희극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지옥은 곧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설교하는 최후의 인간들이 사는 곳과 같다. 발전이 없고, 오직 쾌락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돈 주앙은 절망한다. 반대로 천국은 발전에 공헌을 하고, 의지가 있는 자들이 가는 ''지루한'' 곳이다.
그리고 쇼는 생의 힘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하며 초인 사상과 결합시킨다.

-생의 힘은 인간을 지배하고, 창조하는 힘이다. 생의 힘의 화신인 여자는 남자를 '보아뱀'처럼 붙잡아,'초인'을 생산해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인간은 발전할 것이다. 

안나: 그것 때문에 당신을 멈춘 것이 아니에요. 말해줘요. 어디서 초인을 찾을 수 있죠?
악마: 그는 아직 창조되지 않았소, 세뇨라
석상: 어쩌면 영원히 창조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우리는 어서 가세, 붉은 불길이 날 재채기하게 만드는 구만.
안나: 아직 창조되지 않았다고요! 그렇다면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어요. 나는 다가올 삶을 믿어요. 아버지! 초인을 위한 아버지를!


이러한 쇼의 사상에 동의하든, 안 하든, 독자는 이러한 <지옥의 돈 주앙> 부분이 결국 이 희곡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무대에 직접적으로 올리기 힘들어보일 뿐, 이러한 철학극이 희극과도 전혀 안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데에 더 놀랄 것이다. 또한 이 돈 주앙과 악마, 석상, 그리고 안나의 철학극은 전혀 지루한 철학극이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희극작가이자 독설가 쇼의 펜에 의하여 너무나도 재미있는 희극으로 변모한다.

또한 비록 쇼가 작품과 작가의 정치 사상 및 생각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 믿었고, 자신의 믿음에 매우 충실하여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예술을 한 작가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무조건 '도구'인 것은 아니다. 설령 쇼의 사회주의적이거나 철학적인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도, 그의 희극을 즐기는데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앤: 그렇지만,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나요? 아름다운 것은 처음 볼 때는 무척 아름답죠. 그렇지만 집에 삼 일이나 있으면 누가 그것을 보나요? 처음 아버지께서 그림들을 사셨을 때, 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관심도 없어졌죠. 당신은 내 외모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아요. 당신은 나에게 너무 익숙해진 거죠. 저는 우산꽂이가 될 수도 있을 거에요.
탠너: 당신은 거짓말하고 있어, 이 흡혈귀!  당신은 거짓말하고 있다고!
앤: 이 아첨꾼, 어째서 저를 유혹하는 거죠, 잭, 만약 당신이 나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다면?
탠너: 생의 힘. 나는 생의 힘의 손아귀 안에 있소.

작중 탠너와 앤의 관계는 이미 지옥의 돈 주앙에서 전부 까발려졌다. 그 둘은 생의 힘에 의하여 결국은 결혼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다.


탠너: 그래, 나 또한 위선자가 될 수 있겠지. 당신 아버지의 유언은 나를 후견인으로 지적했지, 구혼자로 임명하지 않았소. 나는 나를 향한 믿음에 충실할 것이오.
앤: (낮게 깔은 싸이렌 같은 톤으로) 아버지께선 유언을 쓰기 전에 누가 나의 후견인이 될 것인지 나에게 물으셨어요. 내가 당신을 선택한 거라고요!
탠너: 그럼 이 유언은 당신의 것이었군! 처음부터 이미 덫은 놓여져 있었어.
앤: (그녀의 모든 매력에 집중하며) 처음부터,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우리 모두를 위해, 삶의 힘에 의해서요.
탠너: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
앤: 오, 당신은 할거에요, 당신은 할거에요.
탠너: 당신에게 말하지,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앤: 당신에게 말하죠, 할거라고, 할거라고, 할거라고.
텐너: 아니야.
앤: 알았어요. 후회하기 너무 늦기 전에. 그래요.
탠너: 우리 둘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앤: 아니오. 우리는 깨어났어요. 그리고 당신은 아니라고 말했죠. 그뿐이에요.
탠너: (난폭하게) 그래서?
앤: 그래요, 내가 실수했어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죠.
탠너: (그녀를 품에 안으며) 틀렸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생의 힘이 나를 매혹시켰지. 하지만 나는 싸웠소, 내 자유, 내 명예, 내 하나뿐이고 나눠질 수 없는 자신을 위해.
앤: 당신의 행복은 그 모든 것의 가치가 있을 거에요.
탠너: 당신은 행복을 위해 자유와 명예와 자신을 팔 수 있소?
앤: 그것들은 나에게 행복이 되지 않을 거에요, 죽음이라면 모르지만.

또한 돈 주앙적인 관계를 역전시켜 오히려 '사냥'하는 여성상을 창조하고, 피하려는 남성상을 보인 것은 이러한 것이 쇼의 여성관이 아닐까. 쇼가 조이스처럼 입센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입센의 <인형의 집> 과 같은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사실상 여자가 초인을 잉태하기 위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에 여성이 불쾌함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애당초 남자도 초인을 위한 씨받이일뿐이다. 인류는 하루하루 초인을 생산하는 기계일뿐이지, 란 쇼의 외침이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그러나 쇼는 마지막 부분에서도 여전히 독설가의 면모를 보인다.

멘드사: 선생,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소. 하나는 자신의 소망을 잃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소망을 얻는 것이오.

<무대 설명: 그라나다에 위치한 별장의 정원.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은 자는 그라나다로 가봐야 한다> 참고로 이런 부분과 같이 쇼는 비록 상영을 위한 희극들을 썼지만, 무지막지하게 긴 무대 설명이나 읽어서밖에 알 수 없는 설명들을 쓰기도 한다.


이 감상문에서는 중점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사회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로서의 쇼의 모습도 보이는 편이다. 애당초 작중 주인공 탠너가 사회주의자고, 보수적인 잉간들을 향한 쇼의 풍자는 계속된다. 예로 자신을 진보적이라 여기지만, 가장 보수적인 램스덴이라던가.
이 밖에도 여기 언급하지 않은 다른 깨알같은 재미거리나 풍자요소들이 있지만, 앞으로 읽을 사람들을 위한 재미로 남겨둔다. (인간과 초인은 번역본이 있다.)

한가지 끝나면서 아쉬웠던 것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판본은 희곡만 있고, 서문이나 부록 같은 것은 다른 권에 있는데, 그 책은 내 수중에 없다.

쇼의 희곡을 읽을 때, 반드시 읽어야하는 것 중 하나가 서문과 부록인데, 이런 것들을 읽지 못한 점에서, <인간과 초인>은 반만 읽은 것일 것이다. 
(심지어 어떤 희곡은 서문이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다음에 나머지 반을 꼭 채우기를 바라며.

버나드 쇼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께속.

덧글

  • yoD 2012/09/24 22:54 # 답글

    우왕. ㅋㅋ 내 이거는 꼭 읽겠다고 생각했음. 완전 기대중. 그라나다라니!! 대박!
  • JHALOFF 2012/09/25 18:31 #

    ㅎㅎ 읽으세요 재밌습니다.
  • 2012/09/26 18:0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HALOFF 2012/09/26 23:31 #

    ㅎㅎ 읽으삼
  • CATHA 2012/09/26 19:57 # 삭제 답글

    으어 뭐죠 쟐롭님 글만읽었는데도 벌써부터 약빤느낌이...이 희곡 좀 쩌는거 같아요...
  • JHALOFF 2012/09/26 23:31 #

    ㅎㅎ 조은 희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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