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퀸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 마약 관련 (1) 독서일기-산문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의의 고백>을 처음 안 것은 셜록 홈즈의 단편 중 하나인 <입이 뒤틀린 사나이>에서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입이 뒤틀린 사나이>의 배경은 런던 아편굴이고, 드 퀸시의 이 수필이 언급된다.

그 후로 또다시 드 퀸시와 이 책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때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으면서였고, 또다시 이 책과 드 퀸시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보르헤스를 읽으면서였다.

이렇듯 드 퀸시와 그의 유명한 수필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속에서 비교적 자주 언급되는 책이었고, 이에 자연스레 나는 이 괴상한 이름의 작가와 책에 호기심을 느꼈었다.
작가의 이름이나 수필의 제목부터, 무엇인가 사람의 매력을 끌지 않는가? 드 퀸시라니-! 아편쟁이의 고백이라니-!!

그러나 정작 이 책을 읽어보려고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왠일인지 전혀 기회가 없었다. 아예 책을 만져보지도 못 했었다. 그러나 우연히 <네이키드 런치>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마약과 관련된 수필이자 오랫동안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해두었던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드디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게 되었다.

다 읽고서 든 생각은 난 도대체 왜 이제서야 이 작가와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나는 나의 이 천성적 게으름을 저주할 수밖에 없다.

드 퀸시가 존경하고 끝없이 인용하는 밀턴의 대사를 변형하여 이 책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어디로 피해야하나, 
무한한 쾌락과 무한한 절망으로부터, 
어디로 피하든 곧 지옥, 
나 자신이 곧 지옥이다."

(실락원의 사탄의 명대사 중 하나를 살짝 변형)

가 아닐까?

사실 이 수필 자체가 왠지모르게 제목에서 느껴지는 포스만큼의 뭔가 역동적인 책은 아니다. 흔히 미디어에서 비쳐지는 것처럼 마약을 둘러싼 위험함 모험담이나 참회록도 아니다.

우선 시대적인 배경을 한 가지 알아야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영국이다. 아편 등의 여러 마약류가 전혀 금지된 시절이 아니다. 오히려 당대 쿨리지 같은 시인도 아편 복용으로 꾼 꿈으로 <쿠빌라이 칸> 같은 시를 쓰던 시대다.
심지어 약으로 복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책 자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드 퀸시의 어린 시절 회상과 마약에 얽힌 자신의 인생담. 물론, 두 부분은 결국 하나로 얽힌다. 특히, 후반부, 아편으로 인한 악몽으로.

그러나 일반적인 독자라면, 이 '고백록'에서 제일 놀라는 점은 아마도 드 퀸시의 소위 말하는 '아편 예찬'일 것이다. 드 퀸시라는 영국인 아편쟁이는 오늘날만큼 아편, 혹은 마약을 손대기만해도 인생 퇴갤하는 위험한 약으로 취급하진 않는다. 애당초 시대를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드 퀸시는 아편을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변명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한번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쓴 평을 몇 개 읽어봤지만, 대부분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평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개인의 독서는 자유지만, 난 오히려 이런 관점으로 이 수필을 보는 것은 이 책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 중의 하나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이 평가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은 있을까?

그렇다, 이 책은 아름답고, 슬픈 책이다. 어떻게 이 책을 단순히 고백록이거나 아편 예찬이거나 마약쟁의의 자기 합리화 및 변명으로 볼 수 있는가?

정말 드 퀸시가 단순히 아편 예찬을 하거나, 자기 합리화를 하는가? 스스로 아편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고, 중독자로서 투여량을 줄이려고 비참하게 노력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박살나는 악몽을 꾸는 이 아편쟁이가?

오히려 드 퀸시만큼 아편의 쾌락과 고통을 처절하게 아는 사람은, 아편쟁이가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치통의 고통을 덜기 위하여 아무 생각 없이 아편을 투여한 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줄 청년 시절의 드 퀸시가 알았을까? 비단 이것이 단순히 그에게만 일어날법한 일이었을까? 애당초 당대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이 무심코 실수로 인하여 마약쟁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이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록은 철저하게 한 사람의 파멸을 다룬 책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문체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슬프다.

이렇게까지 한 인간의 파멸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수필이 또 있을까?

드 퀸시는 스스로가 파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편의 쾌락을 찬양한다. 그에게 있어 아편은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하며 천국으로 향하는 열쇠이다. 그렇지만 그 천국문 앞은 지옥불로 이루어져있다. 이렇게 스스로 끝없는 수렁에 빠지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사람을 제 3 자로서 관찰할 때, 그것이 굉장히 아름답지만, 사실은 한 인간의 파멸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책 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 드 퀸시의 아편 예찬은 평범한 사람에게조차 아편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정도로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드 퀸시는 무조건적으로 아편을 예찬하거나, 그 당시 관념처럼 아편의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아편쟁이로서 그 쾌락과 고통을 모두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이 수필의 주인공은 아니기에, 이 수필의 진짜 주인공인 아편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이 아편이긴 하지만, 단순히 아편에 초점이 맞춰지진 않는다. 오히려 낭만주의라는 시대와 맞물러, 모든 것이 몽환적으로 그려진다. 드 퀸시는 끝없이 밀턴과 워즈워스의 시를 인용하고, 당대 런던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며 이 모든 것이 아편을 중심으로 한 곳으로 뭉치게 된다.

이 수필을 읽는 독자라면, 한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에 반하고, 또한 파멸하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것에 슬픔을 느낄 것이다.

아편쟁이가 인류에게 실제적인 봉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그의 책이 ‘아름답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나의 드 퀸시와 그의 수필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에 대한 감상은 보들레르가 이미 간결하게 해준 것 같다.

따라서 이 감상은 쓰잘데기 없는 잡글이지만, 이미 썼고, 지우기 귀찮으므로 그냥 놔두겠다.

(잡글에 사용된 유명한 인물들의 말은 시공사에서 나온 번역본의 책 소개에서 가져왔다. 이 잡글은 옥스퍼드 페이퍼북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外>를 읽고 찌끄렸습니다.)

-<네이키드 런치>에서 께속.

덧글

  • yoD 2012/10/10 01:00 # 답글

    어? 내가 읽을 때 이 감상에 동요하면 어쩌지. 빨리 까먹어버려야지. thx. 꼭 읽을게요.
  • JHALOFF 2012/10/10 04:05 #

    읽으세요.
  • CATHA 2012/10/10 02:47 # 삭제 답글

    드퀸시가 계속 '아편팅크 몇방울은 절대로 많은 양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못끊다가 결국 똥망테크트리 타는 소설아닌가요? 정확치는 않은데 어느거리에서 몸파는 여자아이?랑 친해졌는데 꼭 데리러오겠다고 약속해놓고서는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한부분이랑 또 어떤 변호사인가? 그사람이 집에다가 데려다놓고 키워주면서 생기는 일들이 기억에 남네요...(이러니저러니해도 가장 슬픈건 드퀸시의 키....가 아닐까요?) 허허 솔직히 저한테 보르헤스가 가장 슬픈책이라고 한게 그리 와닿진 않지만 아무래도 쟐롭님말씀처럼 이게 막 고통으로 점철되고 울부짖는 내용이아니라 비참함을 정말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라그런지 확실히 여운은 강한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JHALOFF 2012/10/10 04:06 #

    ㅇㅇ 말씀하신 내용 맞습니다. 다만, 소설은 아니고, 일단은 수필이라고 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편쟁이지만, 은근히 드 퀸시가 오래살긴 했더군요.
  • CATHA 2012/10/10 21:03 # 삭제 답글

    아하 수필이라 하군요ㅠㅠ근데 제가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드 퀸시가 정말 나중에 콜리지랑 워즈워스를 신랄하게 까서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나요?? 첨엔 엄청 추앙하고 졸졸 따라다니다가요...ㅠㅠ(근데 그거 아세요 쟐롭님? 쟐롭님 필력 겁나 좋으세요.. 방금 피네간 프로젝트하신 포스팅 다 읽었는데 괴랄한 내용을 다룬 포스팅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힙디다 허허)
  • JHALOFF 2012/10/10 22:51 #

    쿨리지와 워즈워스 둘 다 좋아했지만, 워즈워스를 더 좋아했습니다. 쿨리지의 경우, 쿨리지가 아편으로 까서, 틀어졌고, 워즈워스하고는 가족과 같이 지낼 정도로 친분 있었지만, 결국 아편 중독 때문에 헤어졌다고는 들었습니다. 좋지 않는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2/10/11 04: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HALOFF 2012/10/13 01:55 #

    ㅇㅇ 좀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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