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델로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 작가를 잃어버린 등장인물의 부조리극 독서일기-희곡





작가를 잃어버린 여섯 명의 등장인물



루이지 피란델로는 입센과 더불어 빈번히 현대 희곡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극작가로 알고는 있었기에, 관심은 있었고, 이번 기회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탈리아 극작가의 뛰어난 소품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은 굉장히 특이한 희곡이다. 1920년대에 쓰여졌음에도, 마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부조리극의 선조처럼 느껴지며, 무엇보다 굉장히 메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극의 시작은 '피란델로'의 희곡의 리허설을 준비하는 극단의 모습을 시작한다. 한창 리허설 준비를 하던 도중, 그들에게 여섯 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감독: 실례지만, 당신들은 누구시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겠소?

아버지: 우리는 작가를 찾으러 이곳에 왔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섯 명은 스스로를 작가를 잃어버린 희곡 속 등장인물이라고 칭한다. (피란델로의 무대 묘사로 인하여, 여섯 명의 등장인물과 극단원은 확연히 구별된다. 여섯 명의 등장인물은 실제보다도 더 실제같고, 환상보다도 더 환상 같은 배역들이다.)

이들이 어째서 작가를 잃어버렸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진 않는다. 사실상 미완성작의 등장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작가가 누군지는 모른다. 어쩌면 피란델로 본인일 수도 있다.

이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작가가 썼던 비극을 극단에게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고 극단은 이 비극을 다시 연극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극중 현실과 비극은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죽박죽되며 극은 계속된다.

이 광기로 가득찬 비극적 소품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작가를 잃어버린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실제로는 일곱 명이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는 작가를 찾지는 않는다.)의 비극 자체도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현대인의 비극과도 유사하다. 물론 그 소재 자체는 지극히 환상적이고, 비윤리적이지만 말이다. 사실상 소통의 단절에 관한 비극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비극을 연기하는 아버지와 그의 의붓 딸,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정도만이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비중이 있을 뿐이다. 아니, 아버지와 의붓 딸이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엑스트라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정신적 고뇌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비극을 연기하게 되는 극단의 마찰일 것이다.

작가는 희곡을 쓰고, 등장인물들을 창조한다. 등장인물들을 배우들이 연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등장인물들과 배우들은 일치하는가? 이 둘 간의 괴리감은 없지 않는가? 과연 배우들이 등장인물의 성격 그 자체와 완벽하게 동일 할 수가 있는가?

당연히 이런 문제는 연극을 하면서 꽤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 예로 원작자와 연출자간의 갈등,이며 이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배우들의 갈등의 중심은 이것이다. 그러나 피란델로가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히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작가를 잃어버린 등장인물들을 현실 세계 속의 인간들에게까지 확대한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은 진실로 그 자신의 삶이 있고, 자신의 특성이 있으며, 그는 언제나 '누군가'이기 때문이죠. 반면에 사람은, 지금 당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아무도' 될 수 없소.>

등장인물들에게는 대본이 있고, 그들은 그저 대본에 따라, 변하지 않는 삶을 그대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현대의 인간은 어떠한가? 마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말 그대로 대본 없는, 작가 없는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가를 '잃어버렸다는' 등장인물들 또한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죽지만, 작품과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불멸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할 수가 없다. 그들은 말 그대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피란델로는 대본 없는 현실의 인간들과 또다시 대조적으로, 대본 있는 등장인물들을 비교한다.

<아버지: 하지만 만약 당신의 현실이 어느 날 다른 방향으로 변한다면,

감독: 하지만 우리는 현실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연히 변하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현실은 변해.

아버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소, 감독 양반! 당신도 알겠듯, 차이점은 간단하오. 그것은 변할 수 없으며, 변하지 않으며,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소, 왜냐하면 고정되있으니까, 언제나 한쪽으로, 영원히, 그리고 이것은 끔찍한 일이오!>

이렇나 대본의 존재 때문에, 등장인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의 비극은 다시 한 번 그대로 재현될 수밖에 없다.

또한 존재하는 대본이 있기에, 이 대본을 연기하려는 극단이 있기에, 등장인물들은 서로 간의 소통은 불가능한채, 최후의 비극까지 질주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돈의 카오스적 상황을 피란델로는 작중 끝까지 밀고나가면서, 장엄하게 폭발시키고, 근사하게 막을 내린다.

피란델로의 이 광기로 가득찬 부조리적 무대의 세계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읽으면서 이 작가가 얼마나 '현대'적이고, 독창적인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엔리코 4세>도 조만간 읽어야겠지.

검색해보니, 다행히 피란델로의 이 희곡은 번역본도 있으며, 의외로 꽤 많은 희곡과 소설 또한 번역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추천하고 싶은 희곡이다.


덧글

  • yoD 2012/10/15 22:10 # 답글

    접수. 같이 겆이됩시다.
  • JHALOFF 2012/10/16 07:58 #

    같이는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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