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 삼부작 (2) <말론 죽다> - 말론, 독자를 죽이다. 독서일기-소설



JHALOFF: 내가 요즘 <말론 죽다>를 읽고 있어.

베케트: 말론 죽어.

JHALOFF: ?!!!!!!!!!!!!!!!!!!!!!!

베케트: 말론 죽어라고 했지만, 말론 죽는다고 하진 않았다.

JHALOFF: 이게 먼 개소리야! 아저씨, 요즘 독자들 한 성깔 하거든요?

베케트: 그런 독자가 커서 된게 나다, 이 X만한 쉐키야.

<말론 죽다>의 줄거리는 매우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몰로이>의 몰로이스러움을 생각하면, 이 삼부작의 중간부분에 해당하는 <말론 죽다>는 왠만한 스릴러 소설을 뺨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베케트가 이런 글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재밌다. 만약 작가 이름을 가린다면, 그저 평범한 스릴러 작가의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몰로이>에서 결국 정신붕괴로 끝나버린 모란은 어느 덧 '말론'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채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그는 몰로이를 찾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노인이 될 때까지 이 곳에 갇혀야하는 이유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는 독방에 있다. 그리고 의사가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잡답을 정기적으로 (강제로) 주고 받곤 할 뿐이다. 말론은 독방에서 누워 허공을 쳐다보며 어째서 자신이 이곳 독방에 있어야하는지 생각하며 탈출만을 꿈꾼다.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던 말론의 아들이 독방 속 말론에게 찾아오고, 마침내 말론은 풀려난다. 그렇지만, 말론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라고 찾아온 자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누군가가 연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말론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연기에 동참한다.

다시 탐정이던 시절 자신의 집으로 말론을 데려간 말론의 '아들'과 말론은 평범해보이는 일상을 보내지만, 말론은 언제나 무엇인가가 어긋나있음을 알고 있다. 아들은 언제나 그를 감시한다.

마침내 어느 날 기회가 생기자 말론은 집에서 도망쳐서 한 극장으로 숨는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패러디로 보이는 연극을 감상하고, 그 연극이 자신의 삶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말론은 그 '공연'의 극작가를 찾아가지만, 그가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기나긴 독백에 빠지고, 자기 자신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몰로이라는 사실과 <몰로이>의 1부의 몰로이의 독백을 스스로가 썼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 말론은 스스로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다시 정신병원으로 가고자 하지만, 그의 독방은 그를 거부한다. 

말론은 스스로가 미쳤다고 거리에서 울부짖지만, 그에게는 독방으로 돌아갈 권리나 자유 따위는 없다.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강요된다. 말론은 마침내 깨닫는다, 자신의 독방이 자신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는 것을.

이에 말론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자신의 '독방'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여러 범죄를 저지르지만 아무도 그를 잡지 않는다.

이에 말론은 점점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자기 자신이 미쳐서 만든 망상인지, 아니면 세계가 미쳤는지.

그리고 마침내 말론은 깨닫는다, 자신의 그저 한 작가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에 말론은 그에게 거부하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론 죽다.]

이것이 <말론 죽다>의 줄거리다.



JHALOFF: 이 줄거리, 진짜야?

베케트: 구라지, ㅄ아.


물론 당연히 저 위의 '줄거리'는 <말론 죽다>와는 99프로 관계없다. 약간 관계있는 것은 '말론'이란 이름과 '독방'뿐. 

하지만 저 줄거리와 베케트의 소설과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결국은 언어로 지어낸 가짜 이야기라는 것을 똑같지 않은가?

베케트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리고 이런 언어를 통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든 것은 허위고, 아무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다.> 나 <모든 말은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이다.> 라고 이미 이 베케트 양반은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위 말들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끝없이 말하면서 베케트는 실천한다.

이 아일랜드 노인네는 문장 중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장 자체에 집착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장의 집합이 <말론 죽다>라는 소설을 만들어내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없다.

말론이란 이 노인네는 베케트와 여러모로 닮았다. 아니, 어쩌면 베케트 본인의 분신이 아닐까. 말론 또한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놀지만, 결국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그저 우스꽝스럽고 추한 이야기만 남을 뿐이다.

밀실 속 말론은 고독하다.

그의 무질서한 독백이나 그의 무질서한 소설, 그의 무질서한 생활. 죽음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사색과 잡글을 쓰는 말론. 결국 말론은 죽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실제로' 죽든, 안 죽든, 그는 죽는다. 물론 이 '실제'란 말 자체도 결국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말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더 진짜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Nothing is more real than nothing>

물론 여전히 <말론 죽다>는 삼부작이란 이름에 맞게, 기존의 등장인물들도 '등장'한다. 물론 몰로이나 모란, 머피 등이 그 '몰로이'나 '모란', '머피'란 보장도 없고, 그저 등장만 할 뿐이다.

베케트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누구보다도 '언어'에 통달하였지만, 언어라는 장난감에 싫증이 난 그는 이제 그 장난감을 부수려고 한다. <몰로이>가 그래도 아직 부수기 전 작품이라면, <말론 죽다>는 이제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부수려는 이야기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가 이 장난감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즐거워하며 가지고 논다.

그리고 독자는 괴롭겠지.

<말론 죽다>는 그의 본격적으로 언어와 소설에 대한 해체작업의 시작이다. 하지만 작업은 계속된다.

붕괴는 아직 멀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서 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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