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2)- <동 쥐앙>, 어느 도덕 희롱자 독서일기-희곡



돈 주앙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의외로 굉장히 많고, 닳고 닳은 소재라서 돈 주앙의 훝장이 헐정도로 많다.

스페인 희곡도 있고, 바이런도 돈 주앙을 소재로 시를 썼고, 버나드 쇼도 일단은 돈 주앙을 소재로 <인간과 초인>을 썼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도 있고, 하여튼 굉장히 많다.

몰리에르 또한 이렇게 닳고 닳은 소재로 <동 쥐앙>을 썼다.

그렇지만 역시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소재가 아니라 필력이라고 안 했던가?

톨스토이가 불륜으로 소설 쓰면 <안나 까레리나>고, 잉여가 불륜으로 소설 쓰면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나오는 세상이다.

몰리에르가 누구인가? 이미 타르튀프 리뷰에서도 썼지만, 명색히 유럽 쫭깨들이 때때로 셰익스피어보다 뛰어나다고 외치는 프랑스 최고의 극작가 중 하나가 아닌가?
(물론 나는 셰익스피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몰리에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뛰어난 작가다. 사실 발음도 간지난다. 프랑스인 친구가 발음하는걸 들었지만, 나 같은 잉여는 그냥 몰리에르, 고 하지만, 정통 프랑스인은 몰-리-에헭-르, 고 간지나게 이름 불려준다. 아, 이것이 몰리에르의 진짜 이름인가.)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물론 이야기적 측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

누구나 아는 그 돈 주앙의 이야기다. 바람둥이지만, 자신이 죽였던 기사단장의 석상을 초대하고, 결국 지옥으로 끌려들어간다.

하지만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분명 타르튀프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가장 느꼈던 것은 과연 그의 '패배'이자 '최후'가 억지로 짜맞춘 비극과 같다는 점이다. 타르튀프의 몰락처럼, 동 쥐앙의 최후는 몰리에르의 세계 속에서는 굉장히 인위적이다.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한 마디로 '도덕'을 가지고 노는 개구쟁이다.

그는 도덕마저도 그가 원하는데로 조정할 수 있다.

이런 섬칫한 점은 그가 석상의 초대 이후 '회개한 것'처럼 모두에게 연기를 하면서도 본심을 드러낼 때, 극명하게 들어난다.

그에게는 애당초 회개나 도덕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전부 무의미한 것이니까.

이런 점에서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도덕적 무정부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도덕이 아닌 '자유'뿐이다.

물론 시종일관 작품의 분위기는 그렇게 심각하거나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희극답게 유쾌하다. 그런 유쾌함 속에서도 몰리에르는 따까운 돌직구를 잊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몰리에르의 3대 희곡 타르튀프, 동 쥐앙, 인간 혐오자는 모두 대단한 걸작들이면서 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사실 5대희극이란 말이 있던데, 나머지 두 개는 뭔지 모르겠다. 현재 몰리에르 일단 대표 희곡 7편은 다 읽었지만, 위 3 작품이 내가 보기엔 제일 넘사벽이다.)

타르튀프, 동 쥐앙, 그리고 알세스트, 이 세 인물들은 어쩌면 하나의 원형에 대한 각각의 몰리에르의 변주일 것이다.

이런 매력적인 인물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 희극을 보거나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혐오자에서 께속.


덧글

  • CATHA 2012/11/10 12:59 # 삭제 답글

    지금 댓글로 말씀해주신 열린책들 몰리에르 희곡선집읽고있는데 좋네요! 너무 어렵지도 않고 진지빨지도 않고 유쾌한부분이 있어서 더 좋아요. 그런데 궁금한점이 돈 주앙의 최후가 어떤면에서 인의적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씀해주실수 있나요?
  • JHALOFF 2012/11/11 01:24 #

    일반적인 돈 주앙 전설이라면 그냥 신의 심판이다, 그려러니 하겠는데,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말 그대로 도덕조차 가지고 노는 인물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신의 심판'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빼면, 그는 결코 몰락하지 못 했을테니까요. 마치 타르튀프가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 CATHA 2012/11/12 21:44 # 삭제 답글

    으아 어렵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감은 오는거 같아요 좋은 설명 잘 듣고 갑니다
  • JHALOFF 2012/11/12 22:22 #

    그냥 제 사소한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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