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3)- <인간 혐오자>, 어느 도덕 신봉자 독서일기-희곡


인간 혐오자.

이 얼마나 매력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제목인가?

스스로 '인간'이면서 '인간'을 혐오한다.

우리의 주인공 알세스트는 바로 그런 모순적인 인간이다. 그는 기존의 몰리에르의 두 주인공, 타르튀프와 동 쥐앙과는 가장 극단에 서있는 인물이면서도 가장 동질감을 가진 인물이다.

도덕을 희롱하는 타르튀프와 동 쥐앙과는 달리, 알세스트는 결벽적으로, 거의 편집광적으로 도덕찬양론자다. 이런 도덕결벽증자의 눈에 사소한 도덕적 결함이라도 있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은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는 모든 인간을 혐오한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누구보다도 인간을 혐오하는 그가 굉장히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은 여인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인의 도덕적 결함 때문에 알세스트는 더욱더 냉소적인 인간 혐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희곡의 부제처럼 우리의 인간 혐오자 알세스트는 사랑에 빠진 우울증 환자다. 그는 클리멘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소위 말하는 어장 관리녀인 클리멘에게 상처만 받을 뿐이다.

모든 인간과 사회의 도덕 불감증에 분노를 느끼는 알세스트의 인간 혐오증은 마침내 그를 사회와 인간으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마치 이제 자신의 땅을 가꾸려는 깡디드의 결말과 비슷하거나, 정 반대처럼 알세스트는 진정으로 인간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

비록 희극이고, 이런 인간 혐오자 알세스트와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분명 관객을 웃게 만들지만, 오히려 이런 외로운 인간 혐오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구슬프다.

알세스트야말로, 몰리에르가 추구했던 타르튀프와 동 쥐앙스런 인물의 가장 최종적인 진화형태가 아닐까.

알세스트의 몰락은 타르튀프나 동 쥐앙의 몰락과는 다르다. 불협화음적인 타르튀프와 동 쥐앙의 몰락과는 달리, 알세스트의 몰락은 철저하게 예견된 것이고 필연적이다.

이런 진지한 희극의 결말을 과연 비극으로 받아들일지, 희극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판단일 것이다.

과연 알세스트처럼 도덕 결벽증으로 스스로를 사회에 격리시킬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에 눈을 감고, 스스로 혐오스러운 인간이 될 것인가, 이 판단 또한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알세스트의 눈에는 당연히 나 또한 혐오스런 인간 종자일뿐이지만, 그런 인간혐오자이자 도덕 신봉론자인 알세스트와 몰리에르가 존재했기에 이런 걸작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이 얼마나 행복한가?

설령 벌레와 같은 인간버러지일지라도, 이런 행복이 있다면, 벌레 취급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는가?

끗.

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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