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비극을 죽였는가? - 살인 탐정 J 감상록 독서일기-비평


아래의 글은 조지 스타이너의 <비극의 죽음> 을 읽고 (믿기 힘들지만) 그 내용을 토대로 쓰여진 미치광이글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구상한 것보다는 짧다, 귀찮아서. 아 내가 미쳤지.
-------------------------------------------------------------------------------------------------
누가 비극을 죽였는가? - 살인 탐정 J 감상록


내 이름은 그저 J라고만 해두자. 직업은 아마 탐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몇 해전부터, 읽을 수 없는 책을 강제로 읽으려고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고문하게 만드는 그런 때, 저절로 밤거리로 발걸음이 향하는 그런 때, 나는 끝없이 범죄와 관련된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건들 때문에 세상에서는 간혹 나를 '살인탐정 J'라고까지 부르게 만들었다.*1)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비극 씨에게서 그가 마지막 은퇴 연극을 그의 별장에서 할 예정이니 참석해달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처음엔 놀랐지만, 나는 비극 씨의 최후의 공연을 볼 수있는 기회, 반은 아쉬움과 반은 설레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어느 외딴 섬에 위치한 외딴 별장의 비극 씨를 만나러 갔다. 섬에는 나를 비롯하여 비극 씨, 소포클레스 씨, 셱스피어 씨, 라신 씨, 레싱 씨, 괴테 선생, 위고 노인, 바이런 경 그리고 입센 씨, 이렇게 10 명의 사람만이 있었다. 

비극 씨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배우였다. 그는 서양 그리스 태생으로 서양의 수많은 극작가들과 차례대로 협력하여 수많은 명작들을 직접 공연하여 사람들의 눈물을 훔치는 것을 유명하였다. 물론 그의 명성은 이제 하룻밤의 여흥거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는 전설적인 배우였을뿐, 그의 전성기는 이미 끝났다, 라는 말조차 심심치 않게 나오던 상황에서 그가 은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연극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크나큰 비극이었다. 
비극 씨는 참으로 가족 관계도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를 서사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서정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에게는 아내 시와 배다른 동생인 희극이 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희극과 시가 한때 바람도 났었다고 한다. 비극 씨와 그의 아내인 시는 현재는 별거중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어느 순간부터 비극이 아내인 시를 멀리하였다고 한다. 또한 비극은 굉장한 배우였지만, 희안하게 그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언제나 엇갈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외모를 정확히 정의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평론가는 아무도 없었다. 이 또한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언제나 비극의 공연을 봤지만, 그의 얼굴을 글로서 묘사할 수가 없다. *2) 어째서 내가 이런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정보를 끝없이 토해내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비극의 마지막 은퇴 공연 바로 전날, 그의 방에서 비극 씨는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었다.
도대체 누가 비극을 죽였는가? 경찰을 부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손수 도끼로 모든 전화기를 박살내었다. 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직감하였다, 내가, 이 살인 탐정 J가 비극의 죽음을 직접 해결해야한다는 것을.

누가 비극을 죽였는가? 그 진실을 찾기 위하여 우선 내가 한 것은 용의자들을 감금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비극의 시체를 앞에 두고 우왕좌왕하고 있던 8 명의 사람들의 뒤통수를 숟가락으로 차례차례 하나씩 때려 눕혔다. 약간의 저항도 있었지만, 원체 골방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란 족속은 워낙 연약하기에 숟가락으로 이마를 대 여섯방 정도 가격하자 금세 잠잠해졌다. 처음에는 비극의 시신 옆에 놓여있던 도끼를 쓸까도 했지만, 나의 목적은 무고한 이를 죽이는 것이 아닌 범인을 쳐죽이는 것이기에, 또한 이 도끼가 바로 비극의 목숨을 앗아간 흉기라는 것을 알았기에 쓸 수가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여덟 명을 보자, 나는 저절로 '아, 이제 이 사건이 끝나면 또 살인탐정이란 소리를 듣겠구나,' 란 농담을 하였다.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나는 창고에서 밧줄을 가져와 여덟 명을 차례차례 도망치지 않도록 묶고, 의자에 앉아 기절한 이들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제일 처음 깨어난 이는 소포클레스 씨였다. 노쇠한 그는 눈을 뜬 후에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마치 간질 환자처럼 눈을 바르르르 떨면서 몸을 떨었다. 뺨을 한 대 때리자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고, 두 대를 때리자 눈앞에 나를 알아보았으며, 세 대를 때리자 자신이 포박되었다는 사실도 곧 깨달았다.

"이봐, J, 이게 무슨 짓이야," 그가 소리쳤다. "어서 경찰을 불러! 아니, 잠깐, 설마 자네가 비극 씨를 살해한건가? 살인 탐정이 드디어 살인마가 되버린거야?"

"아, 진정하세요, 소포클레스 씨,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이것이 제 방식이죠, 살인 탐정의 방식입니다. 비극 씨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합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겠죠."

"무엇을 원하는거지?" 노인이 몸을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마치 궁지에 몰려 마지막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는 한 마리 개를 보는 것 같았다.

"당연히 선생님께서 결백하다면, 누가 비극을 죽였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와 정보. 만약 선생님이 범인이시라면, 심판의 도끼를 받기 위한 자백을 해주시죠." 나는 일부러 그의 눈 앞에서 비극의 머리를 두 동강냈던 도끼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비극의 굳은 피맛이 온 몸에 울려퍼졌다. 마치 내 안에 비극이 살아숨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피를 핥는 행위에 열중하고 말았다.

"나는 범인이 아니야, 하지만 도대체 누가 비극을 죽였는지는 모르겠네. 그러니 어서 나를 풀어줘." 

"아아, 선생님, 어떠한 정보도 없으면 쓸모가 없어요, 쓸모 없는 관계자는 일찌감찌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이 좋겠죠? 선생님의 목은 한 번에 내리치기에 좀 짧을까요?" 나는 그의 목에 도끼날을 살짝 갖다대며 말했다.

"아, 알았어, 알았어, 우선 그냥 아무 정보나 줄께." 드디어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몸이 쑤시는군.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그래도 늙어서 저 저주받을 성욕에서 벗어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3) 알다시피 나는 비극과 함께 대략 2400여 전부터 그리스에서 많은 공연을 벌였지. 우리, 우리 세 사람, 나의 스승이었던 아이스킬로스와 나의 후배였던 에우리피데스, 이렇게 세 사람이서 거의 최초로 비극을 배우로 만들었지. 모든 것이 잘 되었어. 우리는 우리의 신들에게 바치는 연극을 만들었지. 하지만 자네, 그때의 비극과 최근의 비극이 달랐던 것은 알고 있나?"

"그게 무슨 소리죠?"

"아, 난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이교도지만, 어쩔 수 없어, 난 우리 위대한 그리스의 신들을 믿으니까. 기독교의 신과 그리스의 신들은 다르지. 비극은 곧 신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공연했어. 거기에는 어떠한 신의 축복도 없지. 오이디푸스 왕은 어떤가? 그가 과연 어떤 악행을 벌였던가? 오히려 영웅에 가까운 존재지. 그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데 이유가 있나? 없어, 그저 신들, 운명의 변덕일뿐. 우리는 그저 그런 오이디푸스가 철저하게 몰락하는 것만을 열심히 공연하면 되었지. 하지만 그놈이 등장하면서, 그놈이 나에게서 비극을 빼앗아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지." 노인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그건 저 노친네가 나를 말하고 싶은걸꺼요." 그때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한 대머리가 바닥에 엎드린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였다.

"아, 일어나셨군요, 셱스피어 씨." 나는 그를 똑바로 일으켜주며 말했다. "상황 설명이 필요하겠죠?"

"아니오, 설명은 필요없오, 이미 모든 정보는 충분하오." 셱스피어가 말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내 이름에서 '셱'을 강조할 필요는 없소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정말 비극이구려, 아무리 우리의 인생이 무대라고 하지만, 그 위대한 배우였던 비극 씨가 무대를 퇴장하다니."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셱스피어 씨,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면 말이죠." 내가 말하자 셱스피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소, 비록 지금의 상황이 저에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의 문제지만, 나 또한 비극을 죽인 범인을 잡고 싶으니,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소." 

이윽고 셱스피어는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물론 저는 소포클레스 씨와 함께 연기를 했던 비극 씨도 좋아했지만, 그것들은 너무 옛날의 연극이었습니다. 저는 아예 새로운 종류의 연극을 비극 씨와 함께 해보고 싶었죠. 저의 동료들은 많았습니다, 친애하는 나의 동료 크리스토퍼 말로우나 벤 존슨, 미들턴 씨, 후배인 웹스터 씨나 존 포드 씨 등등 여왕과 국왕의 도움으로 저희는 무수히 많은 연극에 비극 씨를 등장시킬 수 있었죠.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은 너무나도 야만적입니다, 무질서하죠. 저희는 기독교의 신 아래에 비극 씨를 연출해야했습니다. 코러스에 의존하지 않는 더 새로운 기법, 새롭고 더 많은 등장인물들, 새로운 종류의 비극을 말이죠." 셱스피어가 말을 계속 하는동안, 쓰러졌던 사람들이 한두명 씩 깨어나기 시작하였다.*4)

        "잠깐, 당신은 틀렸소, 셱스피어, 당신의 연극은 틀렸소." 순간 라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딜가나 큰 싸움에 끼고 싶어하는 프랑스인답게 라신은 자신이 묶여있고, 내가 언제든지 그의 목을 몸과 분리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듯 재잘거리기 시작하였다.

        "오, 노우, 노우, 무슈 셱스피어, 당신의 연극보다는 역시 고귀한 소포클레스 씨와 같은 연극이 더 진리에 가깝소. 나와 나의 선배이자 내가 언제나 등쳐먹었던*5) 코르네유 또한 그런 쪽에서는 같은 생각을 공유했지. 고대 그리스의 비극 답게, 3 원칙을 지키고, 제한된 연극을 펼쳐야하오. 등장인물은 최대한 적게, 움직임도 최대한 정적이게, 아리스토텔레스의 3원칙에 따라 줄거리는 언제나 일관되며 극 내의 시간은 하룻동안에 모두 이루어져야하고, 언제나 같은 장소에 펼쳐져야하죠. 무슈 셱스피어, 당신의 후배였던 무슈 드라이든 또한 한때는 우리와 같은 신고전주의 연극을 썼지만, 또 한때는 저열한 당신네 엘리자베스 패거리의 연극을 썼다고 하더군요."

        그때 소포클레스 영감이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3일치의 원칙이라니, 그딴 것들은 도대체 뭐야? 풋내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딴 소리를 했다고?"

        "잠깐, 모두 틀렸소." 젊은 독일인 친구 레싱이 라신을 향하여 소리쳤다. "한심하군, 라신, 3일치의 원칙이라니, 애당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그딴 헛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어. 그저 당신들 유럽 짱깨들이 시학을 잘못 해석하여 벌어진 촌극에 불과하지. J, 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시오, 내가 이 모든 희극을 끝내도록 하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레싱은 말을 계속하였다. "애당초 소포클레스 씨와 셱스피어 씨가 대립한다는 것 자체가 틀린 말이에요. 그 누구보다도 소포클레스 씨를 계승한 것이 셱스피어 씨인데! 생각해보시오, 이 모든 것은 그저 신고전주의자들이란 것들의 어리석음에 불과하오."*6)
        
        "하지만 우리 신고전주의자들 이후 비극 씨가 제대로 된 연극을 한 적이 있소? 그 후로 비극 씨의 명성은 계속 하락세였소. 우리가 그의 정점이었지." 라신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 때 이후였던 것 같소이만." 셱스피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셱스피어, 당신 이후, 비극 씨가 제대로 활동할만한 연극을 쓸 극작가가 없었으니까! 당신과 소포클레스가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들어버린 것이오. 마치 베토벤 이후 독일 교향곡이 계속 하락의 길을 걸었듯이." 레싱은 소리쳤다.

        "아아, 좋은 얘기들이에요, 다들." 지루해진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비극 씨의 죽음에 관련이 있을까요?"

        "있소, 당연히 관련 있소." 괴테 선생이 입을 열었다. "분명 비극 씨의 죽음에는 비극 씨의 몰락과 관련이 있소, 그리고 나는 그의 몰락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지."

"셱스피어 씨와 비극이 공연한 연극들은 정말로 엄청났소. 그것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독일문학이 받은 영향 또한 엄청났지. 나는 파우스트라는, 비극을 위한 연극을 쓰려고 노력했지. 물론 그것은 실패였소. 나의 파우스트는 결국 그의 형제였던 희극에 의하여 공연되었으니까. 파우스트말고도 내가 젊었을 적 시도했던 비극을 위한 작품들조차 소포클레스나 셱스피어가 썼던 작품보다는 못한 작품들이었지. 나의 후배인 실러 또한 마찬가지오. 실러의 작품 자체는 훌륭하지만, 비극을 위한 숭고한 작품은 아니었지. 그 밖에 나의 모든 독일인 후배들 또한 이와 같소. 하지만 나는 파우스트를 통하여 셱스피어와 소포클레스, 두 사람을 결합시키려고 했지. 낭만적 발푸르기스의 밤과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같은 경우 말이오.*7) 이는 바이런 경도 잘 알 것이오. 나의 파우스트와 헬레네의 아들은 바이런 경을 소재로 만들어진 자니까."

"아아, 그렇소." 바이런 경이 말했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에요, 마치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비극이 죽어있었군요. 사실 비극 씨는 언제나 가장 시대의 유행을 타왔던 배우였죠. 오페라 같은 것들을 보세요. 비극 씨는 대중들이 가장 즐겨 보기에 가장 대중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죠."

"그것말고도 더 큰 문제가 있잖소." 위고가 끼어들었다. 참, 역시 이런 것들은 프랑스인의 특징일까. "나의 크롬웰 서문같은 것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우리 낭만주의는 언제나 숭고한 비극을 위한 작품을 꿈꿔왔소. 사실 결코 성공적이지 못 했지. 물론 뛰어난 작품이 안 나왔던 것은 아니오. 다만 비극 씨를 위한 위대한 희곡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비극 씨가 자신의 부인인 시와 이혼한 사건이었지. 사실 여기엔 숨겨진 내막이 있소. 알다시피 비극 씨는 언제나 자신의 연극에서 음악을 중시했소. 그리스 때부터 이미 합창과 합주가 동원되었고, 그렇기에 비극이 시와 결혼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소. 둘이 뗄 수가 없는 관계였지. 그러던 어느 날 비극이 산문과 바람이 난 것이오. 그렇게 점차 비극과 시의 사이는 멀어지다, 결국 이혼하는 사태까지 와버렸지.*8) 어쩌면 이때부터 새로운 비극 씨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소."

"그렇지만 비극 씨가 완전히 몰락했다고 하기는 힘들죠." 입센이 말했다. "저와 스트린드베리, 그리고 체호프 씨*9)는 소포클레스 씨나 셱스피어 씨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근대극의 문을 열었죠. 그리고 비극 씨를 초청했어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죠. 어쩌면 사실 가장 큰 사건은 비극 씨가 더 이상 극장에서 공연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 비극 씨와 극장의 결별 또한 참 말이 많았죠. 어쨌든 그 이후 다시는 숭고한 비극 씨를 볼 수 없었소. 꽤 최근에 브레히트란 친구가 억척어멈과 자식들이라는 비극 씨를 위한 희곡을 썼고, 꽤 성공적인 작품이었음에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기는 힘들죠. 어쩌겠습니까, 누군가는 영웅이 완전히 죽어버린 시대이기에 비극 씨의 시대도 저물었다고 하는 것을. 어쩌면 비극 씨는 현대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누가 비극을 죽였다는 것이죠? 누가 비극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죽였는지, 그것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누군긴, 바로 네놈이지!" 갑자기 모두들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그래,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듣지 않으려고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았지만, 소용 없었다.

"네가 비극을 죽였다-! 너 같은 무신론자가, 더 이상 아무도 신을 믿지 않게 되자, 비극을 죽였지, 네 놈이, 너 같은 삼류 소시민이! 모두들 도시의 소시민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지, 그리고 신의 위엄도 사라졌지. 그렇기에 숭고한 비극은 죽었다! 아니 살해당했다네, 바로 네놈의 손에 의하여! 네놈의 도끼가! 네가 비극을 죽였어! 네가 도끼로 비극을 쳐죽였어! 그리고 우리도 죽였지! 아무리 귀를 막고, 눈을 막아도, 네 손에 묻은 피는 누가 씻어줄 것이며 너가 든 도끼의 무게는 누가 지워줄 것인가? 네가 비극을 죽였다, 살인자, 살인자, 살극자, 살학자, 살인마, 살인자, 버러지, 소시민, 무신론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아아 살인자, 이 말이 끝없이 울려퍼진다. 나는 그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저 미친듯이 그들을 향하여 도끼를 휘두르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할 방도가 없었다. 그들의 머리가 박살나고, 바닥이 피로 흥건히 젖어도 그들의 메아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과연 내가 그들을 죽이고 있는걸까, 아니면 전부 환상일까,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체포되있었고, 방안에는 비극을 비롯한 아홉 명의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어느 누구도 밧줄에 묶여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비극과 동시에 살해당했던 것이다.

감옥에서 나는 비극의 부고 소식을 다시 한 번 들었으며 동시에 그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는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비극의 아들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비극이라는 것을, 숭고한 비극은 죽었어도, 오늘날을 위한 새로운 비극으로 다시 탄생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비극은 죽었으되 죽지 않는다. *10)


나는 지금 독방에 갇혀 나의 몰락과 비극의 죽음에 관한 잡글을 쓰고 있다. 염소의 노래!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두 번 태어난 자여, 나의 노래를 받으소서! 아아 나의 옛 동경이여, 나의 사랑이여, 나의 몰락이여! 아아 그렇지만 나 같은 삼류 살인마의 이야기는 삼류 비극거리조차 되지 못 한다. 그렇다면 신의 죽음을 소재로하는 비극은 어떤가? 신의 죽음을 그리는 최후의 장엄한 비극! 그렇다, 새로운 비극이 필요하다, 나 같은 삼류 소시민을 위한 비극, 이 시대를 위한 숭고한 비극이. 

그렇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1) 첫문단은 일단은 모비딕의 첫문단 졸렬한 패러디다.
2) 비극에 관한 정의는 여럿 있지만, 모호한 것은 사실이라고 스타이너는 말한다.
3) 저 성욕 발언은 국가론에서 소포클레스가 했다고 카는 말이다.
4) 스타이너는 일단은 형식적으로 입센의 등장 이전까지 비극의 역사는 그리스 비극과 영국 르네상스 비극의 대립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영국 르네상스 이후 비극은 이전 세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고 스타이너는 평한다.
5) 실제 라신은 몰리에르나 코르네유를 x먹이기도 했다.
6) 레싱은 그리스 비극과 영국 비극이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계승한 존재로 보았다.
7) 괴테의 희망은 독일적인 것과 이탈리아(고대 그리스 로마)적인 것의 결합이었다.
8) 원래 모든 비극은 '비극시'였다. 현대로 올수록 점차 산문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현대로 오면 오히려 시극은 거의 사라진다.
9) 다만 스타이너는 이들 이후 다시 원래의 그리스 비극과 영국 비극의 대립으로 돌아갔다고 평한다.
10) 스타이너는 '비극' 자체가 서양 문학의 고유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한' 비극의 죽음은 신앙의 약화와 소시민들의 등장에서 그는 원인을 찾는다. 신이 없기에 장엄한 운명이나 비극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이는 장엄한 비극에 해당되는 말이다. 스타이너는 오히려 비극이 이전까지처럼 다른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장엄한 비극이 죽었을 뿐이다.

-------------------------

빼먹은 부분도 꽤 되지만, 어쨋든 재밌게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싶군요. 기회 되면 스타이너의 또다른 에쎄이인 <안티고네>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덧글

  • 투미 2012/11/20 18:14 # 삭제 답글

    잘롭 님을 따라하자면 잘도 이런 미치광이 글을-! 이라고 할까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 JHALOFF 2012/11/21 00:34 #

    감사합니다 ㅎ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139
376
626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