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1) 인형의 집- 인형을 그만두고 인형을 초월하다 프로젝트- 헨릭 입센

노라: 토발드! 나는 인형을 그만두겠다! 나는 인형을 초월하겠다! WRYYYYYYYYYY-!!



<인형의 집> 말 그대로 '고전'이라 불릴만한 희곡이다. 누가 고전을 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이라 그랬던가. 이처럼 <인형의 집> 또한 그 내용 등은 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작품이었다.

아, 하지만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이 책을 읽지 않았기에, 나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기쁨을 얻었고, 앞으로 다시는 이 책을 처음 읽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질 것이다. 

사실 <인형의 집>은 세간에 잘 알려진대로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희곡이라 불릴만하다. 애당초 작품 자체가 '노라'라는 한 여성이 가부장과 남성으로 얼룩진 사회에 대항하는, 말 그대로 그 시대의 페미니스트를 묘사한 혁명적인 작품이 아니겠는가?

여자는 인형일 뿐이며, 인형의 집에 갇혀있으며, 그들의 진정한 사랑이나 도덕조차 남성의 잣대로 인하여 왜곡될 뿐이다.

'노라'는 여성이 아니다. 노라는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인간.

노라가 꼭 여성에게만 국한될 순 없을 거다. 노라는 우리 그 자신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리에게 영웅으로 비쳐진다.

노라 또한 선언하지 않는가, 아내이기 이전에, 엄마 이기 이전에,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 그 자체가 되겠다고.

비단 인형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노라뿐이겠는가? 우리 자신들조차 노라처럼 인형의 집에 살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이 희곡은 '노라'라는 한 인간의 성장기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노라는 한 마디로 어린 소녀, 아니 애다. 말 그대로 어린이다. 이미 세 자녀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이 그녀를 인형 가지고 놀듯, 그녀 또한 그녀의 자식들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한다.

어린이기에 순진무구하며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현재 상황조차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녀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놀이일 뿐이다.

이런 그녀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어른이 되는 것은 역시 가혹한 현실,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을 때다. 자기 자신이 한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했을때야 비로소 노라는 한 여성, 아니 한 어른, 한 인간이 된다.

그녀의 남편은 노라를 아내와 엄마의 권리조차 포기하는, 인간의 길을 포기하는 짓이라며 비난하지만, 이미 이전에 남편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를 포기한 그는 그저 속물이며 위선자일뿐이다.

물론 제 3 자의 관점에서 남편의 말에 동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이 되기 이전에 노라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그저 또다른 인형놀이를 만들 뿐이다.

하지만 작중 배경이나 노라와 남편의 그 이후를 생각하면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과연 노라가 제대로 '인간'까지 이를 수가 있을까? 그녀가 떠난 가정에서 아이들과 그의 위선적인 남편조차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

그저 비극만을 낳을 뿐이다.

하지만 비극이면 어떻하랴? 노라라는 한 인형이 스스로 인간이 되고자 투쟁하고, 장엄하게 인간 그 자체를 향하는 고난을 보여주면서 몰락하는 이 숭고한 비극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노라를 인간으로 만들뿐인데.

희극이되 비극이며 비극이되 희극이다.

인형 노라의 탈출은 인형인 우리에게 인형의 집을 뛰쳐나와 인간이 되라는 외침이다.


*8권짜리 영역 Oxford Ibsen 전집 중 <A Doll House>를 읽고 이 잉여잡글을 씁니다.

덧글

  • 이쿠루 2012/12/08 12:49 # 답글

    극적이네요. 자각은 사람인에게 중요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 JHALOFF 2012/12/08 20:56 #

    아무래도 희곡이니까요 ㅇㅇ 조은 희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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