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2) 건축사 솔네스- 인간으로서 추락하다 프로젝트- 헨릭 입센

셰익스피어 이후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뽑히는 입센을 덕질한 두 명의 작가가 있었으니 한 명은 버나드 쇼며 또 한 명은 제임스 조이스다.
조이스는 알다시피 입센을 원서로 덕질하겠다는 엄청난 덕력으로 스스로 노르웨이어를 독학하여 입센과 직접 팬편지도 주고 받는 사이로까지 발전하였으니, 조이스에게 끼친 입센의 영향은 상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의 주인공 피네간을 묘사하는 단어 중 하나가 '건축사 피네간 (Bygmaster Finnegan)'인데, 이는 입센의 희곡 '건축사 솔네스(Bygmaster Solness)'에서 따온 말이다.

피네간의 추락처럼 우리의 건축사 솔네스 또한 추락한다. 이는 늙은 트롤의 추락이다.
입센의 환상적인 극인 페르 귄트에선 직접적으로 트롤들이 나오지만, 이 희곡은 소위 말하는 현실적인 희곡임에도 불구하고 트롤이 나온다. 그것도 두 명이나 나온다. 바로 늙은 트롤 솔네스와 트롤 소녀 힐다다.

물론 이는 나의 과장이 아닌, 작중 언급되는 트롤에 관한 부분에 의하여 어느 정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어린 소녀 힐다는 늙은 건축사 솔네스에게 집착한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아니, 사랑에 빠진 소녀, 아니 사랑에 빠져 솔네스에게 집착하는 십대 소녀 힐다, 혹은 트롤 소녀라고 해두자.

그녀는 공상 속 공주다. 10년전 아마도 솔네스는 장난스럽게 어린 아이에게 약속했던 것을 철석같이 믿으며 그 공상을 솔네스에게 요구하며 마치 문학 속 팜므파탈처럼 힐다는 솔네스를 파멸로 이끈다.

그렇지만 그녀는 팜므파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녀는 하나의 상징이자 솔네스의 내면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래, 트롤이다. 이 어린 트롤은 예술가인 건축사 솔네스를 파멸로 이끈다.

하지만 솔네스 또한 트롤이다. 그는 이미 늙어버린 트롤이며 수많은 욕망에 의하여 상처받은 트롤이다. 아이를 원하고, 잃어버린 아픔, 건축에 관련된 집착, 창조에 관한 집착 등 그는 신화 속 트롤처럼 욕망 그 자체다.

그는 어린 트롤 힐다가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 또한 같은 트롤이기에, 스스로의 파멸을 원하기에, 신과 맞서기 위하여 탑으로 올라간다.
조이스가 피네간의 추락에 솔네스의 추락을 포함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늙은 트롤은 스스로 파멸하여 스스로 예술 그 자체가 된다. 고소 공포증을 가졌음에도 탑에 올라가 하늘에서 신과 대면하고, 더 이상 신의 창조물인 교회를 짓기를 거부하고, 인간 그 자체를 위한 집을 창조하겠다는 솔네스는 위대한 창조자며 위대한 예술가며 위대한 예술 그 자체이며 인간 그 자체다.

'힐다'라는 여성상 또한 물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의 억압받는 여성과는 달리, 순진무구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여성이기에, 이 또한 어느 정도 페미니즘적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극의 중심인물이자 어쩌면 그녀가 진정한 이 희극의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노라처럼 그녀 또한 어린 아이에서 솔네스의 추락으로 현실을 본다. 하나의 예술이 된 솔네스를 보고 앞으로 어린 트롤인 그녀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하지만 단순히 페미니즘 극작가가 아닌,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 때로는 셰익스피어보다 위대한 극작가를 보고 싶다면, 이 솔네스의 추락을 감상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8권짜리 영역 Oxford Ibsen 전집 중 <The Master Builder>를 읽고 이 잉여잡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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