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연극론>- 부조리를 분석하다 독서일기-비평


<부조리 연극(론)>은 마틴 에슬린의 저서로 제목 자체는 굉장히 지루해보이지만, 사실 꽤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꽤 인상 깊은 점은 소위 말하는 '부조리극(theater of the absurd)'란 용어 자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그 부조리극에 속하는 작가들을 임의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그렇게까지 새로운 면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이 연구서를 토대로 부조리극 연구가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

에슬린은 소위 말하는 '부조리극'에 속하는 작가들이 꽤 동시대에 다발적으로, 서유럽과 동유럽 등에 나타나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존주의의 대두와도 연관을 시킨다. 

하지만 그는 실존주의자들의 연극과 부조리극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소위 말하는 '부조리'를 실존주의자들이 이성적을 철저하게 계산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면, 부조리극은 그러한 실존을 말 그대로 혼돈! 파괴! 망가~~~~ㄱ! 인 무대에서 관객이 '느끼게'한다는 점이다.

에슬린은 베케트나 장 주네, 이오네스코, 아다모프, 해롤드 핀터 등의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이 밖에도 서유럽과 동유럽의 무수히 많은 극작가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짧막짧막하게 분석을 해준다.

물론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에슬린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사실 이러한 작가들을 '부조리극'이란 틀 아래에 묶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무의미하단 점이다. 오히려 틀에 속박되지 않기에 '부조리극'이란 것을 에슬린도 알고, 그 한계를 인정한다. 마치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틀 아래에 묶듯이 말이다.

에슬린에 의하면 부조리극은 하나의 완벽하게 새로운 현상이다. 물론 이는 서구의 전통적인 희극에서 상당히 필연적을 계승될 수밖에 없는 희곡 방식이다.

상당히 직접적인 뿌리로 에슬린은 쟈리의 <위비왕>에서 찾는다. 마치 예이츠가 <위비왕> 공연을 보고, 스스로 앞으로 우리 (낭만주의자들)의 시대가 끝나면, 잔혹한 신만이 지배한다, 란 예상을 하였지만, 사실 예이츠의 이런 예상은 틀렸다. 잔혹한 신이 지배하진 않는다. 부조리극 등의 새로운 극으로 문학은 계속된다.

물론 에슬린의 이 저서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할 것이다. 이미 나온지 꽤 된 것도 있고, 최초로 분석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겠지.

그래도 다만 그가 소개한 매력적으로 보이는 작가 몇몇, 아직 접해보지 않는 작가들 목록을 얻을 수 있어서 그 점 또한 좋았다.

귀찮다.

끗.

사실 이 리뷰도 도끼 V. 똘이 나 비극의 죽음처럼 미치광이글 쓰려고 생각은 해봤고, 틀도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못 하겠다.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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