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뷔왕 - 잔혹한 위뷔가 지배한다 독서일기-희곡


예이츠는 알프레드 자리의 위비왕(위뷔왕)의 공연을 본 날, 앞으로 우리(낭만주의자)들의 시대가 끝나면, 무엇이 더 가능할까? 오직 아무 것도 없고 잔혹한 신만이 지배한다, 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이츠의 이런 생각은 틀렸다. 잔혹한 신이 지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될뿐이다, 위뷔라는 이름 아래에.

예이츠가 <위뷔왕>이라는, 이 위뷔에 관해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희곡이 나온 시대를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한 편의 부조리극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기괴하다.

위뷔 3부작, <위뷔왕>, <오쟁이진 위뷔>, <노예 위뷔>는 오늘날 초현실주의 및 부조리극의 선구자로 뽑히는 작품들이다. 그만큼 기괴하고, 부조리하다.

희곡은 결국 매우매우 뚱뚱한 위뷔, 혹은 파 위뷔에게 집중되어서 전개된다. 하지만 언어 자체가 거칠다. 욕설과 기괴한 표현들로 가득차있다. 위뷔라는 존재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위뷔왕은 전반적으로 맥베스의 패러디처럼 보여진다. 맥베스처럼 왕을 쫓고 왕이 되는 위뷔, 레이디 맥베스처럼 파 위뷔를 부추기는 마 위뷔. 위뷔의 폭정과 돌아온 왕자들에게 쫓겨나는 위뷔.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맥베스의 패러디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기괴하다. 
도무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뚱뚱한 위뷔라는 캐릭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폴스타프가 연상되기도 하며, 서로 간의 대화가 조금씩 어긋나고, 거친 욕설과 도저히 일반적이지 않은 기괴한 묘사나 표현들.

기괴하게 뚱뚱한 위뷔가 폭정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자본가에 대한 풍자가 아닌가란 생각도 들지만, 오쟁이진 위뷔나 노예 위뷔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위뷔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리는 이 위뷔 왕을 인형극으로 생각하기도 했다는데, 정말 말 그대로다. 이 희곡은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희곡이 아니다. 가짜 인형들로 연기되어야 더 제맛처럼 느껴지는 그런 희곡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나 부조리극의 작가들이 이 연극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는 이 위뷔왕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위뷔는 분명 이질적이다. 그렇지만, 예이츠의 걱정과는 달리, 우리의 시대가 끝나면 어떠한가? 잔혹한 신 대신, 폭군 위뷔만이 지배할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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