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보이체크>- 보체크? 보이체크? 너는 누구냐? 독서일기-희곡



보이체크. 아아 무섭다, 보이체크, 너는 대체 누구냐?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의 원작이기도 한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여러모로 보이체크스럽다. 뷔히너 사후 몇십년 후에서야 처음 공연되고, 처음 그의 원고를 잘못 읽어 보이체크란 이름이 보체크로 알려지고, 여러모로 보이체크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보이체크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생명 없는 인형의 이름 따위 보체크나 보이체크나 상관없지 않은가? 오히려 헷갈린다는 것 자체가 이 보이체크란 희곡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이체크는 참으로 기괴하다고 밖에는, 말 그대로 기괴한, 어쩌면 카프카를 연상케도 하는 세계를 다룬다.

보이체크는 병사이며, 결혼하지 않은 정부와 자식이 있고, 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완두콩만 먹는 생체실험까지 자원하는,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하여 투쟁하는 하층민이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오래 전부터 '광기'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씨앗을 싹트게 만드는 것은 이 세계다.

마치 서로 연관 없어보이는 무의미한 장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는 이 희곡은 결국 보이체크의 파멸까지 무의미하게 변주된다.

보이체크란 인물은 이미 이 세계에 의하여 모든 것을 빼앗긴 인형에 불과하다. 그는 과도한 감정 표현도 없다. 환상을 보며, 사회는 오히려 그러한 그의 질병을 더욱 키운다.

그가 정부가 바람피는 것을 목격했을 때도, 완두콩만 먹으며 정신실험을 받을 때도, 정부를 살해할 때도, 살인범으로서 도망쳐야하는 순간조차도 그저 고요하고 기괴하게, 물론 표현 자체가 이상하지만, 이것말고는 딱히 마땅한 말이 없다,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기괴하다. 그래, 그냥 기괴하다. 몽환적이지도 않다. 환상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지극히, 사실적,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그렇지만 기괴하다. 

베르크의 오페라와는 달리, 보이체크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 않은채 그저 서있는 것조차 당연하다. 보이체크가 무대에 서는 순간부터 그에게 생명이란 것이 존재했는가? 그는 그저 무대 위 인형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의 사회에 속한 인형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저 인형줄이 끊어지고, 인형은 움직임을 멈췄을 뿐이다.

<레온스와 레나>는 뷔히너의 유일한 희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걸 희극이라고 볼 수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오히려 현대의 희비극이다. 물론 줄거리나 전개는 희극 같지만, 작중 인물의 성격 묘사나 비합리함은 오히려 이것이 비극이 아닐까, 말 그대로 웃기지만, 실제로는 비극처럼 보인다.

<당통의 죽음>, <레온스와 레나>, <보이체크>, 젊은 뷔히너는 불과 이 3 희곡을 쓰고 요절했지만, 이 세 희곡들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현대적이었는지, 시대를 얼마나 뛰어넘었는지 충분히 그의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스타이너가 만약 뷔히너가 조금만 일찍 발굴되었으면, 얼마나 희곡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란 말을 한 것처럼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거나, 좀 더 일찍 발굴되었으면, 오늘날 더 발전된 희곡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란 아쉬움조차 든다.

뷔히너의 작품은 지만지에서도 번역된 것 같다. 추천한다.

끗.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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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만본좌 2012/12/11 00:11 # 삭제 답글

    근데 이런 짤방들은 다 어떻게 검색해서 찾는데요?? 항상 글하고 짤방하고 잘 어울리네요 ㅋ
  • JHALOFF 2012/12/11 04:12 #

    걍 관련 검색어로 구글링해서 찾으니까 어울리는 것 같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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