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 발라드 <물에 빠진 세계>- 물에 의한 정화 독서일기-소설

 

 J.G. 발라드의 <물에 잠긴 세계> 입니다. 이번에 처음 읽은 발라드 책인데 아주 힘쎄고 강한 재미!

        2145년, 이미 세계는 노아의 대홍수로 완전히 잠겨버린 상태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물에 잠긴 런던을 조사합니다.

        이때 우리의 주인공 케런스 박사는 여친 비어트리스가 있는 상태지만, 오래 전부터 욕구불만인 상태로, 조사 도중 우연히 물에 잠긴 런던 브릿게이바를 발견하게 되죠.
        서로 고기를 돌리는 거대한 이구아나와 악어들을 보면서 자기의 핏줄 속에 잠겨있는 빌리에 관한 집단 무의식을 느끼자 케런스는 혼란에 빠지고, 마침 잦절하게 브릿 게이바를 약탈하는 미스터 '강한 남자' 일당에게 잡혀서 고기 돌림을 한 번 당하고 그의 찰진 엉덩이에 반한 해적 일당에게 감금됩니다.

        케런스의 친구 보드킨은 이런 모든 광기가 브릿게이바에 있다고 생각하여 다시 게이바를 바다 속으로 처넣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힘쎄고 강한 남자에게 걸려 그만 괄약근이 파열되고 평생 기저귀를 차야하는 상태로 변합니다.
        강한 남자의 눈에 여자인 비어트리스는 쓸모 없는 뇬이므로 없애려고 하지만, 이에 케런스는 자기의 등짝을 희생하면서 모두를 구해내고, 브릿게이바를 다시 바다 속으로 수몰시키며, 남쪽으로 도주합니다.

        도주하던 도중 마침내 케런스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완전히 깨닫게 되고, 남쪽으로 가던 도중 발견한 눈 먼 친구 '딱딱한 남자'와 새로운 에덴 동산에서 제2의 아담과 아담이 되기를 꿈꾸며 물에 잠긴 세계는 막을 내립니다. 

       

'물에 잠긴 세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책 내용에 대해서 걍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물에 빠져 죽은 페니키아 수부 플레버스였다. (아무래도 최근 엘리엇의 에쎄이를 읽은 영향이 크겠지만.) 물은 죽음이면서 정화의 상징이다. 물에 의한 세례 또한 물로서 죄악을 씻는 상징적인 의식이 아니겠는가.

<플레버스를 생각하라, 한때 그대만큼 미남이었고 키가 컸던 그를.> -T.S. 엘리엇, 황무지 中

어쨌든 줄거리를 대충 상상했을 때는 영화 2012 처럼 대홍수 같은 현상으로 인간의 종말을 그린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작품은 '대홍수' 이후의 변화된 지구에서 서서히 종말을 맞아가는 인류를 그린 작품이다. 흠좀무하게도 위에 적은 저 게이식 줄거리가 어느 정도 왜곡된 줄거리다.

물에 잠긴 지구의 환경은 점차 트라이아스기의 지구처럼 회귀한다. 몸의 대다수가 물로 구성된 인간인만큼, 물에 잠긴 세계의 인간들 또한 본능적으로, 마치 집단무의식과 같이 이 모든 상황으로 점차 회귀하려고 한다.

작중 실제로 언급되는 플레바스의 이야기나 존 던의 시, 모든 인간은 각자가 섬이다, 등을 볼 때 이 작품에서 물이 가지는 의미는 기존의 상징과도 같다. 물은 죽음이 아니다. 정화이며 새 생명의 시작이자 원천일 뿐이다.

스트롱맨 일당 등이나 물에 잠긴 기괴한 오지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을 감안할 때는 오히려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과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한다. 자신의 무의식 속 심연을 찾아 오지 속으로 들어가는 커츠와 말로의 여정 또한 물에 잠긴 세계를 바라고, 탐험하는 이들의 여정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이 빠진다는 것에 혐오감을 느껴 다시 물로 덮으려는 작중 인물들의 시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물이 없다면, 이러한 추악한 죄악은 정화될 수 없다. 오직 물에 의한 심판만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종말일 뿐, 지구의 종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구는 회귀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주인공 또한 인간의 종말보다는 머나먼 옛 기억의 회귀를 추억하지 않는가.

마치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듯, 물에 잠긴 세계 또한 잔혹한 세계다. 그렇지만 재생이 가능한 것 또한 그런 물에 잠긴 세계이다. 그렇기에 그는 물에 빠져 죽어버린 세계를 원하는 것일거다.

그가 새로운 아담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류에게 곧 닥칠 종말 또한 그에게 문제는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은 회귀했고, 정화되었다.


p.s. SF는 거의 읽어본 것이 없는데, 일단 발라드의 다른 작품들부터 더 읽어봐야겠다.

읽은지는 꽤 된 작품이지만, 지구 종말을 기념하기 위한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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