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 다시 찾은 순례자 독서일기-시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 혹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는 분명 '위대한 작품' 혹은 '고전'이라 불릴만한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품을 직접 읽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단순히 몇 가지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신곡이 가지는 위상을 납득시키기는 쉬울 것이다.

작품의 내용 자체를 떠나서, 단테란 이 낙오된 유랑 정치인이 당대 라틴어가 아닌, 피렌체에서 쓰이는 속어로 신곡을 썼기에 오늘날 현대 이탈리어, 한 나라의 언어가 결정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지는 위상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한 작가, 그것도 한 작품이 그 나라의 언어를 결정짓는 일. 이런 유례가 없는 짓을 가능하게 만든 자가 바로 단테이며 그의 작품 신곡이다.

"<신곡>이란 작품 전체를 얘기하려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통째로 들고 오는 것 밖에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다. <새로운 인생>과 소네트집을 비교하는 것은 또다른 흥미있는 작업이다.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서양의 근대를 양분한다. 거기에 제 삼자는 없다." - T.S. 엘리엇

분명 단테와 신곡에 대한 찬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이 작품이 위대한 작품인 것은 당연한 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반 사람이 이 거대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역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곡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이며 외국의 언어로 쓰여졌다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신곡이 소설이었다면, 그나마 더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단테의 천재성을 얘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시인으로서의 천재성, 정교한 운율과 비유인데, 이는 신곡을 원문으로 읽지 않는다면, 누가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점 때문에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신곡을 읽기 위하여 단테의 언어를 배우고자 노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번째로 신곡을 읽으면서 그나마 '산문'으로서의 위대함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민음사 판 신곡 3권의 번역 자체는 훌륭해보인다. 물론 나는 원문을 모르기에 가독성을 따졌을 때의 일이다. 다만 역시 주석이 전부 뒤에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방대한 주석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예전에는 블레이크의 삽화가 신곡과 아주 어울린다고 생각하였지만, 두번째로 읽으면서 이에 조금 회의감이 들었다. 분명 블레이크의 그림은 훌륭하다, 그림 자체로는.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단테의 신곡'에 어울리는 그림인가? 아니, 그의 그림은 말 그대로 '블레이크의 신곡'에 어울린다.

블레이크와 단테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읽는데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블레이크의 시선으로 본 삽화이지, 단테의 시선으로 보는 삽화가 아니기에 그 위화감은 감출 수 없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면,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지만, 신곡에는 단테 이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언급한 것이다. 다른 이는 물론, 블레이크의 삽화조차 그곳엔 없다.

흔히 신곡을 기독교적 문학이라 부르며, 일부 비판자들은 지옥에 있는 무함마드나 림보의 존재를 통하여 편협한 기독교도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문학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왜냐하면 신곡은 '기독교도'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되묻고 싶다, 단테가 정말로 '기독교도'인가? 오히려 그는 이슬람교도나 반기독교도보다는 기독교도에게 비판을 받아야하지 않는가?

물론 신곡이란 작품 자체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나, 나는 오히려 기독교가 단테를 바꾼 것이 아니라, 단테가 기독교를 '단테화'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설령 단테가 다른 종교를 가졌고, 그 종교의 시각으로 신곡을 썼다 하여도, 여전히 단테는 그 종교를 '단테화' 시켰을 것이며, 신곡이란 작품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신곡은 지극히 단테 개인 그 자체를 위한 작품이며 그만이 제대로 알 수 있고, 그만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지옥, 연옥, 천국을 돌며 우리의 순례자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인도 아래 말 그대로 탐험을 하며 수많은 이들과 만난다. 그리고 어느 곳에 있더라도 순례자가 만나는 이들은 하나하나 자신만의 매력이 있고, 이런 점이 더욱 신곡을 풍성하게 만들고, 위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모두 단테의 손에 의하여 매력적으로 바뀐 자들이 아닌가? 실제 프란체스카나 우골리노, 마틸다가 있다면, 신곡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일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단테 내부의 천재성으로 개조된 또다른 단테들이다.

단테가 존경을 표했던 베르길리우스나 그의 여행에 동참한 스타티우스와 같은 로마의 시인들이 도대체 기독교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오히려 단테의 시점으로 뒤바뀐 단테의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일 뿐이다.

신곡과 단테를 하면 언제나 따라붙는 영원의 여인 베아트리체 또한 마찬가지다.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고 하기엔 그 괴리감이 너무나도 심하다. 적어도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여성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보인다. 오히려 베아트리체는 일종의 개념이나 추상적인 진리에 더 가깝다. 실제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묘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단테가 굉장히 어릴적에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었기에 신곡의 베아트리체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느끼는 '사랑'이 성년의 나이에 느끼는 사랑과 같다고 하기는 힘들며, 성인 이후의 모습을 단테가 보았으면 오히려 변질될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은가. 오히려 어릴적 감정의 지속적인 미화로 인하여 오늘날 위대한 베아트리체와 순례자 단테가 탄생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 아닐까.

단테는 언제나 베아트리체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단테 내부의 일이며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베아트리체는 사실 매력적인 여성은 절대 아니다. 차라리 프란체스카나 마틸다나 다른 여성들이 훨씬 매력적이다. 베아트리체는 그저 단테가 추구하는 거대한 진리일 뿐이다.

지옥은 말 그대로 현실 그 자체이며 연옥 또한 지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둘 다 비록 단테의 내면이지만, 오히려 한 사람의 진실된 내면의 모습이며 단테의 묘사 덕분에 굉장히 힘차며 그로테스크하고, 마치 보슈의 회화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게한다. 천국은 분명 신곡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천국에 도달하는 순간 이미 단테는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세계로 빠져든다. 천국은 겉으로는 기독교의 천국이지만, 오히려 단테의 이데아라고 표하는 것이 더 옳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단테 본인은 확실히 지옥이나 연옥에 훨씬 가까운 이가 아닌가? 이 오만한 천재는 오디세우스나 연옥의 오만, 탐욕 등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들어낸다. 또한 자신을 호메로스,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등과 더불어 동등한 위치로 간주하며, 자신의 동료들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으로 당연시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 오만한 천재의 당연한 오만함이 더욱 돋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하면 욕 먹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이 천재란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러한 오만함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오만함,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러한 오만함 덕분에 지극히 개인적인 '신곡'이란 한 작품이 탄생하였고, 단테라는 한 위대한 정신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비록 즐겁지 않을지는 모르나 조금이나마 그 광채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작품의 원제가 코메디아인 이유는 이미 해설 등에도 잘 나와있지만, 오히려 지옥과 같았던 자신의 삶이 말 그대로 희극이 되기를 염원했던 한 불행하고도 오만했던 천재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나 또한 단테처럼 자기 자신을 잘 알기에, 단테와 같은 천재는 고사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 위대한 순례자가 잠든 라벤나를 방문하는 계획을 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는 안식을 취했을까?


덧글

  • CATHA 2013/01/04 16:21 # 삭제 답글

    하기사 베아트리체가 어떠한 매력적이고 연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너무나 성스럽고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로서 구현되기때문에 가끔 단테 이양반이 진짜 있는 여자를 사랑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원하는 절대적인 진리를 하나의 여성상으로 구현한건지 헷갈리기는 하더라구요. '새로운 인생'읽기 전까지는요, 또 그나마 라벤나에라도 안장된 거는 귀도 노벨로가 환대해주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평생떠돌다가 묻혀질뻔했네요..불쌍한 단테찡ㅠㅠㅠ오랜만에 단테에 대한 글 잘보았습니다.
  • JHALOFF 2013/01/05 20:12 #

    새로운 인생은 부분부분적으로만 읽어서 언젠가는 읽어봐야하는데. 단테 눈에는 베아트리체가 미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3자 입장에서는 베아트리체는 한 여성으로서는 잘 매력적인지 모르겠더군요,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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