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흐,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 나 자신을 불태워라! 독서일기-소설

디도의 죽음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 혹은 베르길리우스. 서구 문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들을 뽑을 때, 흔히 뽑히는 이름 중 하나다. 그의 대표작이자 미완성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나 신곡에서의 순례자의 안내자로서 등장하면서 여러모로 친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대작이자 미완성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를 두고,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이 죽으면 불태우라는 말을 남겼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원고는 불타지 않았으며 오늘날까지 베르길리우스의 이름과 함께 전해진다.

오스트리아 작가 헤르만 브로흐는 이런 베르길리우스와 <아이네이아스>와 관련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소재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썼다. 언젠가 누군가가 독일 계통 소설을 비판할 때, 문학의 탈을 쓴 철학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분명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한 책이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말 그대로 베르길리우스의 최후의 하루를 다룰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일 연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그리스에서 항구 브룬디시움으로 '귀향'하던 도중 그는 열병에 걸리고, 항구에 도착한 후 그가 죽기 까지의 약 하루의 시간에 대해서 서술한다. 당연히 이렇다할 큰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소설의 상당 부분은 이 죽어가는 한 대시인의 내면을 다룰 뿐이다. 물론 이런저런 사색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시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 소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영역이지만, 말 그대로 문장이 끊어지지 않으며 끝없이 쏟아진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주마등을 보듯, 작가는 이 죽어가는 시인의 내면을 무한히 확장한다. 그리고 소설보다는 말 그대로 '산문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쭉이어지는 문체를 사용한다. 이 점은 번역자 또한 명시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죽어가는 자는 무엇에 대해서 고민하는가? 말 그대로 시인으로서의 자신, 그리고 자신의 예술, 그리고 죽음 그 자체다. 이런저런 환상, 마치 베르길리우스 본인의 서사시나 단테의 지옥을 연상하듯 시인의 정신은 이런저런 것들을 보게 되며, 마침네 총 4 장 중 2번째, 불의 장에서 외친다.

<아이네이아스>는 불태워져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불태워져서 나와 나의 작품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이런 그의 반응에 그의 동료 시인이자 후에 <아이네이아스>의 원고를 정리할 두 친구들은 당황하며, 또한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도 당황한다. 베르길리우스, 그대는 위대한 시인이며, 로마 그 자체다. 그대의 <아이네이아스>는 말 그대로 로마의 정신이다. 이미 그대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로마 시민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동료들과, 또한 황제와 기나긴 대화, 마치 플라톤의 대화를 연상시키듯 기나긴 철학적인 대화를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정치와 예술은 무슨 관계인가? 종교는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또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죽어간다! 나는 죽을 것이다! 


이런 대화들과 끝없이 계속되는 죽어가는 이의 내면은 결국 왜 아이네이아스는 불태워져야 하며, 죽음을 앞둔 베르길리우스가 느끼는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을 답하고, 해명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이다.

물론 결국 시인은 아이네이아스의 원고를 황제에게 넘겨주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화에서 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약한 예술가와 강압적인 권력의 대조로 인한,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로서 나타난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 관한 설화 등을 볼 때 이 소설은 역사 소설로도 볼 수 있지만, 위대한 시인 중 하나의 죽음을 소재로 한 철학책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대충 작품 외적으로 보면, 브로흐가 나치의 탄압 등에 영향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베르길리우스야 말로, 이런 소재에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말 그대로 로마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 대 서사시는 쓰여졌고, 시인은 권력 앞에 나약한 지식인일 뿐이다. 물론 이 소설이 단순히 그런 부분에서만 그쳤다면, 한계가 명확했겠지만, 오히려 죽음을 앞둔 중년을 소재로 누구나 해볼법한 문제들에 대한 대화로 확장하였기에 걸작으로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글 번역도 최근에 나왔다. 철학적인 주제나 시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끗.

께속?

덧글

  • CATHA 2013/01/20 22:08 # 삭제 답글

    시적인 소설은 좋지만 철학적인 주제는 글쎄...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많이 어려운가요?
  • JHALOFF 2013/01/21 02:00 #

    사실 주제 자체나 전개 과정은 그렇게 어렵진 않은데, 서술 자체가 내면에 더 치중하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 afadfa 2013/01/23 01:56 # 삭제 답글

    오늘 피카딜리에 워터스톤에 같더니 1930s란 주제속 추천서중에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이 단 한권 떡하니 놓여져있어 누가 이런걸 읽나 했는데 마침 블로그에 올라와있네요
  • JHALOFF 2013/01/24 10:52 #

    오 영국 거주자시나보네요. 피카딜리쪽이 크고 좋됴 자주는 못 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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