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 발라드 <불타버린 세계>- 사막 속 멋진 신세계 독서일기-소설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 있고 물은 없고 모랫길뿐
길은 구불구불 산들 사이로 오르고
산들은 물이 없는 바위산
물이 있다면 발을 멈추고 목을 축일 것을
바위 틈에서는 멈출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을 모래 속에 파묻힌다
바위 틈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썩은 이빨의 죽은 산 아가리
여기서는 설 수도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다
산 속엔 정적마저 없다
비를 품지 않은 메마른 불모의 천둥이 있을 뿐
- T. S. 엘리엇 <황무지>, 황동규 옮김, 1997

J.G. 발라드의 <불타버린 세계> 말 그대로 불에 타버린 세계, 물이 없어진 종말을 다룬다. 작품 곳곳에서도 암시되지만, 이 소설과 가장 연관 깊은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일 것이다.

그러나 폭풍우는 발라드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페르난도와 미란다의 사랑은 없다. 단지 캘리번과 미란다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물은 곧 생명이다. 생명이 사라지면 죽은 인간들 밖에 남지 않는다. 좀비와 같은 자들은 조금이라도 살기 위하여 서로 모여들지만, 생명이 없기에 더욱 추악해진다. 작중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랜섬은 자신의 개인을 소중히 여기려고 하지만, 말 그대로 튀는 행동은 공동체의 눈에는 적으로 보일 뿐이며, 개인에 불과한 랜섬은 말 그대로 개인으로서 죽어간다. 랜섬은 분명 주인공급 인물이지만, 그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겉으로는 흉측한 칼리번인 퀼터가 더욱 고귀한 인물로서 그려진다. 그는 '고귀하게 행동하려는' 랜섬에게 버려졌지만, 미란다와 함께 말 그대로 자신들만의 멋진 신세계를 꾸민다. 물론 이런 멋진 신세계는 결국 파괴된다. 퀼터의 전 주인이자 미란다의 오빠인 로맥스는 말 그대로 속물적인 인간이며 악 그 자체다.

작은 멋진 신세계마저도 물이 사라진 곳,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결국 더럽혀질 뿐이다. 

물론 소설 자체의 결말은 그렇게까지 암울하다고도, 밝다고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폭풍우, 비가 내리며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런 작은 신세계가 파괴된 그들 앞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오직 자연만이 알 것이다.

이로서 발라드의 소위 지구종말 3부작을 다 읽었다.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야겠다.

개인적 순위:

크리스탈 세계>>>>>>>물에 빠진 세계>불타버린 세계

끗.

께속?

덧글

  • CATHA 2013/01/24 12:41 # 삭제 답글

    템페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작품인가요? 좋은리뷰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오늘 타이투스 앤드로니쿠스를 읽어서 그런가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ㅠ)
  • JHALOFF 2013/01/26 13:49 #

    직접적인 연관이라기보단, 칼리번 닮았다는 묘사나 미란다 때문에 왠지 모르게 생각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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