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 <아나바시스> - 페르시아 원정기 독서일기-비문학

크세노폰도 상당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네 놈은 얼마나 많은 아테네 미소년들의 등짝을 본 것이냐?

물론 농담이지만,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진짜 이유는 그가 차지한 미소년 하렘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나, 나도 알키비아데스 등짝 볼 거야-!! 

마의 16세를 제대로 넘기지 못한 것일까.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혹은 <페르시아 원정기>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되는 이 책은 사실 번역된 제목 자체가 책의 내용과는 조금 맞지 않는다.
(우리 번역계의 거장 천병희 선생은 페르시아 원정기로, 내가 읽은 Rex Warner 번역판 펭귄도 대충 페르시아 원정으로, 옥스퍼드 번역본은 키로스(퀴로스)의 원정으로 번역했다.)
원정에 관련된 내용은 극히 초반에 나오고,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상 살기 위한 후퇴에 관한 서술이기 때문이다.

크세노폰을 비롯한 1만명의, 당시로서는 꽤 많은 숫자의 그리스, 혹은 헬라스 제각기 다른 폴리스 등에서 모인 그리스인 용병대가 형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왕중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게 반역을 일으키려는 키로스 왕자에게 고용되어 전투를 벌이지만, 키로스는 살해당하고, 고용주를 잃은 그리스인 용병대 또한 적국 한복판에서, 그것도 반역에 가담한 상태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더군다나 그들의 지휘관들은 속임수에 빠져 끔살되고, 지휘관조차 없어진 그리스 용병대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의 상태에 빠진다. 이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크세노폰으로, 그는 병사들의 추대를 받아 새로운 대장이 되어, 1만인의 그리스 용병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물론 아나바시스는 역사서로 보기엔 조금 부적절하다. 역사서보다는 기행서, 혹은 말 그대로 인간관에 관한 책이다.

크세노폰은 작중 본인을 3인칭화하여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 점은 왠지 모르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등이 생각난다. 물론 시대를 생각하면, 카이사르가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나바시스 자체는 당대에는 필독서처럼 읽혀졌다고 하니. 애당초 그리스어 교재로도 많이 쓰이기도 하고.)

확실히 크세노폰의 문장은 군인 출신인 이유 때문인지 간결하면서도, 힘차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 몇 가지는 우선 인물들에 대한 그의 평가가 아닐까 싶다. 크세노폰은 객관적인 시각을 지닌 인물은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를 평가하는데 그의 편견 등이 섞인 모습이 간혹 보인다. 과도하게 칭찬을 하거나, 과도하게 깍아내리는 모습도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내리는 평가나 생각 등은 오늘날 자계서나 리더십 관련 책에서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그런 책들보다도 훨씬 실생활에 유용할듯한 글들이다.

물론 작중 기나긴 연설들은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이런 점은 비록 사실을 기록한 글일지라도, 크세노폰 본인의 창작이 어느 정도는 들어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크세노폰이라는 인물 자체는 확실히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분명 어느 정도 오만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오만함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다. 확실히 그는 소위 말하는 뛰어난 자 중 하나라고 평가될만하다. 애당초 1만인이라는 거대한 인원을 이끌고, 그것도 원래부터 이끌던 장군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선출된 임시직으로서,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고, 전투를 지휘하고, 무사히 그리스에 도착하는 점 등은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특히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작중 말미에서 그가 병사들의 봉급을 중간에 삥땅쳤다는 누명을 받고 재판이 열렸을 때, 스스로를 차분하게 변호하고, 상대방의 화를 사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누명을 벗는 모습일 것이다. 그는 확실히 오디세우스와 같은 지장 타입의 인물이다. 생각해보면, 아나바시스 자체가 왠지 모르게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올법한 로망을 투과하기도 한다. 크세노폰의 재치있으면서도 꽤 재밌는 일화 중 하나는 작중 까메오처럼 출현하는 소크라테스와의 일화일 것이다. 페르시아로 갈지, 말 것인지 조언을 구하자, 스승은 (아마도) 가지 말라는 의도에서 그에게 신탁을 받아서 따르라고 하지만, 정작 크세노폰이 물은 것은 페르시아에서 무사귀환하려면 어떤 신에게 재물을 바쳐야하는가, 였다. 애초부터 갈 것을 미리 가정하고 물은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 또한 그의 의도를 알고 웃지만, 이런 일화를 볼 때, 재치있으면서도 지장스러운 그의 모습이 잘 들어난다.

로망을 다시 언급하자면, 이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아마도 소년이 가질법한 로망에 관한 책이란 것이 아닐까? 페르시아는 그리스인들에게 미지의 이국이자 대제국이다. 그러한 페르시아의 한복판에서 그리스까지 행군하면서 여러 이국적인 모습들과 마치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같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무사히 귀환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 분명 소위 말하는 소년의 로망을 자극할만한 책이다. 유럽인들이 마르코 폴로의 책을 읽고 동방을 꿈꾸었던 것처럼 그리스인들도 아나바시스를 읽고 페르시아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실현되었고 말이다. 이런 동방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에서 이 책 또한 오리엔탈리즘의 표적이 되겠지만, 그것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역사적 사료를 떠나서 훌륭한 필체로 쓰여진 훌륭한 이야기다.

크세노폰의 다른 저작, 헬레니카 나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p.s.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도 나온 메논이 초반에 등장한다. 지휘관으로. 크세노폰은 그에게 상당히 부정적이다.




덧글

  • 9625 2013/02/20 13:57 # 답글

    Marchant, E. C이 1908년에 독일 책 하나 번역하면서 Greek Reader Vol.1라고 책을 냈는데요, 그곳 서문에다가 이렇게 써놨었습니다...

    <(전략)
    but a course of parasangs inspired in me a hatred of Xenophon so intense that it took me twenty years to forgive him. Whatever estimate be formed of Xenophon's merits as a writer, it is, I think, certain that he cannot stand the ordeal of being spelt out line by line and sentence by sentence. He is tolerable only when he is read quickly, as he wrote. As for Euripides, even if the words are intelligible to a young learner, what is he to make of the feeling? What's Hecuba to him? And whom should we pity the most-the heroine or the poet, or the beginner who wonders what on earth they are at and heartily hates them both? (후략)>

    근데 이분이 OCT 아나바시스 편집자입니다-_-;;;;

    저도 솔직히 아나바시스 파라상가스때문에 좀 크세노폰에 대한 증오심이 남아있어서...
  • JHALOFF 2013/02/21 18:03 #

    ㅎㅎ 저는 원문은 못 읽어서
  • CATHA 2013/02/25 22:18 # 삭제 답글

    마지막 문단에서 그리스인들도 아나바시스를 읽고 페르시아를 꿈꾸었을것이라는 문장이 뭔가 웅장하고 좋네요. 기회가 된다면 (=머리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어요
  • JHALOFF 2013/02/26 09:31 #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걍 책 자체는 일종의 여행기라서요.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689
577
604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