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휘브리스, 이성 그리고 야만. 독서일기-비문학


아테네인 투키디데스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나의 아테네 제국은 라케다이몬, 혹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는가? 어느 방면으로 보나 우세했던 제국은 왜 야만에게 굴복하였는가? 이 고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이 책이 미완성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모든 부분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후세의 우리에게는 비극적인 일이다. 투키디데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는지, 아니면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그 확실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위안인 것은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분량만으로도 이 아테네인의 울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그저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싸움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으로, 고대 그리스의 몰락이 된 전쟁으로 간략하게 몇 줄에 걸쳐 소개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투키디데스에게는 그 몇 줄만으로 위안이 되지 않는다. 분명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에게 이 전쟁은 이제까지 없던 거대한 전쟁이며 한 마디로 이성과 야만의 싸움이며, 선과 악의 싸움이고, 절대로 이성과 선이 패배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패배했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신들의 운명으로 돌릴 수도 없다. 이 전쟁의 패배에는 신들의 간섭이란 있을 수 없다. 그저 아테네인들 자신이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전부 인간들의 손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는 그 해답을 찾는다. 그는 말 그대로 휘브리스, 오만 그 자체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 위대한 역사가와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또다른 위대한 역사가는 사마천이 아닐까. 사마천이 역사를 쓰기 위하여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수한채 울분으로 사기를 저술하고, 투키디데스 또한 추방과 전쟁의 패배를 목격하고 그 울분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단순히 하늘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 비슷하지 않는가.

분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의 페리클레스의 말처럼 아테네는 스파르타보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월등히 위대한 폴리스이며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대의명분을 지녔으며 여러모로 스파르타보다 우세한 폴리스였다. 아테네의 패배의 원인은 분명 여러 곳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 초기에 아테네를 휩쓴 역병 또한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며, 흔히 말하는 아테네의 민주정 또한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지만, 투키디데스가 믿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휘브리스인 것 같다.

군대를 이끌고, 겉으로는 대화를 원하는 아테네는 약소 중립국 멜로스에게 말한다, 너희는 우리에게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았고 중립을 지키고 있으나 우리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너희는 약소국이며 우리는 강대국이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진리다. 정의는 강자의 것이다. 이에 멜로스는 소리친다, 우리가 약자라고 하나, 힘을 믿고 우리를 누르려고 하는 것은 신들의 정의가 아니며 만인의 원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아테네는 멜로스를 점령하고, 학살을 자행한다. 그리고 아테네의 말처럼, 강자에게 따르는 것이 약자의 운명인 것처럼, 보다 강한 스파르타에게 패배하고 만다. 멜로스의 대화와 학살에 관한 부분은 제일 처음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던 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적어도 이 책에서의 모든 것이 뒤바뀌는 분기점이 아닐까?

적어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무렵의 아테네 제국은 오만할 때도 있었지만, 학살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어도, 정의를 두려워하며 그것을 취소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성은 사라지고, 오만만이 남을 때, 아테네는 멜로스 섬에 대해 학살을 자행한다. 로고스가 사라진 휘브리스는 그저 야만일뿐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가장 말 그대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부분은 시칠리아 원정, 그것도 제일 마지막 부분이었다. 시칠리아 원정의 과정을 보면, 그저 이성을 잃은 오만한 자들의 우스꽝스러우며 광기어린 행위의 연속이다. 무리한 원정을 감행하고, 그것을 반대한 니키아스의 경고에 오히려 더욱 군사와 돈을 퍼붓고, 사령관 중 하나인 알키비아데스, 그것도 원정을 제안한 사령관에게 신성모독 혐의를 제기하여 전쟁 시작도 전에 분란을 일으켜 결국 배신을 하게 만들고, 사령관 알키비아데스는 배신자로서 큰 활약을 하게 되며 니키아스는 제대로 싸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군사는 시칠리아의 다른 폴리스들의 원성을 사며 니키아스는 귀환을 요청하자 또다시 아테네는 무리한 2차 원정군을 보내고, 또다시 패배하자 돌아가려고 하지만, 처벌을 무서워한 니키아스는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이런저런 광기의 연속에 결국 모든 아테네군은 전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든, 긍정적인 의미로든 시칠리아에서의 아테네의 최후는 겉으로는 중립적이게 쓴 것 같은 투키디데스의 울분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마치 아테네가 당연한 대가를 치루는 것과 같은 통쾌함과 이성과 정의가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분노가 동시에 느껴진다.
 
결국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원조를 얻는 부분 또한 어떻게 보면 기존의 페르시아와 맞서 싸웠던 그리스의 종말을 본격적으로 나타낸 부분이 아닐까.

서사시인들이 뮤즈에게 영감을 빌고, 헤로도토스가 신에게 원인을 찾은 것과는 달리, 투키디데스는 철저히 인간들의 원인 중심으로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혹시 아는가, 그가 이러한 모든 일련의 패배 과정이 아테네의 휘브리스에 분노한 티케의 심판이 아닐지 의심했을지.

전쟁은 끝났고, 제국은 사라졌으며 함대와 장벽은 무너지고, 아테네는 패배했다. 그러나 승자 스파르타 역시 곧 패배한다. 말 그대로 전쟁은 그리스의 자살이 되어버렸다.

비록 그의 저서는 전쟁의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아테네의 패배는 단순히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투키디데스의 이 위대한 저서를 역사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있는가? 장엄한 비극보다도 더 숭고하며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이 역사서를 즐기는데 꼭 역사 안에서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거다. 그저 무엇인가를 느낄 수만 있다면, 좋은 책은 좋은 책으로 남으리라.

*다만 역시 투키디데스가 그 유명한 장군들의 재판과 같은 점은 '못' 다루었다는 것이 아쉽다. 그가 어떠한 심정으로 해전의 승리와 장군들의 어처구니없는 사형을 판단했을지 참으로 아쉽지만 말이다.

*'사실적'이라고는 하나, 다른 사람들도 지적하는 것처럼 작중 연설부분들을 보면 좀 비현실적으로 길어 보이기도 한다. 대충 그 당시 저런 논조로 말했다, 정도로 파악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은 왠지 모르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만. 멜로스의 대화도 따로 떼어놓고 읽어도 참 좋은 부분이다.

* 투키디데스의 저서 속에서 인물들은 왠지 모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느 정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고, 장단점을 논하긴 하는데, 뭔가 좀 딱딱하단 기분이 든다. 사실 소설 같은 것이 아니므로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알키비아데스도 분명 한 행동 자체로 보면 선악을 떠나서 굉장히 독특한 인물인데, 그렇게까지 끌리는 점은 없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향연 속 알키비아데스가 더 매력적이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 자체는 뭔가 예전부터 굉장히 흥미를 가진 전쟁이다. 어떤 문화적으로 찬란한 세계가 스스로 자멸하는 과정 자체가 비극의 소재로도 딱 좋지 않은가. Donald Kagan의 관련 저서 좀 더 읽어볼 예정이다. 물론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도.

*옥스퍼드 판 Martin Hammond 역으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범우사 판으로 읽었는데, 그때는 굉장히 가독성이 나빴는데, 이것은 좋았다. 아무래도 중역과 직역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덧글

  • Histudy 2013/11/09 14:33 # 답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무래도 천병히 선생님 역으로 읽는게 좋겠지.

    기본적으로 투키디데스의 사관은 '한 번 흥하면 한 번 망한다'인데, 고것은 휘브리스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음.이후는 계속 순환한다 이 느낌?

    사마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사마천과 투키디데스의 저서를 보면 모두 '연설'이라든가 지들끼리 이야기한 것이 마치 사실마냥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금 연구가 필요할 듯 함.
  • JHALOFF 2013/11/09 18:03 #

    아무래도 천선생께 원본 번역이니 더 좋겠죠. 뭐 실제 역사와의 비교 유무는 역사가들의 과제고. 평범한 독서인들에겐 그냥 책 자체도 좋으니, 그것으로 전 만족합니다. '순환'인진 잘 모르겠수다. 뭐 스파르타가 흥하니 망할거다, 로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 있을거 같고.
  • 약간의여유 2019/09/16 15:59 # 삭제 답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지금 보아도 흔미로운 역사더군요. 그리스어로 도전을 하고 싶은데.. 자꾸 시간이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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