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작가 소개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2.2. ~ 1941. 1. 13).

    1.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로, 종종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가 및 가장 위대한 영문학 작가 중 하나로도 뽑히지만, 대중들이 그렇게까지 많이 찾는 소설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데, 그 이유는 그가 소위 말하는 작가들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즉, 조이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독자는 적을지라도, 조이스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많고, 그 많은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썼기에, 대중들에게서 듣보 취급을 받을만한 작가지만, 사실 또 그렇지도 않은 점이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율리시스>와 엃힌 외설 시비 때문이다. 
    버제스 등의 회고에 따르면, <율리시스>가 외설 혐의를 받아 여러 나라에서 판매금지조치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이스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많은 대중들은 므훗한 야설을 기대하며 몰래 그의 책을 밀수하기도 하였고, 이러는 과정에서 많은 작가들과 평론가, 지망생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율리시스>의 외설 혐의가 풀려서, 출간이 허락되자, 사람들은 엄청난 야설을 기대하며 율리시스를 구입하였고, 그들이 목격한 것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4차원의 세계였기에, 또다시 조이스와 율리시스는 어려운 책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고,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고 한다.

    조이스는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의 대가로서, 그의 상당수의 소설들은 이 기법 하에 쓰여졌다. 또한 자기 유배를 할만큼 당시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과 카톨릭 등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모두 더블린을 무대로 이루어진다. 

    파운드는 조이스의 재능에 대하여, 플로베르와 헨리 제임스 이후, 영문학에서 현대적인 글쓰기를 이룩했다고 평했으며, 그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에, 그리고 <율리시스>는 마침내 <부바르와 페퀴셰>를 뛰어넘었다고 평한다.
    조이스 본인은 꽤 여러 예술가들과도 어울리며 파리나 런던,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떠돌았고,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지만, 이 부분에 관해선 뒤에 나올 얘기를 참고하라고 하겠다.

    2. 작품들

소설: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 - 

    조이스의 단편집으로, 당시 더블린을 배경으로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몇몇 작품들의 경우, 실제 이야기의 해당되는 사람들의 항의 덕분에, 약 10년 동안 출판하는데 여러 난항을 겪기도 하였다. 1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며, 당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분위기나 카톨릭(혹은 조이스 본인의 반-카톨릭적 감정) 등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기도 하며, 조이스의 '에피파니 Epiphany' 가 이야기의 흐름에 상관되는 경우도 많다. 

    에피파니는 대략 계시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데, 마치 계시를 받듯, 어떤 것의 본질이나 진실을 깨닫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실 구질구질한 설명보다는, 단편집 속 단편 <애러비 Araby>의 주인공 소년의 마지막 장면 부분을 보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거다.

    가장 유명한 단편은 <죽은 자 The Dead>일 것이며, 걍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가 쓴 소설들 중 가장 입문하기 쉬운 작품일 것이다. 무엇보다 짧막짧막한 중단편들이라 골라먹을 수 있으며, 아직까지 조이스는 그래도 일반적인 글쓰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조이스의 첫 장편 소설이자, <영웅 스티븐>을 개작한 소설이다. (영웅 스티븐은 아래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인만큼, 젊은 시절 조이스 본인의 자전적인 소설로, 어떻게 스티븐 데덜러스가 예술가로 각성하고, 자기 유배를 떠나게 되는지에 관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저 사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더블린 사람들>과 더불어 일반 독자가 즐길 수 있는 조이스의 작품일 것이다. 물론 스티븐의 아퀴나스 나 미학 강의가 시작되면, 이해하기 사뭇 어려워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 부분만 어떻게든 잘 통과만 하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자전적인 소설인만큼, 조이스의 삶을, 그것도 청년기의 삶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다면, 읽는데 더 수월할 것이다. (전기 관련은 후술.)

<율리시스> -

    소위 말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지만, 율리시스를 완독한 사람보다 율리시스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등의 말 또한 같이 따라붙는 소설이다. 과거 독자들은 야설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호기심에 사서 읽었다가 낭패를 본 것처럼, 분명 오늘날 기준으로도 야하다면 야할 수 있는 책이지만, 야하다기 보다는 머리가 먼저 아파오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이 독자를 막는 장벽은 무수히 많다. 우선은 무지막지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 문학에는 큰 영향을 주었지만, 독자들의 머리까지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율리시스>라는 제목인 만큼, 현대의 오디세이아라고 불릴만한 일종의 패러디 형식의 작품이지만, <오디세이아>만 안다고 작품을 이해하기 힘든만큼 무지막지한 배경지식을 요하며, 무엇보다도 조이스 본인이 이 책 한 권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쓴 만큼, 작품 자체는 정교하고, 복잡하게 짜인 편이며, 조이스 본인이 언어에 능한만큼, 꽤 많은 숫자의 언어가 쓰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위 말하는 조이스어가 조금씩 쓰이기 시작한다. 

    <율리시스> 번역본을 보면, 대개 조이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붙여준 도표가 따라붙는데, 사실 <율리시스>를 이해하고 도표를 보면, 도표가 이해가지만, 도표를 보고, <율리시스>를 이해하기엔 도표가 너무 빈약하다.
    
    대략적으로 <율리시스>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 뽑히는 것들은 1. 조이스 본인의 생애 2. 오디세이아 3. 세익스피어 4. 단테 5. 아일랜드의 역사 6. 카톨릭 7. 토마스 아퀴나스 8. 조이스의 다른 작품들 9. 기타 여러 고전들 등이 있는데, 물론 일반 독자가 이것들을 전부 숙지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적어도 조이스의 이전 소설들과 오디세이아의 대략적인 내용 및 등장인물들, 조이스 본인의 생애 등은 아는 것이 읽는데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무지막지한 분량과 의식의 흐름 기법을 견딜만한 마조력은 덤으로 갖춰야하겠지만.

    소설의 기본적인 주인공은 유대계 광고업자 레오폴드 블룸(오디세우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스티븐 데덜러스(텔레마코스), 그리고 블룸의 아내 몰리 블룸(페넬로페), 이렇게 세 사람이며, 소설은 총 3부, 18장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더블린 그 자체로도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소설의 분량이 단 하루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점이다. 조이스 본인은 <율리시스> 한 권만 있으면 더블린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뽐내었으며, 소설 속 묘사되는 더블린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실험적인 소설인만큼, 굉장히 실험적인 기법이 여러 장에서 쓰였으며, 이 점때문에 더욱 읽기 힘들어진다는 점도 있지만, 근성을 갖고 읽으면 어떻게든 해결은 되지 않을까? (물논 여러 다양한 실험으로 조이스는 독자를 조낸 패줄 준비를 마치고, 독자를 환영할 것이다. 고대 앵글로색슨어에서부터 흑인 슬랭까지 영문학의 역사에 맞추어 변화되는 문체를 생명의 탄생과 연관시키는 실험이나, 신문사의 헤드라인과 배경이 되는 신문사, 그리고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와 연관시키는 장, 희곡 형식으로 진행되는 초자연적인 키르케의 장, 아예 교리문답으로 이어지는 장이나, 작품 자체가 끝없이 이어지는 수십 페이지의 독백으로 구성되거나, 여러 단편적인 모습들로 구성된다거나, 기대를 하고 읽어도 좋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1904년 6월 16일을 본받아, 오늘날 더블린에서는 6월 16일, 블룸스데이라 불리는 일종의 조이스와 율리시스 축제를 벌인다. 조이스가 당대 조국 아일랜드로부터 그 어느 나라보다도 모질게 대우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관계의 역전이 아닐 수가 없으며, 전세계 조이스빠들의 메카 순례가 열리는 장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날, 블룸이 걸었던 더블린을 걷는 것은 조이스빠들의 순례가 아니겠는가? 핥 가고 싶다.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

    조이스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 <율리시스>를 끝낸 직후 집필을 시작하여, <율리시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집필에 투자하고, 조이스 본인은 <율리시스>보다 <피네간의 경야>를 더 위대한 작품으로 보았지만, 이래저래 말이 많은 소설이긴 하다.

    파운드 등과 같이 조이스와 <율리시스>에 호의적이었던 인물들조차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는 난색을 표했고, 오늘날 연구되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작품이긴 하다.

    조이스는 집필 내내 <진행 중인 작품 Work in Progress>란 이름 아래에 부분부분 장들을 공개하기도 하였지만, 물론 이런 공개된 장들도 나중에 최종적으로 <피네간의 경야>란 제목으로 출간될 때, 여러차례 수정이 가해졌다.

    우선 책을 펼치면, 가장 장벽이 되는 것은 언어 그 자체일 것이다. <피네간의 경야>는 거의 대부분의 단어들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닌, 소위 말하는 '조이스어'로 이루어져있으며, 조이스어는 조이스가 말 그대로 여러 종류의 언어나 단어들을 짬뽕시켜서 만든 단어다. 추정하기로 대충 4, 50 여 종류의 언어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핀란드어나 유럽 방언에서부터 산스크리트나 중국 만다린, 일본어까지 무지막지한 범위를 자랑한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이 '헛소리'로 보일 수는 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결과적으론 조이스 본인이 의도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므로, 오늘날 학자들이 달라붙어서 단어 하나하나를 쪼개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조이스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해석이 덧붙여질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조이스 본인이 이런 점 또한 어느 정도 의도하였으므로 비단 학자들의 설레발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조이스는 이런 언어 자체에 대한 당혹감에 그저 낭독하라는 간단한 지시를 내려주었다. 실제 <피네간의 경야>의 원문을 낭독하면, 마치 시처럼 운율이 있으며, 소리나는대로만 들으면 그 내용이 어느 정도 읽혀지는 편이다. 즉, <피네간의 경야>를 읽는 가장 큰 두 가지 방법은 우선 소리나는대로 해석해서 큰 이야기의 틀을 이해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포함된 여러 의미들을 퍼즐 맞추는 것처럼 짜맞추는 법이다.

    물론 과연 '읽혀질 수 있는' 책인지, 어떤 '이야기'가 과연 존재하는지가 종종 논쟁 대상이 되는 책인만큼 위의 방법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걍 읽는 수밖에.

    외적인 언어에 가려졌지만, 사실 내용 또한 언어 못지않게 정신줄 빼놓는 책이다. 흔히 <피네간의 경야>를 하룻밤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표현하는데, 문제는 꿈인만큼, 무엇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이 하룻밤 꿈인 것처럼 어떤 판타스틱한 일이 일어나도 걍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야한다.
    조이스의 기본적인 목적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신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하룻밤 더블린 한 일가족의 꿈에서 세계의 역사와 신화를 재현한다. 마치 만화경처럼 역사와 신화를 변주하며, 자신의 정해진 주인공들을 여러 형태로 등장시킨다. 
    그런 점에서 읽는 사람들은 주인공 H.C.E. 와 A.L.P., 쉠, 샤운, 이씨, 4명의 노인, 12명의 배심원 등의 기본적으로 끝없이 재탕되는 일종의 상징적인 등장인물들은 미리 숙지하고 읽는 편이 좋다. 즉, 누군가가 나오면, 아, 이놈은 걍 어떤 놈의 상징이구나, 하면서 읽어야한다.

    이런 점은 제목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에서 잘 드러난다. 원래 피네간의 경야는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라는 아일랜드 민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민요 <피네간의 경야>는 톰 피네간이란 자가 죽어서 그의 장례 경야가 열렸는데, 싸움이 난 술판에서, 누군가가 흘린 위스키 냄새를 맡고, 죽었던 피네간이 다시 살아난다는 유쾌한 내용의 노래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이스는 의도적으로 '을 빼놓는다. 즉 제목부터가 피네간의 경야는 물론, 피네간들이 깨어난다, 등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조이스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민요의 모티브를 성경 속 예수의 죽음과 부활 등과 연결시키면서 작품을 전개한다.

    문제는 이런 연결이 책에서 끝도 없이 쏟아진다는 점이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것을 지향하는만큼, 단순히 서양 쪽 내용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저명한 연구가 김종건 교수의 번역으로, 번역본이 있으며, 불어와 이태리어 번역에는 조이스 본인이 어느 정도 참가한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라 할 수는 있다. (이외엔 일본어역본도 있다.) 다만, 아무래도 번역인만큼, 조이스 본인이 의도했던 운율 자체는 잘 반영되지 못한 것 같긴 하다.

<영웅 스티븐 Stephen Hero> -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전에 조이스가 쓰던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조이스 본인이 원고를 불태워, 일부분만 출판되었다. (이 원고를 불태운 것에 관해선 논란이 있긴 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모태가 되는 소설인만큼, 비슷하긴 하지만, 내용상의 차이점은 존재하며, <영웅 스티븐>쪽이 좀 더 사실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아무래도 출판된 부분은 일부분인만큼, 조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시 김종건 교수 역으로 국내에도 동명으로 출간되었다.

희곡:

    <망명자들 Exiles> -

    조이스 본인의 유일한 희곡이다. 조이스는 입센의 영향을 받아 희곡 자체에 관심이 많았지만, 극작가로서의 재능은 떨어진다는 것이 연구가들의 중론이다. 
  
    내용 자체는 다른 조이스의 소설들과 그 지향점이 비슷하며, 호기심으로 읽어볼만한 희곡이긴 하다. 총 3막으로 이루어졌으며,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어느 정도 자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있고, 비록 소설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져도 희곡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역시 김종건 교수 역으로 국내에도 출판되었다.

시들:
    조이스의 첫 출판작은 시집인만큼, 조이스는 소설가인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다.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 등에 나오는 산문시나 운율 등처럼 조이스 본인도 어느 정도 실력있는 시인이다.

    생각 외로 꽤 많은 시를 썼으며, 낭만적인 서정시부터 <황무지>같은 모더니즘처럼 보이는 시까지 범위는 꽤 다양하다.

    역시 국내에선 김종건 교수 역으로 시 전집이 출판되었다.

그 외:

동화 <코펜하겐의 고양이들>, <고양이와 악마> -

    두 작품 모두 어울리진 않지만, 조이스 본인이 손자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쓴 동화이며, <고양이와 악마>는 국내에도 번역본이 있고, <코펜하겐의 고양이들>은 2012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동화들 자체는 조이스라는 편견을 버리면, 걍 평범한 동화들이다. 애당초 손자에게 들려줄 이야기인데, 독자 고문용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 감안하면, 걍 할아버지가 들려줄만한 이야기들이다.

서간집 -

    총 3권으로 이루어졌으며, 1권은 조이스의 친구 길버트 편집으로, 2, 3권은 리처드 엘만의 편집으로 출간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절판이라 중고 서점을 이용해야한다.

평론집 -
    
    역시 엘만 편집으로 출판되었으며, 에쎄이나 평론 등의 모음집이다. 이와 별개로, 옥스퍼드 클래식에서 산문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3. 그 외

    리처드 엘만 <조이스 전기> -
    
    엘만은 저명한 모더니즘 및 제임스 조이스 연구가로, 그가 집필한 조이스의 전기는 이쪽 방면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뽑히기도 한다. 엘만의 오스카 와일드 전기와 더불어 엘만이 쓴 최고의 전기로 뽑히며, 조이스를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아주 좋은 책이기도 하다.
    
    조이스는 자신의 삶을 책 속에 담았고, 그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조이스 본인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편이 좋다. 다행히 엘만의 전기는 단순히 전기적 사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조이스의 작품과도 잘 연결시키는 편이다. 

    국내에도 2권짜리로 번역되었으며, 엘만의 전기를 읽고 조이스의 책을 읽으면 한층 더 수월해질 것이다.

    여담으로 의외로 조이스의 삶 자체가 재밌는 일화도 많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무지막지하게 자부심 쩔고, 오만한 이 주정뱅이 작가와 관련된 자부심 쩌는 일화나 기괴한 일화 등을 보면, 왠지 모르게 전형적인 '젊은 예술가'가 생각난다.

    끗

    께속.

    (사실 개인적인 얘기나 기타 다른 책들 더 쓰려고도 했다가, 걍 귀차니즘 + 어차피 번역본도 없는 것들이라 걍 생략.)
       
    

덧글

  • 2013/03/10 11: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1 09: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CATHA 2013/03/11 23:12 # 삭제 답글

    우와 역시 조이스..오랫만에 조이스글써주셔서 좋아요 잘읽고갑니다
  • JHALOFF 2013/03/12 21:39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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