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 사랑과 인식론 독서일기-소설


<마누라가 죽었다, 나는 이제 자유다!> - 샤를 보들레르, <살인자의 술>

렘의 SF 소설 <솔라리스>는 우리 철학도들에게 인식론과 관련된 소설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내가 개인적으로 이번 학기에 인식론 1을 수강했고, 2학년 때 인식론 2를 수강할 예정이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 중 하나는 인간과 솔라리스 간의 소통의 문제다.

인간은 솔라리스와 소통할 수 있는가? 인간은 솔라리스와 어떠한 사고 체계를 주고 받을 수 있는가? 인간은 솔라리스와 소통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다수의 철학자들이 동의하듯, 무엇인가가 지식이 되려면, 우선 그것이 참이어야하고, 그것이 참이란 것을 믿어야할 것이다. (그 외 별개의 부가 요소들은 논쟁의 대상이지만.) 믿음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인간은 분명 솔라리스와의 소통이란 방법 외에도 솔라리스 자체에 대한 탐구 및 인식을 통하여 여러 정보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되듯, 하나를 얻으면 얻을 수록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간다. 아마도 이러한 인간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작중 이미 여러 시도되었다는 솔라리스와의 직접적인 소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진다. 마치 작중 묘사처럼 코끼리와 개미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듯, 인간과 솔라리스 간의 인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처럼 보인다.

소설의 시작은 왠지 모르게 <에일리언 1>과 같은 공포 영화를 연상시키게 한다. 고립된 우주 정거장, 그곳에 있는 소수의 인간들, 이미 한 명은 주인공이 도착했을 때 죽어있는 상태이며, 승무원들은 왠지 모르게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묘사되고, 밖에는 저 커다란 솔라리스만이 그들을 비출 뿐이다. 
그리고 곧 소설은 여러 공포영화 같이 주인공 또한 '환상'을 보면서 시작된다. 물론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기억과 무의식과 연관된 실체다. 또한 솔라리스가 관여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솔라리스>가 공포영화였다면, 피에 굶주린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가 마침내 정거장 내부의 인간들을 미치게 만들어 지구까지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승무원들 내면에 있는 기억을 토대로 인간의 형상을 한 괴생명체들을 만들어 승무원들을 살해하려는 것이 영화의 주 줄거리겠지만, 안타깝게도 <솔라리스>는 공포 소설은 아니다.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솔라리스와의 대화를 상징하듯, 어째서 솔라리스가 이런 짓을 하는지조차 그저 추측만이 난무할뿐, 그 실체를 알 순 없다. 어째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일련의 과학적 설명들이 덧붙여지지만, 장르의 특정상 필요할 뿐, 그 내용까지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렘은 오히려 이런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진 실체들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말 그대로 솔라리스가 인간의 개개인의 기억과 개인조차 결코 알 수 없을 무의식을 토대로 복원한 실체들은 겉으로는 소중했던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그 속은 결코 인간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또한 이미 자살한 아내의 모습을 한 실체를 보고, 의사소통하고, 마치 죽었던 아내가 살아난 것과 같은 체험을 한다. 이 실체를 없앤다 하여도, 그 실체는 다시 돌아올 뿐이다. 그 기억은 자신이 가지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이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실체는 진짜 아내라 할 수 있는가? 역시 작중 묘사된 것처럼 단순히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여도 그 기억의 원본이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그 기억의 단순한 카피면서도, 또다른 아내라 할 수 있을거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의 주인공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단순히 아내의 형상 때문이 아닌, 실체 그 자체에 대해 또다른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연속은 솔라리스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과 맞물리며 교묘하게 얽혀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할 솔라리스가 직접적으로, 그 솔라리스의 바다가 등장하는 것은 거의 소설 끝부분이지만, '솔라리스' 자체는 이 소설을 지배한다. 작중 솔라리스학을 일종의 종교에 비유한 것처럼, 어쩌면 흔히 종교인이 말하듯, 신을 직접 볼 순 없어도, 언제나 그 우리 곁에 있다, 와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거대하며 결코 알 수 없을 솔라리스의 바다는 얼핏보면 거대한 공포 그 자체로 보인다. 결코 알 수 없을 미지의 공포 정도로 묘사될 수도 있겠지만, 렘의 초점은, sf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가 있는 거대한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에 관한 신비감, 거의 종교적으로까지 승화된 숭고한 신비감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를 눈앞에 둔 인간을, 그리고 이 세계 속 한 개인에 대비시켜 이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면, 하나의 작지만 멋진 감상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덧글

  • 20세긴소년 2013/06/21 15:25 # 삭제 답글

    꽤 오래전에 렘 양장판(한정판이었나?)으로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책들을 깊이 있게 읽고 간명하게 감상을 올려주시니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네요.

    늘 건강하길 바랍니다.
  • JHALOFF 2013/06/21 22:35 #

    국내 출판사정을 생각하면 희귀본이겠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 Stanislaw 2013/07/31 15:36 # 삭제 답글

    인식론 또한 하드SF의 오래된 테마 중 하나입니다. 아예 인간과 다르거나 소통 자체가 단절된 존재들을 다루다 보니 제대로 파고들기만 한다면 걸작이 나올 수 있겠죠. 정작 그런 소설은 '솔라리스'를 비롯해 몇권 되지 않습니다만.
    저 또한 솔라리스라는 거대한 무언가에 대해 시종일관 압도된 상태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과 죽은 마누라 사이의 로맨스도 괜찮았지만, 그 뒷편에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는 솔라리스야말로 핵심이겠죠.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감가는 점도 많았네요.
  • JHALOFF 2013/07/31 15:59 #

    아무래도 물리학과 철학이 서로 동떨어져보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학문이니까요. 저도 사랑보단 솔라리스 잧체에 대한 경외감만으로도 소설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 행인 2017/03/11 15:42 # 삭제 답글

    리뷰 잘봤습니다
    최근에 이 책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솔라리스를 묘사하는 부분부터 압도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이 소설이 끝날때까지 푹빠져버렷습니다.
    혹시 이와 비슷한 소설 알려주실수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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