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연애로 배우는 윤리학(1) ???

서양 철학자들은 예전부터 윤리, 혹은 연얘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 즉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연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라서 가능한거고, 솔로인 사람들은 연애에 관하여 모르기 때문에,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솔로들이 커플이 되기 위해서는 연애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야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진정한 연애가 무엇인지 탐구 하지 않겠는가? 를 외치고 다니며 당대 아테네 최고의 꽃미남 알키비아데스를 비롯하여 크세노폰이나 아가톤, 플라톤 등등 미소년들을 후리고 다니며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 CTRL+C, CTRL+V이므로 생략한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소크라테스와 스승을 까면서, 다른 이론을 펼칩니다. 


이봐요, 스승님, 제가 아는 솔로들은 연애에 관한 지식이 굉장히 많거든요? 정말 많아요. 인터넷 등지에서 썰들은 것은 굉장히 많아서, 어떻게 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벤트는 어떻게 하며, 어떻게 데이트하고 등등 정말 머릿속에서는 연애 박사거든요? 그런데 개네들 죄다 솔로에요. 뇌내망상 속에서만 커플이에요. 

연애에 관한 지식이 있으면, 커플이래매요? 근데 애네들은 왜 솔로에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연애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가지고 행동해서 커플이 되는거죠. 행동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행동이란 것에 정의도 있고,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 이론의 반박도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행동을 중요시 여기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가? 에 관한 이론을 내놓습니다. 




바로 '잦절함' 입니다.

모태솔로인 A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태솔로 A가 취해야할 행동은 무엇일가요? A는 현재 솔로인 상태이며, 그가 지향하는 것은 연애입니다. 연애의 부족함은 솔로이며, 연애의 과함은 커플이죠. 즉 여기서 A는 잦절한 중간 단계를 선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A는 "나는 애인을 못 사귀는 것이 아니라, 안 사귀는거다," 란 잦절한 발언을 함으로서 잦절한 위치에 있고,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입니다.

물론 중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공통된 기준은 없습니다. 솔로에게는 안 사귄다, 라고 말하는 것이 중용이라면, 커플들에게는 헤어져서, 한때 커플이었다, 란 잦절한 상태가 있겠죠.

에피쿠로스와 같은 소위 말하는 '쾌락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선이며, 고통을 주는 것은 악이다. 그렇기에 연애는 우리에게 쾌락을 주니까, 선하며, 솔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니까, 악한 것이다! 
물론 '쾌락주의'란 단어 자체가 뭔가 으흐흐흐흐한 것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오늘날 기준으로는 금욕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즉 연애를 해도, 손만 잡고 다니란거죠.



또한 결과적으로 커플이 되었다 란 사실만이 중요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결과가 좋으면 장땡이다, 이거죠. 내가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여자와 사귈 수도 없으니, 남자 끼리라도 사귀어서 커플이 된다면, 커플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것이다, 고 주장합니다. 맛있으면 그만 아닐까?

이런 학파와 위에 말했던 쾌락주의가 합쳐지면서, J.S. 밀을 비롯한 공리주의자들이 탄생합니다. "최대다수의 최대의 쾌락", 이것이 공리주의자들이 원하는 상태입니다.

만약 커플 한 쌍과 솔로 열 명이 있는 집단이 있습니다. 커플 한 쌍의 행복이 존재하지만, 나머지 솔로 열 명은 염장질로 고통받습니다. 이런 경우, 수치적으로 커플 한 쌍의 쾌락보다는 열 명의 고통이 더 크므로, 최대다수의 최대 쾌락 원리에 따라 이 커플은 찢어져야합니다. 만약 커플이 깨질 경우, 두 명의 불운과 나머지 열 명의 행복이 존재하므로, 이 역시 가능한한 최고의 상태가 되는거죠.

하지만 역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쾌락이 더 우선시 되야할까요? 만약 동등한 수의 커플과 동등한 수의 솔로가 공존할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에 밀은 말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좋다, 고. 
밀은 인간의 정신적 쾌락이 육체적 쾌락보다 상위에 있다고 봅니다. 흔히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너희는 쾌락주의자니까, 돼지가 가장 행복한거 아니냐? 인간도 돼지처럼 뒹굴란 말이냐? 고 주장하면, 밀은 무심한듯 시크하게, 얌마 인간은 정신적 쾌락을 이미 알고 있는데, 돼지처럼 뒹굴겠냐? 그런거에 만족할 잉간 찾아볼래? 고 말하죠.

즉 해결법은 간단합니다. 육체적 쾌락(커플)보다는 정신적 쾌락(솔로)가 더 상위에 있으므로, 커플보다는 솔로의 쾌락이 더 중요시 되야한다는거죠.

이런 쾌락주의와 공리주의에 맞서 우리의 위대한 솔로부대 대원수 칸트가 등장합니다.

어이, 공리주의, 쾌락주의, 너희들은 우리 신성한 솔로의 가르침을 위반하고 있다. 

너희는 도덕의 법칙에 위반된다. 너희는 심지어 커플이라는 상황까지 허용한다고!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어.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에 있는 도덕률이야. 





인간이 솔로가 되는 것은 정언명령이여-!!

사실 칸트의 윤리는 워낙 칸트 본인부터가 책을 개떡같이 어렵게 써놔서 굉장히 애매모호합니다. 가장 유사하면서도 간단하게 애기하면, 칸트는 한 마디로 인간은 누구에게나 양심 비스무리한 도덕률이 있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이 도덕률을 위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 마디로 니가 양심상 꺼려지는 일들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면 안 된다, 는거죠.

즉 솔로부대에서 탈영할 기회가 얻어지더라고, 전우애에 망설여진다면, 끝까지 솔로부대로 남아라, 이것입니다.

간혹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고 주장하는 이유 또한 이와 마찬가지죠.

또한 칸트의 도덕률이 가장 엄격하게 금하는 것, 어찌보면 쾌락주의 등과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는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인간을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엄격히 적용되며, 심지어 자기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칸트의 윤리에 따르면, 자살을 해선 안 되는 이유 또한 명확하죠. 자살은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서 일종의 도피인데, 이미 자신의 목숨을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부터 아웃입니다.

이는 커플에게도 적용되죠. 커플은 서로를 도구로 삼아서 연애의 기쁨을 얻는 상태이므로, 절대로 허용되선 안 된다, 는 것이 칸트의 윤리입니다.

물론 실제 칸트는 독신이었고, 못생긴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실제로 굉장히 인기만점인 사람이라서, 칸트는 말 그대로 결혼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사람이라, 다른 솔로부대원들에게 그다지 위안이 될 것 같진 않군요.

이렇게 철학자들은 연애와 솔로의 문제에서 고민하던 끝에, 급기야


정말 연애라는 것이 존재는 하나요? 데이트를 할 수는 있나요?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는 상상의 동물 아닌가요? 란 질문으로까지 확장됩니다.

께속.

*다소 과장 및 왜곡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예전에 만들었던거인데 블로그에도 올려봄.


덧글

  • 구필삼도 2013/04/16 08:50 # 답글

    플라톤님이 이 글에 福有를 날립니다.
  • 곰곰이 2013/04/16 09:56 #

    복유.....? 아 F--- U.....에고고 ㅋㅋㅋㅋ
  • JHALOFF 2013/04/16 10:03 #

    DEEP♂DARK♂PHILOSOPHY
  • Scarlett 2013/04/16 14:41 # 답글

    잘롭님 뇌 속엔 뭐가 들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 JHALOFF 2013/04/20 11:30 #

    텅 비었습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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