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 시나리오 독서일기-희곡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 새1끼가."

나비 수집에 열광중인 나비성애자 나보코프옹


초판본 커버. 파는거 한 번 봤는데, 걍 안 샀다.

최근에 나온 펭귄 하드커버판. 소장중인 버전이다. 롤리타와 최근 영역된 몬 씨의 비극이 수록되었다.


나보코프의 악명 높은 소설 <롤리타>는 분명 화재를 일으키는 그 소재만으로 영화가 되기 딱 좋은 고전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미 두 차례나 영화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1962년 거장 큐브릭이 감독한 롤리타인데, 당시 나보코프는 멀쩡하게 생존해있었고, 자연스레 영화화 과정에 어느 정도 동참을 하게 된다.
나보코프 본인은 영화 시나리오를 썼지만, 결국 큐브릭과의 의견 불일치로 영화에 쓰이지 못한채 훗날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 그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단도직입적으로 실패작이다. 결국 나보코프의 시나리오는 영화에 쓰이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역시 너무나도 길다는 점이다. 작가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면일지라도 영화라는 영상 매체 자체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큐브릭의 발언대로 이 각본을 그대로 영상화하면, 8,9시간짜리 영화를 찍어야할 것이다.

사실 영화 <롤리타>는 결국 나보코프가 아닌 큐브릭이라는 또다른 거장의 작품이고, 애당초 소설과 영화는 다르기 때문에, 설령 시나리오가 쓰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폄훼할 수는 없을거다. 그럼에도 역시 실패작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나보코프 본인이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었다는 것일거다. 소설을 시나리오로 변환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소설을 쓰려고 하는 것 같다, 란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단순히 시나리오라는 이유만으로 군데군데 느껴지는 지루함을 해결할 순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소설 롤리타는 험버트의 1인칭 변명이며 소설의 묘미는 험버트의 천부적인 혓바닥 재능으로 가려지는 왜곡된 진실이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언어와 님펫을 희롱하는 험버트의 고백을 눈으로 즐긴다.

그렇지만 이게 시나리오로, 영화로 옮겨지면 당연히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나보코프는 곳곳에서 이 모든 것들이 험버트의 수기를 통해 재현된 것이란 것을 암시하지만, 애당초 '현실'로 눈앞에 재현될 것이란 것을 생각하면 그 효과는 미미하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를 그대로 영화로 찍는다고 생각해보자. 예술 영화는 나올지언정, 무지하게 지루할 것이다. 물론 나보코프 본인도 그 점은 어느 정도 고려한 것 같다.

시나리오로 그려지는 롤리타의 세계는 험버트의 미화된 세계가 아닌, 어느 정도 그 기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험버트는 말 그대로 연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추악한 찌질이며 샬롯은 그저 골빈 년이고, 롤리타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샬롯이라는 부모 아래에서 삐뚤어지게 자라난 님펫이며 퀼티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어쩌면 소설을 통한 독자들에게 이것이 험버트에 의해 미화되지 않은 현실이다, 라고 보여주려는 나보코프의 의도일지 모르겠다.

또한 눈여겨볼만한 점은 비록 이 시나리오가 쓰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큐브릭의 영화와 비슷하다. 정확하게 그 분위기가 비슷하다. 다만 영화가 큐브릭의 입김이 더 쎄다면, 시나리오는 역시 나보코프의 소설에 더 가깝다. (험버트의 찌질한 면모가 그대로 들어난다는 점에선 두번째 영화보단 첫번째 영화가 어느 정도 롤리타 속 현실과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제레미 아이언스의 넘사벽적인 외모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점도 있지만.)

레이 박사의 노골적인 등장이나 비비안 다크블룸의 노골적인 드립(이름이 애나그램 같지만, 그녀는 진짜라네! 와 같은 대사. 나보코프 너 이 시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비비안 다크블룸은 나보코프 본인 이름의 애나그램)) 여러모로 자신의 '창작'이란 것을 강조하는 모습은 여느 나보코프의 소설스럽다.

사실 나보코프를 좋아하거나, 큐브릭의 롤리타를 즐겁게 보았다면, 팬심으로 읽을만한 시나리오긴 하다. 분량 자체가 길고, 군데군데 지루하단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아쉽게도 나보코프는 그가 평소에 그렇게 까던 도끼와는 정반대로, 소설에는 재능이 많지만, 희곡에는 그닥인 작가다.

(아 물론 이 그닥이란 점은 소설과 비교할 때이며,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흠, 그래도 걍 평범한 잉여보단 잘 쓴다, 정도로 해두자.)





덧글

  • 2013/04/22 17: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3 11: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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