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철학계 최고 먹튀 독서일기-철학

  20세기 철학계 최고 먹튀 중 하나는 아마도 에드문드 게티어와 그의 게티어 문제들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에서 적어도 '안다는 것'의 정의 자체는 어느 정도 변함이 없는듯 하였다. 
        단, 철학자들이 논하는 '앎'은 명제로 표현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우선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그것이 사실이어야할 것이다. '도게이는 책을 열심히 읽는다.' 와 같은 명제는 거짓이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본인이 그 지식이 참이란 것을 믿어야할 것이다. 자기자신이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는 것을 안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그 지식이 증명되어야한다. 만약 내가 '도게이는 책을 지를 뿐, 읽지 않는다.'란 명제를 알고 있다고 떠든다고 하자.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그것이 사실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 
        만약 내가 '동전 던지기를 해봤더니, 앞면이 나왔다. 앞면이 나왔으므로, 도게이는 책을 읽지 않는다, 란 명제는 참이다!' 라고 외친다면, 질문자는 나를 조낸 팰 것이다. 
        '증명'이란 것 자체는 어느 정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왜 그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공감될만한 증명을 본인이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거다.
        
        즉 기존의 철학자들이 동의해왔던 안다는 것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그 명제가 참이다. 2. 그 명제를 참이라고 믿어야한다. 3. 그 명제는 증명되어야한다. 이를 흔히 '증명된 참인 믿음(JTB)'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1963년, 미국의 철학자 에드문드 게티어가 '증명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란 제목의 고작 3쪽 짜리 짧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게티어는 단순히 두 가지 예시만을 논문에서 적었다.

        도게이들끼리 원양어선 정모가 열렸다. 이에 유동닉 A는 현실에서도 친구이자 정모의 주죄자 고정닉 B와 함께 정모에 참석했다. A는 주최자 B에게서 이번 정모에서는 고정닉 C에게 웰치스를 먹여 관광을 보내줄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리고 A는 B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별도로 A는 고정닉 C의 호주머니에서 십 원짜리 동전 10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 또한 신뢰할만하다.

        이에 A는 '호주머니에 십 원짜리 동전 10개가 있는 사람이 이번 웰치스 관광 대상자가 될 것이다.' 란 명제를 도출할 수 있으며, 적어도 A가 보기에 이 믿음은 증명되었고, 참이기에 지식이다.

        근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사실 어떤 경위로 A의 호주머니에도 십 원짜리 동전이 10개가 있었고, 고정닉 B는 통수를 쳐서, A가 웰치스 관광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분명  '호주머니에 십 원짜리 동전 10개가 있는 사람이 이번 웰치스 관광 대상자가 될 것이다.'은 사실이며 증명되었지만, 이것을 지식이라 할 순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다른 예시를 보자.

        도게이 A는 절판된 민음사 롤리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갤에 증명했고, 또다른 도게이 B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할 일 없는 도게이 B는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만든다:
        1. A에게 롤리타가 있거나, 도게이 C는 로마에 있다.
        2. A에게 롤리타가 있거나, 도게이 C는 런던에 있다.
        3. A에게 롤리타가 있거나, 도게이 C는 남극에 있다.

분명 A에게 롤리타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위 세 명제 모두 참이며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또다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A는 사실 전자발찌를 찬 사기꾼으로, 그는 그저 훔친 롤리타를 인증했을 뿐이며, 우연의 일치로 도게이 C는 남극으로 납치되었다.

        이런 경우라면 분명 3번째 명제가 참이며, 증명되었지만,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게티어의 이 쉽고 짧은 3페이지짜리 논문은 JTB에 강한 충격을 주었고, 안다는 것에 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처음에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란 철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논의되는 문제가 되었으며 게티어의 예시와는 별도로 무수히 많은 게티어 문제들을 낳았고,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문 중 하나가 되었다.

        위와는 별도로 게티어는 위 논문에서조차 그저 문제를 제기했을 뿐,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았으며, 위 논문 이후 인식론에 관련된 논문은 단 한 편도 쓰지 않아 20세기 철학계의 최고 먹튀가 되었다.


*게티어가 발표한 논문의 전문은 다음 링크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 http://www.ditext.com/gettier/gettier.html


덧글

  • 이준영 2013/04/25 10:46 # 답글

    오랜만에 덧글로 인사드립니다.

    저도 예전에 게티어 반례를 처음 들었을 때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했네요. 그때 교수님이 이 사람은 논문 한 편으로 평생 먹고 살았다고 농담조로 말씀했는데 이게 인생 로또구나 싶었음요.
    뭐 잘롭님 블로그에서 언급되는 걸 보니 오랜만에 엄청 반가운 기분이네요.

    혹시 게티어 반례에 관해서만 단독으로 다룬 책이 있을까요?
  • JHALOFF 2013/04/27 02:02 #

    책이야 많지만 저도 아직 입문자라 추천할 만한 정도는 안 되고, 걍 제가 참고했던 링크들 적자면, <http://www.iep.utm.edu/gettier/> 이 링크의 글이 전반적으로 다뤄서 좋습니다. 저도 레포트 쓰면서 많이 참고했고요. 같은 저자의 글이 Routledge Companion to Epistemology에도 있는데, 빌리실 수 있으면 이 책에 있는 글도 괜찮고요. 스탠포드 http://plato.stanford.edu/entries/knowledge-analysis/#GetPro 이쪽도 꽤 괜찮습니다.
  • 이준영 2013/04/27 15:01 #

    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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