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아누이(1) <안티고네> - 이상과 타협 독서일기-희곡



1.
안티고네의 비극적인 삶은 이미 소포클레스의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또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저 아류작을 낳을 뿐이다. 그렇기에 장 아누이는 자신의 방식대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티고네의 비극을 재해석한다.

굳이 구질구질하게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애기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니, 아누이 본인조차 이미 그 사실을 자각한다. 마치, 나의 새로운 안티고네를 볼 자가 기본적으로 안티고네를 모를리는 없다, 란듯, 극이 시작되면, 프롤로그를 통하여 이미 모든 내용을,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전부 누설한다.

여기서 눈여결볼만한 점은 무대에 관한 설명인데, 아누이는 무대가 어떠한 역사적이나 공간적 배경도 가지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즉,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아닌, 말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2.
기존의 안티고네는 도덕과 법, 개인과 국가의 투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서 반역자의 장례를 금하는 크레온과 그에 대항하여 도덕으로서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안티고네. 그렇기에 크레온에게 저항하는 안티고네의 상이 완성된다. 그러나 아누이는 이 관계를 바꾼다.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말 그대로 안티고네에게 저항하는 크레온의 이야기다.

3. 
아누이가 재해석하는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칭송할만한 고귀한 여인이자 귀족으로서의 도덕을 따르는 영웅이다. 삶 대신 영광을 부르짖은 아킬레우스처럼 안티고네 또한 자신의 신념, 자신의 이상을 결코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죽음을 원한다. 그녀에게 원망은 없다. 그녀는 도덕과 법의 충돌에서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은 도덕에 따라서 가족을 매장하였으며, 크레온은 법으로 자신을 처형해야한다고 울부짖는다.

크레온은 오히려 평범한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안티고네보다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왕이며 국가가 정한 법을 마땅히 수호하고 따라야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이상을 원하면서도 타협을 원하는 인물이다. 그는 안티고네의 외침처럼 왕으로서 안티고네를 처형해야한다. 그러나 그는 굳은 이상보다는 타협을 원한다. 그는 안티고네를 아끼며 인간적으로 동정하며, 그녀를 파멸시키는 것이 곧 자신의 파멸이 될 것이란 것을 안다. 그렇기에 그는 현실과의 타협을 원한다. 이상을 원하면서도 이상을 견디지 못하기에 그는 현실을 택한다. 이런 점은 그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강요로 인하여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대사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크레온은 외친다, 안티고네여, 나는 그대를 가족으로서 사랑하며, 그대는 아직 세상을 모르며, 그대는 나의 아들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누려야한다, 돌아가라, 왕의 힘으로 너의 행복을 내가 보장하겠다, 내가 너를 죽여야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이상을 끝없이 추구하는 안티고네와 이상을 원하면서도 현실과 타협한 크레온의 대조는 젊음과 늙음으로서 나타난다. 분명 안티고네는 젊으며 그녀의 고귀함은 어리기에 가능한 것처럼 그려진다. 젊은 시절 크레온 또한 안티고네 같았으나 늙었기에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즉,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미래상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이러한 늙음을 혐오한다. 그렇기에 더욱 고귀한 죽음, 끝까지 이상을 지키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

크레온은 결코 힘으로 안티고네의 이상을 꺽을 수 없다. 안티고네의 말처럼, 그녀가 현실로 돌아간들, 매일 가족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삽으로 흙을 파며, 삽이 없으면 손으로 흙을 파다, 경비병들에게 붙잡히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4.
극의 클라이막스는 마침내 현실을 지키고자 크레온이 추악한 이상의 진실을 밝히는 부분이다. 서로를 죽인 오이디푸스의 자식 중 누가 진짜 영웅인지, 배반자인지는 애당초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오히려 둘 모두 악에 가까운 존재들이며, 단순히 크레온이 왕이기에, 국가의 질서를 위하여 덜 썩은 시체가 영웅으로, 더 썩은 시체를 반역자로 만들어진 것 뿐이다. 이에 마침내 안티고네조차 현실과 타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크레온: 이제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
안티고네: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서며) 제 방으로 돌아갈거에요.
크레온: 혼자 방에 있지 말거라. 하이몬에게 가라. 그리고 최대한 빨리 결혼을 하도록 하거라.
안티고네: (숨을 삼키며) 네.

인간적인 크레온은 한때 자신이 안티고네였기에 그녀를 이해하고, 동정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현실과 타협하며 안티고네의 행복을 빌어준다. 그러나 곧 고귀한 안티고네는 외친다. 행복이 무엇인가. 인간으로서의 안티고네, 여인으로서의 안티고네, 아내로서의 안티고네의 삶의 행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타협으로서 얻는 행복 따위가 전부 무슨 소용인가.

마침내 자신의 이상의 뿌리조차 부정되었음에도 끝까지 이상을 관철하며 타협을 거부하는 안티고네를 크레온 또한 이상을 따르며 파멸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언제나 이상을 바라면서도 타협을 한 크레온이 그의 최후의 순간에는 이상을 굳게 관철하게 되는 순간이다.

5.
사실 시종일관 아누이의 시선을 냉소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상을 끝까지 지키거나, 마침내 지킨 자들에게 닥친 것은 파멸 뿐이다. 고귀한 안티고네조차 죽음 앞에서는 혼란을 보인다. 안티고네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파멸을 기다리며 코러스와 대화를 주고 받는 크레온의 모습은 흡사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킨다. (애당초 그리스 비극이지만.)

안티고네도 죽고, 크레온도 죽으면 살아남는 자들은 도대체 누군인가? 그저 경비병들일 뿐이다. 아무런 신념도 없고, 그저 현실을 따르며, 인간적이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이기도 한, 말 그대로 어떠한 변화도 없고, 이상을 따르거나 원하지도 않는. 

죽을 자들은 죽고, 살아남을 자들만 살아남았다.

이상을 추구하는 이들은 순교를 했는데도, 변화는 없다. 변하는 것은 없다. 변화의 희망조차 없다.

그곳이 아누이가 그리는 현실이며, 지옥 그 자체일 뿐이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올해 안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덧글

  • CATHA 2013/06/02 06:16 # 삭제 답글

    와...최근에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오레스테스 읽는중이었는데 좋은작품하나더알아갑니다ㅜ 장콕토의 지옥같은기계도 혹시 안읽어보셨으면 추천해드려요!
  • JHALOFF 2013/06/03 22:44 #

    장 콕토는 당분간은 읽지 못할거 같네요 ㅎㅎ 밀린 것들이 워낙 많아서, 읽어보긴 할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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