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아크 (1) - <테레즈 데케루>, 성녀 테레즈의 수난 프로젝트-프랑수아 모리아크

모리아크가 직접 쓴 서문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정보들에서 쉽게 나타나듯, 테레즈는 모리아크의 엠마 보바리다. 물론 이러한 정보 없이도, 소설 자체만으로도 이 테레즈란 여성 주인공이 얼마나 모리아크를 지배하고 있는가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모리아크의 서술을 보면, 오히려 점점 테레즈에게 압도당한다. 모리아크에겐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녀인지, 작가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테레즈에게 지배당한다..
<테레즈 데케루>는 남편을 독살하려다 실패한 '악녀' 테레즈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악녀'라 불릴법한 그녀는 오히려 성녀로서 나타난다.
테레즈의 살인미수는 결코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선은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 관점으로, 말 그대로 두 부유한 집안의 결합을 위한 희생양으로서 저항이다. 이러한 그녀를 남편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재판은 결국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가족들의 동의로 없었던 일로 되며 테레즈는 말 그대로 감옥 속 수인이 된다.

테레즈는 고난받는 성녀이며 가족과 싸우는 가녀린 여성이고, 집단과 맞서 스스로이고 싶어하는 개인이다. 물론 모리아크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또한 그녀가 상당히 매혹적인 인물이란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엠마 보바리와 같은 인물은 결코 아니다. 몽상가인 엠마와는 다르게 테레즈는 이성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저런 소설의 전개를 통해, 독자는 테레즈의 독살 시도에 관하여 상당히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코 해소되지 않는 앙금이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테레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후 억압받는 생활을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종교적인 색채가 매우 강한 소설이다. 모리아크 본인이 카톨릭 성향이 강한 작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테레즈의 수난은 키에르케고르의 철학과 유사하지 않나 싶다. 기독교적 관점이나 모리아크의 관점에서 그녀가 죄인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죄는 단순히 남편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해야할 그녀 자신을 속였고, 그렇기에 수난을 받는 것이 그녀의 십자가다.

결국 성녀의 고난은 그녀의 진정한 자유, 혹은 진정합 고립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이제 파리에서 홀로 살아가야한다. 물론 그녀의 고난이 완전히 끝났을지, 아니면 홀로 살아가야하기에 더욱 새로운 고난이 닥칠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다만 그녀는 죄인이며 속죄와 진정한 자신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물론 그녀에게 심취한 모리아크 또한 이런 점이 불편했나보다. 그는 테레즈에게 안식을 원한다.

-<밤의 종말>에서 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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