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덤 루이스 (1) <타르>, 예술, 죽음 그리고 타르 독서일기-소설



윈덤 루이스는 에즈라 파운드의 극찬을 받은 화가이자 작가지만, 그 역시 파운드와 비슷한 파시즘과의 협력으로 몰락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모더니즘에 영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작품들은 절판되었다. <타르>는 윈덤 루이스의 데뷔작이자, 잡지 연재 판본과 개정 판본, 두 종류가 있는데, 옥스퍼드 클래식에선 1928년 개정판 판본으로 <타르>를 재판하였다.

<타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프레데릭 타르는 예술가이자 윈덤 루이스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상당히 허무주의적 인물이다. 그는 주변의 보르주아적 보헤미안들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며 여자 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고뇌를 가진다. 이런 타르와 대조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독일인 오토 크라이슬러다. '오토'란 비스마르크를 연상시키는 이름답게, 그는 중년의 실패한 예술가이자 지극히 독일적인 인물이다. 거만하며 뽐내기를 좋아하고, 오만하며 어느 면에선 비굴하고 그러면서도 성적으로 실패자란 점에서 뭐라고 딱 정의하기 힘든 꼬인 괴물이다.

소설은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적인 것, 프랑스적인 것, 그리고 독일적인 것, 이렇게 3 요소가 어쩡쩡하게 섞이면서 전개된다. 소설 자체는 어느 정도 프랑스적이나 독일적인 소설의 탈을 쓴 것 같지만, 뼈속까지 영국적인 소설이다.

윈덤 루이스의 그림답게, 소설은 어느 정도 회화적인 요소가 있다. 루이스는 화가답게 겉으로 나타나는 외향과 성에 집착한다. 물론 그는 이런 외향을 통해 내면을 그리고자 한다.

소설 자체는 기괴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겉보기엔 어느 정도 도리언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데카당트적 예술 소설 같아보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론 성장 소설이나 시대의 흐름을 그리는 시대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루이스 자체는 독설적인 작가다. 그는 기괴한 그의 꼭두각시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내키는데로 퇴장시킨다. 분명 작품 자체에 깔려있는 분위기는 냉소다.
어떤 점에선 코믹하면서도, 어떤 점에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소설은 두 여인과 두 남자의 관계, 특히 성적 관계를 중점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악마적일 정도로가지 묘사되는 여성성 그 자체다. 즉 예술가 두 명,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가 두 명의 여성과의 투쟁이다. 크라이슬러의 퇴장은 이런 중년의 마지막 희망의 몰락이며 독일의 몰락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타르가 승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크라이슬러에 의해 어느 정도 지배당하며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또다른 큰 한 축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이다. 타르는 본인의 말 마따라 살아있는 것들을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내다. 이런 죽음의 모티프는 예술의 주요 모티프이며 막판 '홀로코스트의 장'에서 폭발하게 된다. (이 홀로코스트 자체는 2차 대전 이전에 쓰인거라 아무런 관계 없단다. 다만 루이스가 히틀러 찬양한 것을 생각해보면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다. 크라이슬러란 인물 자체도.)

분명 개정 전과 개정 후를 비교해보면, 약 10년 이란 세월 동안 작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1918년 판본이 없으므로 비교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작품  자체는 상당히 복어독스럽다. 물론 먹어보진 않았지만. 많이 먹으면 안 좋다. 그렇지만 작품이나 문장 자체의 요독스러움 때문에 자꾸 손이 가는 그런 소설이다.

-윈덤 루이스의 또다른 소설 <인간의 시대>의 2,3부 부분에 해당하는 책은 예전에 구입했는데, 안타깝게도 1부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 못 읽고 있다.
-파운드가 <율리시스>와 더불어 최고의 소설로도 극찬했던 <신의 원숭이들>도 읽어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1950년대에 나온 1000부 한정판으로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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