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독서일기-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저 거대한 <특성 없는 남자>로 유명한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소설로, 여러모로 <특성 없는 남자>의 도래를 예견하는 책이다.
(<특성 없는 남자>를 정말 특성 없는 느린 속도로 읽고 있는 와중, 펭귄판 영역으로 짧은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먼저 다 읽게 되었다.)

무질의 특징적인 면, 철학적이며 느릿느릿한 점은 이 소설에서부터 드러나지만, <특성 없는 남자>란 저 거대한 미완성을 읽기에 부담감을 느끼는 독자라면,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훨씬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완성임에도 영역으로만 1100여 쪽이 넘는 <특성 없는 남자>와 비교하면, 150 쪽의 초라한 분량이다.
물론 짧은 분량과 달리, <특성 없는 남자>만큼 알찬 내용을 가득찼다.

소설의 중점은 말 그대로 어린 퇴를레스의 혼란에 관한 내용이다. 무엇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표면적인 사건은 남자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절도를 저지른 친구를 발견한 남자 학생들에 의해 유린되는 범인의 인권. 성적인 면까지 암시하는등, 말 그대로 당대 오스트리아의 퇴폐적이고 세기말적인 폭력 사태에 대해 퇴를레스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참여한 가해자로서, 그리고 그 가해를 저지르는 피해자로서.

물론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이 사건이 없었어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혼란의 중점은 저 호프만스탈이나 비트겐슈타인이 품었던 의문과 유사하다. (애당초 서로 비슷비슷한 시기의 오스트리아 출신의 위대한 세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그는 수학에서의 허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칸트에 대해 의심한다.

수학이라는 완전한 논리적 체계에서 허수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그저 납득해야만한다는 것에 그는 혼란을 느낀다.

그는 말 그대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 사색하며 결국은 그 누구와도 달리 홀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을 깨닫는다.

소설은 학교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서 부모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대조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 기차역에서 부모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말 그대로 어린 퇴를레스의 혼란의 시작과 끝으로 대비된다.

이러저러한 어린 퇴를레스, 결코 이름도 나오지 않는 학생의 고민과 그 해답의 일부분은 비록 <특성 없는 남자>의 특성 없는 남자, 율리히에게 계승되지만, 이 소설 자체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로베르트 무질이란 작가를 알고 싶지만, <특성 없는 남자>란 거대한 벽이 두려울 때, 혹은 그 벽을 넘기 위하여 준비 단계가 필요할 때,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추천될만한 책이다.

*지만지 등에서 번역본이 있다.

덧글

  • Wachtraum 2013/08/06 05:32 # 답글


    안녕하세요. 근자에 제임스 조이스 검색으로 잘롭님의 이글루스를 발견하고 와, 보물창고다 라며 눈팅만 하다가 무질 포스팅에 기억이 새록새록 하여 댓글 달아 봅니다. 저는 국문으로 번역된 <세 여인>과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까지만 읽었는데요. <세 여인>도 몹시 좋슴다. 세 여인에 대한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겐자부로가 <나 라는 소설가 되기>라는 제목이던가? 거기에서 토마스 만과 무질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단박에 핵심에 이르는 무질 쪽을 부러워 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겼는데 이해가 간다는..

  • JHALOFF 2013/08/06 12:56 #

    <세 여인>이 번역본이 있었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빨리 특성 없는 닝겐도 읽어야하는데 분량의 압박 때문에 허허
  • 무명 2013/10/27 16:18 # 삭제 답글

    특성 없는 남자 번역이 있어서 읽어 봤어요 한 2권까지는 봤거든요 굉장히 좋게보고있어요. 공지영작가(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는 클라리세의 행동를 하는거같아요 .ㅎㅎ
  • JHALOFF 2013/10/30 06:56 #

    그런 생각은 못 했네요 ㅎ
  • 무명 2013/10/27 16:19 # 삭제 답글

    특성없는남자는 수많은 이상과 사상이 있는 현실시대가 과거랑 미래랑 해서 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서술할려는거같습니다.
  • JHALOFF 2013/10/30 06:57 #

    어떤 면에선 그 몰락하는 빈 시대에서 방대한 고찰이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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