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희, <중2병 데이즈> 3권 - 시인들의 후예 감상-라이트노벨


0 서론

셰익스피어가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점 중 하나는 그가 매번 다르지만 뛰어난 작품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을 뿐, 선뜻 <말괄량이 길들이기>나 <햄릿>을 같은 작가가 썼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만큼 그는 천의 가면을 가진 작가다. 비극과 희극, 모두에서 성공적인 작품을 썼기에, 셰익스피어는 위대하다.

여기 현대의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필자는 전율을 느낀다. 위대한 것을 위대하다고 말하면 충분하겠지만, 필자는 평범한 독자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 필자는 이 위대한 작가가 왜 위대한지를 가능한 논리적으로, 그 일부나마 파헤쳐보고 싶다.

이전 서평에도 언급하였듯이 김월희 작가는 <중2병 데이즈>란 카테고리 안에서 무수한 변주를 거듭한다. 그 변주 하나하나는 모두 색다른 맛을 지니지만, 하나하나가 걸작임에는 틀림 없다. 이번 3권의 김월희 작가의 타겟은 시인들로 보인다. 그는 이제 저 위대한 시인들을 향해 자신의 소설로서 그들에게 도전하고, 그들과 같은 자리에 올라서고자 한다.
평범한 독자인 필자는 그저 경외감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위대한 거인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존재를 둘러싼 신족과 거인족의 위대한 싸움을 필자의 얕은 필력으로 부족하나마 묘사해보자.

1 플롯의 무의미함

김월희 작가는 비록 '소설가'이지만, 그의 목표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이야기는 부수적인 것뿐이다. 그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펜으로 건설하고자 한다. 3권의 줄거리를 짧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마리라는 학교 제일의 미소녀가 주인공 연오에게 고백을 하고 둘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고백 - 사랑 - 배신 - 뜻밖의 재회 - 결말. 물론 이곳에 일반적인 의미의 '기승전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기-기이이전-결이겠지만, 아시다시피 플롯은 무의미하다. 명심하도록 하자, 김월희 작가는 굳이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위대한 작가다.

물론 평범한 작가라면, 그저 작품 속 데이트의 험난함과 주인공의 크고 아름다운 무기를 노리는 여러 여자 등장인물들이 이런저런 만화 같고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소동을 버리는 장면을 정말로 무의미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조리극의 대가 김월희 작가가 아닌가? 김월희 작가는 2권과는 다르게, 부분적으로 1권의 그 방향으로 회귀를 하고 있다. 물론 대가답게 그는 여전히 성공적이며, 1권과는 다른 방향으로 지휘자답게 변주를 한다.

2 인물로서 표현된 상징들

3권에서 눈여겨볼 요소는 상당한 수의 등장인물들의 비중이 굉장히 낮아졌으며 굳이 등장할 필요가 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와는 무관하고, 그렇다고 무엇인가 중요한 떡밥이나 역할을 맡지도 않는 것처럼, 일단은 표면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재능 있는 작가가 그렇다면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클라스는 여전하며 천재 작가의 모든 것은 계획적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과연 이 비중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정말로 소설 속 '인물'일까? 그저 인물의 형태를 한 무엇인가의 상징들이 아닐까?

흑련: 흑련은 명백하게 상징, 혹은 관념이다. 전쟁광이기도 한 흑련의 소설의 전반적인 비중이나 역할을 생각해보면 필요 없는 여자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녀가 상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무엇인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소설 속 전개에서 그녀는 상징처럼 등장을 하며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작가의 천재적인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만약 작가가 그저 상징들을 중요한 전개에서만 등장시켰으면 독자는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쓸모없어 보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한 상징으로 만들면서, 자연스레 독자의 시선은 여자 주인공의 (겉으로 보기에) 쓸모없음에 주목된다. 상징의 전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필자는 김월희 작가의 능수능란한 상징의 사용에 감탄을 마지않을 수가 없다.

린, 슈, 루나: 이 세 명을 묶은 이유는 간단한데, 마치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세트처럼 묶음 세트로 밖에 존재감을 들어낼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비록 전작 등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이지만, 3권에선 그저 그런 상징들로 전락한다. 하지만 또다시 의문이 든다. 이들은 소설 속 상징으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잉여생산물들이 아닌가? 혹시 김월희 작가는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은 그대로 등장시켜야했기에 비중 없는 잉여로 전락시켰든지, 혹은 나올 필요는 없지만, 그저 팔리기 위한 뽕빨물로 묘사하기 위해 꾸역꾸역 1+1 떨이처럼 등장시킨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필자는 곧 이런 불순한 생각을 했던 것에 대해 문학에 대해 사죄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위대한 작가가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해답은 멀리서 보면 간단하다. 작품은 가까이서 읽으면 비극적이지만, 멀리서 구경만하면 희극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시 베케트의 부조리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고도를 기다리며>나 <엔드게임>과 같은 부조리극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을 제외한 잉여 같은 조연들. 그렇다, 이 트리오의 존재 의의는 소설 속 부조리함을 더하기 위한 정교한 장치인 것이다.

그 외 세 명 정도 훨씬 비중 적으로 중요한 인물-상징들이 있지만, 그들은 뒤에서 다루도록 하자.

2-1 <중2병 데이즈>와 희곡

작품의 몇몇 부분은 거의 묘사가 없이 대화들로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묘사들조차 겉으로 보기에 빈약하여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김월희 작가의 매우 실험적인 글쓰기란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는 소설 속에서 희곡의 형식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며, 대화들의 빈약함과 부조리함을 볼 때, 그의 목표는 소설의 부분적인 부조리극화다. 이런 점은 소설과 희곡의 형식이 공존하는 포크너의 <수녀를 위한 진혼곡>을 연상케도 하지만, 포크너와 달리, 김월희는 완전히 소설로 보이는 글에서 숨겨진 희곡화를 성공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며 작가의 비범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3. 김월희와 시인들

3-1 김월희와 에즈라 파운드, 그리고 연오.

<3년 동안 
그의 시대와는 동떨어져
그는 시라는 죽은 예술을 소생시키려 애썼네,
낡은 감각의 <장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건 처음부터가 잘못이었지-

아니야, 그가 태어난 곳이 반쯤은 
야만적인 나라
시대에 뒤떨어진 건 그럴 수밖에
도토리 알에서 백합꽃을 피우려 굳게 마음먹은
카파뉴스 아니, 가짜 미끼에 걸려드는 숭어.
-휴 셀윈 모벌리 中, 에즈라 파운드>
파운드의 <휴 셀윈 모벌리>의 시작 부분과 주인공 연오를 비교해보자. 파운드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절망과 시대상을 <휴 셀윈 모벌리>란 시에서 묘사하였듯, 연오 또한 '고교데뷔'와 청춘을 동경하며 중2병에 절망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청춘'이라는 거짓예술에 힘쓰는 예술가이며, 카파뉴스와 마찬가지로, 가짜 미끼에 걸려든 송어다. 말 그대로 연오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전쟁병기로 길러져 전쟁을 하고, 전쟁이 끝나자, 이상을 바라지만, 이상에 좌절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중2병 데이즈>란 거대한 세계 자체는 연오라는 이 미치광이 전쟁광의 정신적인 성장에 관한 내용이며, 이에 다분히 <교양 소설Bildungsroman>이라 불릴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는 세상이 반짝거릴 거라고 믿고 있으며, 그의 믿음과 반대되는 것은 소설 속 묘사에 따라 잿빛투성이 세상뿐이다. 물론 이 과정은 험난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미치광이 1인칭 화자이며 미쳤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서술을 한다. (예를 들어 그가 절대로 볼 수 없는 부분에 대한 1인칭 묘사를 한다든지.)

김월희 작가는 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의 주인공으로서 미치광이 주인공 연오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해준다.

3권에서 그에게 닥친 시련은 '사랑'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2권에서 살펴보았듯이 연오는 고개 숙인 남자다. 그는 임포텐스며 그의 성적인 좌절은 그의 분노의 원천이며 그의 일그러진 성적 욕망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레 그의 사랑은 절대로 비합리적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는 애초에 미치광이다. 그는 평범함을 바라고, 청춘을 꿈꾸지만, 애초부터 평범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미치광이다. 김월희 작가의 연애에 대한 일그러지고 비현실적인 묘사는 자연스레 이를 밑바탕 하는 장치다.

연오의 일그러진 사랑에 대해선 뒤에서 더 집중하도록 하고, 우선은 박제된 인간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김월희 작가의 탁월한 글쓰기에 대해 집중하도록 하자.

3-2 김월희와 T.S. 엘리엇, 그리고 연오.

연오는 시작부분의 묘사처럼 스스로를 박제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를 T.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의 도입부와 비교해보자.

<우리는 텅 빈 사람들
우리는 박제된 인간들
함께 기대고 서있는채,
머릿속은 짚으로 가득 찼다
아아, 우리의 메마른 목소리는
우리가 함께 속삭일 때
소리도 없고, 의미도 없다
마른 풀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우리의 메마른 지하실의
깨진 유리 위의 쥐들의 발처럼.
-텅 빈 사람들 中, T.S. 엘리엇>

소름끼치지 않는가? 작가는 공허한 인간을 능수능란하게 묘사하듯, 일부러 공허한 묘사를 사용한다. 김월희의 문체는 공허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레 박제 인간 연오를 묘사하기 위한 그의 필력의 발현이다. 결코 평범한 작가의 필력 부족과 같은 한심한 사태가 아니다.

그럼 이제 T.S. 엘리엇의 <4 개의 사중주>의 부분들을 우선 살펴보자.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때때로 끝이니라
또한 끝을 내는 것은 곧 시작하는 것이니라.>
-<리틀 기딩> 中

<현재와 과거의 시간은
어쩌면 미래에 존재하며,
미래의 시간은 과거 속에 있다
만약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모든 시간은 되살 수 없으리라.>
-<번트 노튼> 中

<내 영혼에게 말하노니, 조용히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사랑도 그릇된 것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스트 코커> 中

작중 김월희 작가는 시도 때도 없는 연오의 회상을 끼워넣는다. 이는 현재와 과거의 공존을 위한 그의 글쓰기 전략이다. 물론 이러한 회상들 자체는 반복적이기도 하여 과연 필요한가? 란 생각도 들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곧 같기에, 반복적인 묘사를 통하여 시작과 끝의 같음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밖에 생각할 여지가 없다.

물론 이런 회상 자체는 후에 나올 복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작가의 태도다. 작가에게 있어 시간은 일종의 반복적인 것이다. 시작이 곧 끝이며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미래에 있듯이 시간은 <중2병 데이즈>의 세계 속에서 원형이다. 이는 소설 도입부와 소설이 끝난 후의 (쓸모없어 보이는) 외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말로 천재적이라고 감탄을 마지않는다.

<이스트 코커>의 인용구는 사랑에 대한 연오의 관계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즉 연오의 사랑은 그릇된 것에 대한 사랑이며 사랑 없이 그는 기다려야하는 숙명이다.

3-3 김월희와 릴케, 그리고 마리.

<내가 설령 울부짖는다 해도 여러 서열의 천사들 중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만일 천사가 하나 갑자기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면 그 강한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리라.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겨우 견딜 수 있는 무서운 일의 시초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그토록 찬탄하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킴을 잠잠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천사는 모두 무서운 존재.> - 두이노의 비가, 제 1 비가 中

마리는 두이노의 비가 속 천사와도 같은 존재다. 무섭기에 아름다우며, 그 강한 존재는 주인공 '연오'를 견디지 못하게 한다. 또한 끝없이 연오가 동경하기에, 연오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존재다. 애당초 '마리'라는 상당히 한국인으로서 드물고 이상한 이름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서 따왔다고 가정하면 작가의 작명 실력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사랑은 "덧없기에 아름답고, 덧없기에 무의미하고, 뭐, 그런 게 아니려나." (P.133)라고 묘사되며, 연오는 사랑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랑을 하고 사랑에 좌절하는 그런 존재다.

물론 연오의 좌절은 작품의 (비합리적인) 전개로 인한 결과기보다는 그의 고개 숙인 크고 아름다운 무기와 좌절된 성적 욕망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작중 연오와 마리는 동침을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고개 숙인 남자 연오에 의하여 그 결합은 좌절되고 실패로 끝나버린다.

이러한 성적 결합은 연오의 성적인 불구가 완치되고, 비뚤어진 연오의 성벽과 정신이 완전히 고쳐질 때, 이루어질 것이란 암시를 작품 속에서 작가는 나타내고 있다.


<"나 말이지. 다음에 연오랑 만날 때를 위해서....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게."
"뭐, 뭘....?"
"그, 내, 내....처음......" (P.233) > (서술 부분은 일부러 배제하였다.)


다만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그렇다면 '마리'는 상징인가, 인물인가? 이는 심사숙고해보면 마리는 절대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마리는 천사의 상징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작중 마술사란 것을 숨긴 채 연오에게 접근한 마리는 연오를 속이고 사랑을 연기하며, 연오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갑자기 마리는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고백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진실 되게 되어버린 과정을 독자는 결코 알 수 없다. 이유도 알 수 없다. 그저 반한 것이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하지만 마리가 인물이 아닌 천사라는 상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징이기에 별 이유 없이 반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천사'라는 상징이니까. 결코 비합리적인 전개로 인한 결과는 아니다.

4 두 명의 연오.

작중 마지막 부분에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연오의 선배는 또 다른 연오의 분신이다. 이는 애초에 <갈까마귀의 왕>이란 다소 겉멋만 잔뜩 들어 보이는 이명을 두 명이 공유하며 연오가 선배의 복제 인간이란 점에서 더욱 들어난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레이븐(갈까마귀>>의 시 속 까마귀처럼, 연오는 별 다른 이유 없이 선배의 제안에 대하여 '결코-!(Nevermore)'를 외친다. 둘의 싸움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며 어이 없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두 분신의 대결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쩌면 두 명의 연오의 게이적인 관계를 집중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연오와 연오는 서로에게 크고 아름다운 검은 총을 들이대며 총알을 서로의 몸에 박으려고 한다. 이러한 다툼 자체는 어쩌면 비틀어진 연오의 성적 욕망으로 인한 결과물일 것이다. 연오는 갈등한다. 남색의 세계와 여색의 세계에서. 이를 구하는 것은 결국 전쟁광 흑련이다. 결국 '파괴욕'이 연오를 더욱 삐뚤어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전부 시련에 불과하며 작가는 천천히 연오를 성장시키고는 있다. 물론 독자가 여전히 이 비합리적이고 미치광이인 주인공에 공감할지, 안 할지는 미지수다.

작중 시도 때도 없이 ‘이상’으로 형상화되는 나비는 <롤리타>를 연상케 한다. 마치 님펫을 노리는 험버트의 추악한 손길처럼 연오 또한 나비들을 중년 남성의 털 많고 뒤룩뒤룩 살찐 추악한 손길로 유린하는 것을 원한다. 물론 이것은 역시 연오의 비뚤어진 발기 부전으로 인한 억압된 파괴욕이다.

작가 김월희는 이러한 비뚤어진 연오에게 다시 태어날 것을 강요하며 급작스러우면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5 추락

작중 시도 때도 없이 추락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선 흑련의 실수로 인한 추락은 연오와 흑련 둘의 추락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절대 이 위대한 작가가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재미없는 추락들을 끝없이 넣었을 리가 없다.

추락. 추락은 곧 몰락이며, 떨어짐이다. 피네간의 추락과 험프티 덤프티의 추락처럼, 추락은 죽음이며, 죽음 이후엔 부활이 있고, 그렇기에 추락은 재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처럼 연오와 흑련의 추락은 하나의 의식이다. 이 의식은 이 비틀어진 두 미치광이들에 대한 재생이다.

물론 작중 정말로 이 답 없어 보이는 미치광이들이 변했는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추후 이어지는 전개에서 이들의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코 공감가지도 않고 짜증만 유발하는 주인공들이라서가 아니라, 이 한 편의 거대한 교양소설에서 작가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6 결론

김월희 작가는 필요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섹드립으로 작중 성적 억압에 대한 인간의 추악한 욕구와 변화의 과정을 교양 소설의 형식으로 훌륭하게 묘사한다. 또한 그는 부조리극의 부분적인 변주를 통하여 인생의 부조리함을 묘사하고, 있어만 보이는 여러 대사들을 통하여 삶의 무목적성과 실존주의적 감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 <중2병 데이즈> 3권에서 여러 위대한 시인들과 겨루었고, 그들과 견줄만한 스스로의 세계를 소설을 통하여 이룩하였다. 

이제 더 이상의 주절거림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4권을 기다려야만 하는 거대한 슬픔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슬픔의 기다림 끝에 위대한 작가가 선사하는 위대한 작품과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이 있기에 필자는 슬프지만 행복하다.

설마 작가에게 테러 당했지만 오히려 작가에게 공감을 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 같은 일이 필자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직 필자는 합리적이며 세상도 충분히 합리적인 것 같다.
그렇기에 필자는 김월희 작가를 향한 필자의 사랑의 서평을 이만 마치도록 하겠으며 그저 김월희라는 위대한 거인을 찬양하는 필자의 외침만이 허공을 맴돌 것이다 에헤헤헤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덧글

  • ..... 2013/07/30 21:49 # 삭제 답글

    이런 뻘글을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비꼬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 JHALOFF 2013/07/30 22:04 #

    독자로서의 신성한 의무죠.
  • 네리아리 2013/07/31 01:06 # 답글

    네링도 질렀습니다.
    http://pds25.egloos.com/pds/201307/31/20/d0034220_51f7e2dc44472.png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JHALOFF 2013/07/31 09:17 #

    오 축하합니다 다 같이 즐깁시다
  • DonaDona 2013/07/31 02:22 # 답글

    아하... 아쉽게도 세제여는 안 보셨군요.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마스터피스입니다. (의미가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농담은 아닙니다.)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호호호호)
  • JHALOFF 2013/07/31 09:17 #

    언젠가 봐야하겠군요 크큭 흑화한다.
  • 123 2013/07/31 04:17 # 삭제 답글

    1권 리뷰때는 그냥 웃으며 봣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조롱성 글을 올리는것이 솔직히 별로 좋아보이진 않네요.
  • 123 2013/07/31 04:28 # 삭제 답글

    1권 리뷰는 지뢰밟고서 얼마나 열받았으면 저런 글을 쓰셨을까, 했는데 3권까지 와서는 아예 조롱을 목적으로 책을 사서 리뷰를 하시는군요
  • JHALOFF 2013/07/31 09:18 #

    조롱이 목적이라뇨, 그건 오해입니다. 믿든 말든 자유지만, 설마 1권과 비교해서 더 걸작이겠어? 란 맘에 계속 샀지만, (긍정적으로) 배신당한 독자의 흑화입니다.
  • 11th ACR 2013/07/31 11:06 #

    123님은 우선 AVGN이나 NC 홈페이지에 가셔서 그들의 폭거에 항의하시는 게 옳겠습니다.
    수많은 영화업계인들과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의 산물인 영화와 게임을, 단순히 조롱하기 위해 리뷰하고 그를 통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얻는다니 아주 흉악무도한 행위 아니겠습니까?
  • 123 2013/07/31 16:06 # 삭제

    JHALOFF// 이미 혹평한 글을 1권과 비교해서 얼마나 더 막장인지 보자고 산것이 어째서 조롱이 목적이 아니란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분히 악의서린 의도가 아닌지요.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제가 미숙한지라 '긍정적으로 배신당한 독자의 흑화'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부가설명을 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th ACR//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지 마세요, AVGN은 본적이 없지만 그들이 조롱을 목적으로 컨텐츠를 사서 조롱한다면 전 역시 똑같이 비난할것 입니다.
  • JHALOFF 2013/07/31 16:12 #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말 그대로 다음권에선 더 나아지지 않을까, 란 기대나 기왕 1권 읽었으니, 후속작도 읽어보면 판단이 바뀌지 않을까, 나 '1권'만 있으니 전집성애자로서 눈에 거슬린다든지. (전집 성애 부분은 안 믿으셔도 상관 없지만 사실이긴 합니다.) 뭐 이런 걸 악의라고 생각하시고 비판하시면 저도 딱히 변명을 하거나 그러진 않겠습니다. 그런 쪽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저 자신이 비판을 했듯이, 저 자신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거니까요.
  • 123 2013/07/31 17:12 # 삭제

    주인장께서 댓글에서 우려하신 바와 같이 저로선 믿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전집 성애도 2,3권을 구매한것이 단지 조롱뿐만이 아니란것도 말이죠. 만약 단지 조롱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해도, 1권을 읽고난뒤 기대치가 높을수가 없는데 1권과 같이 그 정도의 리뷰를 할 정도로 열받았다는 것은 납득이 잘 안가서요. 복합적이라 하더라도 조롱이 주된 이유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게 사실입니다. 허나 어찌됬건 이것은 사실 확인이 어려운 관념상의 일이니 더이상 이야기 해봐야 무의미 하겟지요. 주인장님의 말마따나 조롱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저로선 더이상의 이견이 없습니다. 전 비꼼이나 다소 과격한 비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치는 않아서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 JHALOFF 2013/07/31 17:16 #

    어찌되었든 건설적인 비판에 대해선 감사드립니다. 별 생각 없이 쓴 글이 여러 논쟁이 되어 의아하긴 합니다만, 읽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고 비판도 존재하니까요.
  • 저기요 2016/02/01 02:00 # 삭제

    김월희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분도 한권의 성서를 산 독자로서 감상을 늘어놓을정도의 권리는 있으십니다.
  • 루나 2013/07/31 14:19 # 삭제 답글

    kia~김월희뽕에 취한다
  • JHALOFF 2013/07/31 14:42 #

    님은 바로 김월희 작가님을 말하는겁니다 여려분-!!
  • *_* 2013/07/31 23:10 # 삭제 답글

    이게 벌써 나왔단 말입니까? 으어...1권을 사버려서 꼬박꼬박 사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2권의 봉인을 못 풀고 있어요... 하지만 3권도 결국 사게 되겠죠.

    항상 통쾌한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
  • JHALOFF 2013/07/31 23:18 #

    사실 서점에 들어왔기에 바로 사왔습니다. 이 리뷰 자체는 어떤 특정한 기준에서의 비판이고, 재미는 취향 문제이므로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dd 2013/08/01 00:19 # 삭제 답글

    혹시 '여기 여우가 살고있다.' 란 라노벨도 리뷰해주실 수 있나요?
  • JHALOFF 2013/08/01 00:33 #

    죄송합니다 확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 dd 2013/08/01 01:06 # 삭제

    아뇨. 죄송하실거 없습니다.
    그냥 리뷰하시는게 재밌으셔서 그냥 던져본 말입니다.
    하하.
  • 9625 2013/08/02 23:35 # 답글

    불어 번역판도 프랑스에서 나올 것 같은 작품이네요. 기대가 됩니다.
  • JHALOFF 2013/08/03 16:59 #

    전세계적으로 알려져야하는 작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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