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비가(1) 기도시집 外 프로젝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끔 무지렁이 같은 목사들은 버리고, 차라리 릴케와 같이 뛰어난 종교적인 시인들의 글을 설교로 대신 쓰는 것이 기독교 자체로서도 더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릴케와 같이 고고한 영혼들은 종교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정수들만을 뽑아, 시를 쓴다. 그런 의미에서 말 그대로 액기스만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종교인들에게는 더 유용하지 않을까?

릴케의 비가 시작한다.


릴케의 첫 시집들은 주로 일상이나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체코와 관련된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또한 개인적인 면들도 다루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눈여겨볼 만한 요소는 없다. 젊은 시인은 이제 막 시작을 시작하였고, 그는 아직 미성숙하다. 그저 씨앗만을 품고 있을 뿐이다.

초기 시들이라 이름 붙인 <나의 축제를 위하여 2판>은 사뭇 첫 시집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서히 그는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한다. 그의 주제는 비교적 다양하다. 사랑이나 자신, 혹은 신. 릴케는 종교적인 시인이긴 하지만, 비종교인으로서의 거부감은 없다.

<백의의 후작부인>은 짧막한 시적 희곡으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특별한 작품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며 릴케가 썼다, 라는 타이틀이 붙었기에 수록되었지, 굳이 특별히 읽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는 기사의 무험과 죽음에 관한 영웅적인 시다. 산문과 운문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적어도 시에 나타나는 주제들은 훗날 위대한 시집들의 몇몇의 모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은 행을, //은 연을 의미한다. 

<고통스런 불안이 그를 고향으로 불렀다/그는 눈물에 젖은 눈길로 관 속에 있는/그의 가엾은 창백한 애인을 만들었다,/ 그것, 바로 그것이 그의 걸작이었다.> - 젊은 조각가,가신에게 바치는 제물


<피곤한 푸른빛, 움직임 없는 푸른빛/속에서 멀리 달리 헤엄친다. 달의 빛나는/이마를 애무하는 셍명의 나무들은/검은빛이다. 시든 장미의 향기는/죽음 꿈들의 유령처럼 파고든다.> - 볼샨에서, 가신에게 바치는 제물


<사랑이 네게로 어떻게 왔는가?/햇살처럼 왔는가, 꽃눈밭처럼 왔는가,/기도처럼 왔는가? 말해다오.> - 사랑하기, 꿈의 왕관을 쓰고


<이 세상 어디엔가 궁전은 있으리,/거기 창문에는 먼지가 눈처럼 쌓이고,/ 늘어선 기둥들의 울림 사이로는/ 죽은 날들이 깃들이리라./거니는 형상들, 성유물함의 경고소리;/거기 즐거운 빛살 한 가닥/고적한 진귀함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리....// 그곳에서 우리는 축제를 열리라-/동화 속처럼 쓸쓸하게> - 선물, 강림절


<나의 그리움은 큰 물결 속에 살며/시간 속에 고향을 갖지 않는 것./ 나의 소망은 나날의 시간이/ 영원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삶이다. 어제로부터/ 다른 자매들과는 다른 미소를 지으며/ 영원한 존재를 맞아 침묵하는 시간들 중에서/ 가장 고독한 시간이 떠오를 때까지 가는.> - 나의 축제를 위하여 서시


<기도시집>은 위대한 시인 릴케의 첫번째 위대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도시집>에 이르러서야 릴케는 드디어 위대한 관조자로서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성숙해졌으며 그의 시적 세계가 본격적으로 들어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도 시집의 주체는 '기도'다. 릴케에게 있어, 기도란 신에게로 향하는 예술이다. 어떤 면에서 릴케에게 시를 쓴다는 행위는 곧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행위와 같다. 기도는 일종의 신과의 합일이며 내면의 과정이다. <기도 시집>은 개인의 내면에 관한 시집이다. 외면, 즉 사물들에 관한 릴케의 시집은 뒤의 <형상시집>과 <신시집>에서 계승된다. 릴케는 기도를 통하여 신을 완전히 알고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금방 시들어버리는 나의 감각은/ 머물 곳도 없이 당신과 떨어져 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주 조용해진다면./ 우연한 것, 하찮은 것/ 그리고 이웃의 웃음소리가 침묵한다면,/ 나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나의 각성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 수천 번의 사색으로/ 당신의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생각하고/ (미소 짓는 순간만큼이라도) 당신을 소유할 수 있으련만.>

다만 릴케의 신이 비단 기독교의 야훼를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다. <두이노의 비가>의 천사가 기독교의 천사가 아니듯, 릴케에게 있어, 신은 야훼임을 포함하면서도, 일종의 절대정신과 같은 존재다..

물론 인간은 신보다 미천한 존재이며 신이 있기에 인간이 있다. 그러나 신 또한 인간이 믿고, 기도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릴케의 기도는 신에게 바치는 시이자 그를 존재하고,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기도인 것이다. 신은 대우주이며, 인간은 소우주다. 신에 미치진 못하지만, 신의 형상을 하고, 신의 소우주이기에 시인, 혹은 예술가는 내면을 관조하고, 사물의 진모습을 투시할 수 있다.

'죽음'이나 '어둠' 등 릴케의 시세계에서 중요한 시어들은 이미 여기에서부터 형성된다.

<나를 낳아준 어둠이여,/ 나는 불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불꽃은 제 주위로 둥그렇게/ 찬란히 빛나면서/세계를 구별 짓지만,/ 그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도/ 불꽃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둠은 모든 것을 제 품에 품고 있습니다>

릴케에게 있어 죽음이나 어둠은 단순히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죽음은 삶 속에 있으며, 삶을 완성하고, 어둠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감싸면서,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없애, 한 마디로 공평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진심을 볼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다.

때때로 그는 '침묵' 자체의 긍정을 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위대한 정신들의 예도 있으므로 그다지 설명하거나 더 생각할 필요는 못 느낀다. 호프만스탈도 그랬고, 비트겐슈타인도 그랬으며 무질도 그러하였다. 말해질 수 없는 것,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시인이다.

신은 거룩하며 사실 결코 다가서지 못할 존재처럼 그려진다. 이는 <두이노의 비가>의 천사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코 닿지 못할 것을 알기에도 끝없이 그에게 닿으려고 기도(시를 쓰는 것)하는 것이 곧 시인으로서의 사명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로마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무너져 사라지는 것./ 세계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탑에 둥근 지붕이 얹히기 전에/ 수마일에 이르는 모자이크로 된/ 찬란한 당신의 이마가 솟아오리그 전에/ 세계는 무너질 것입니다.>


<한 시대가 끝나갈 때, 그 시대의 가치를/ 다시 한번 종합하려 할 때면, 언제나 되돌아오는/스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그 누군가는 그 시대의 온 무게를 들어 올려/ 자기 가슴의 심연을 향해 집어 던집니다.>

단순히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기도 시집>은 어느 예술가의 예술에 관한 시이다. 릴케에게 있어 종교적이나 예술적인 것은 거의 같은 의미의 단어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통해 신에게로 이어지는 길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가다.

<당신이 태초에 하신 첫마디는 빛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생겨났습니다. 그 후로 당신은 오래 침묵했습니다./ 당신의 두번째 말은 인간이 되었고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낱말의 울림에 지금도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다시 당신의 얼굴은 생각에 잠깁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명상은 곧 뒤이어서 자연스레 밖으로 향한다. 성숙해진 그의 영혼은 더 뛰어난 작품들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 <형상시집>, <신시집> 등에서 께속.

*판본은 책세상에서 나온 <릴케 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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