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비가(2) 형상시집/ 신시집 外 프로젝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 릴케는 <기도 시집>에서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였다면, 이제 그는 바깥으로 나와야한다. <형상시집>과 <신시집>은 이러한 바깥, 혹은 사물들에 관한 시인의 성찰이다.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 서시 제 1권 제 1 부, 형상시집

스스로에 대해 사색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다. 문제는 바깥이다. 언제나 시인은 새로운 것을 보아야하며, 찾아야한다. 바깥이 있다. 사물들이 있다. 내가 있는 것과 별개로 사물들이 존재한다. 랭보가 말했던 것처럼, 릴케는 이러한 사물들을 보는 견자(見者)가 되어야한다.

<소녀들이여, 시인들이란 너희들에게서/ 왜 너희들이 고독한지 말하는 법을 배우는 자들이다;/ 시인들은 너희들에게서 먼 곳을 체험하는 법을 배운다./그것은 마치 매일 저녁이 커다란 별들을 보면서/ 영원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다.> - 소녀들에 대해서, 형상시집

그런 의미에서 어둠은 또하나의 중요한 테마다. 사물을 겉으로 보는 것에는 별 의미가 없다. 시인에게 있어 사물을 봐야하는 중요한 이유는 사물을 통해 스스로의 세계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사물을 그냥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사물의 내면을 봐야하며, '자신'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하나 밖에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 

어둠은 그런 의미에서 가시적인 모든 것을 없애주는 중요한 요소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내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또한 훗날 <두이노의 비가>에서 볼 수 있는 천사에 관한 테마가 이미 이때부터 드문드문 형성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천사는 훗날 '아름답고 무서운 존재'로 성장한다.

<천사들은 모두 피곤한 입과/솔기 없는 밝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원죄를 향한 듯한) 그리움 하나가/ 때때로 그들의 꿈 속을 지나간다.> - 천사들, 형상시집

<저녁이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다,/ 늙은 나무들의 가장자리에 걸친 옷을;/ 그대는 본다 : 그대와 헤어지는 땅들을,/ 하늘로 올라가는 땅과 아래로 내려오는 땅;// 그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침묵에 잠긴 집처럼 까만 어둠 속에 있지도 않고,/ 매일 밤 별이 되어 올라가는 그 무엇처럼/ 그렇게 영원한 것을 찾지도 않으면서-> - 저녁, 형상시집

물론 시인은 사물들을 얘기하지만, 결코 삶에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형상'시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들은 이 지상의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있었던 일이 아니다,/ 벽걸이 양탄자에서 끄집어낸 듯한 이야기들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결코 존재하지 않은 것을 그는 삶이라 부른다./그리고 그는 오늘은 널 위해 이 노래를 골랐다:> - 왕족의 아이 앞에서 노래꾼이 노래를 부르다, 형상시집

<커가는 폭풍의 손길에 닿아, 밤은/ 갑자기 얼마나 넓어지는가,/ 그렇지 않았으면 밤은 시간의/ 잔주름 속에 접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별들이 막아서는 곳에서도 밤은 멈추지 않으며,/ 밤은 숲 한가운데서 시작되지 않으며/나의 얼굴 곁에서 시작되지도/너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지도 않는다./전등들은 더듬거리며, 스스로 빛을 가장하고/있음을 알지 못한다./ 수천 년 이래로/밤만이 유일한 현실일까.....> - 어느 폭풍의 밤에서, 표제시, 형상시집

'삶'은 사실 이중적이다. 삶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있다. 릴케가 보기에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닌, 삶의 내면이며, 완성하는 것이자,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는 형상시집의 마지막 시에서도 두드러진다.

<죽음은 위대하다./ 우리는 입에 웃음을 띈/ 그의 것일 뿐이다./ 우리가 삶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마구 울기 시작한다.> - 맺음시, 형상시집


<세지도 말하지도 말고 언제나/ 네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주어라. 네가 침묵해도,/ 네 아름다움이 너를 위해 '나는 존재한다' 말할테니./ 그러면 너의 아름다움은 수천 배의 의미가 되어/ 마침내 모든 이에게로 전해지리라.> - 서시 제 2권 제 1 부, 형상시집


<신시집>에서도 여전히 릴케의 목표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사물들의 내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릴케의 해답은 조각이다. 로댕과 마찬가지로, 혹은 미켈란젤로처럼, 릴케는 사물 속에 담겨있는 본모습을 발견하고, 언어라는 정과 끌을 통하여,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돌덩이는 두 어깨의 투명한 추락/ 아래 짤막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으리라.> -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신시집

릴케의 사물시에 관한 그의 시론은 <로댕론> 등에서 그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위대한 영혼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영향을 주듯, 릴케 또한 로댕이라는 또다른 거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조각으로서 시로 그 영향을 승화시켰다. (로댕론의 경우 추후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단 한 번 그의 슬픔은 커지고/ 두 눈은 고통으로 일그러지리라,/ 하찮은 것인 양 무언가를 부인하기까지,/ 아름다운 사물의 파괴자들을/ 경멸하면서 놓아줄 때까지, 그 두 눈이.> - 성 세바스찬, 신시집

시인은 사물을 보고, 깎으며, 의미를 찾고, 파괴하기도, 생성하기도 하는 예술가다.


<이별이라 불리는 것을 내 어떻게 느꼈던가./ 어떻게 그것을 지금도 알고 있을까: 아름답게/ 붙어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내민 다음/ 찢어버리는 어둡고 극복되지 않은 섬뜩한 것을> - 이별, 신시집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스스로만을 담고 있으면서,/ 만약에 담는다는 것이 : 저 바깥의 세계를,/ 바람과 비와 봄의 인내와/ 죄와 불안과 복면을 한 운명과/ 저녁 대지의 어둠과/구름의 변화와 도주와 떠감과/먼 별들의 영향까지를/ 한줌의 내면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면.// 이제 그것은 이 열린 장미들 속에서 아무 근심 없다.> - 장미의 꽃받침, 신시집


<저 위쪽에서는 한 세계의 이미지가/ 눈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인정받는다./ 아주 가끔씩, 남 몰래, 사물 하나가 다가와/ 그의 옆에 선다, 그의 이 이미지 사이로 밀치고>- 개, 신시집.


<형상시집>과 <신시집>은 위대한 관조자의 외면을 향한 태도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걸작이다.

<진혼곡>은 두 편의 장시로 구성되어있는데, 모두 예술가의 죽음에 관한 릴케의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사색이다. 한 편은 그의 지인에 대한 죽음, 다른 한 편은 결코 알지 못한 예술가의 죽음에 대해 다루지만, 알든, 모르든, 예술가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기에, 릴케는 시인으로서 누구보다도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가 만물과 함께해야 할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도 깜짝 놀랐고, 이젠 경악이 더 이상/ 당치도 않은 지금까지도 당신은 경악을 느끼고 있어요;> - 어느 여자친구를 위하여, 진혼곡


<마리아의 생애>은 성모 마리아에 관한 연작시들이다. 이 부분에 관해선 특별히 더 할 말은 없다. 그저 성숙한 시인의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이며 빼어나다.

<위대함이란 무언가? 모든 척도를 거슬러,/ 모든 척도를 지우며 그분의 곧은 운명은 간다,/ 별조차도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 보아라, 이 왕들은 위대하다.> - 그리스도의 탄생, 마리아의 생애

<네 스스로 괴롭지 않니, 네 사랑스런 계곡을/ 그렇게 망치는 것이? 나의 나약함을 보아라 :/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흐르는 젖과 눈물뿐,/ 너는 항상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 있었어.> -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하기 전에, 마리아의 생애

이러한 사물시의 거장으로 승화된 릴케의 예술은 그의 최고 걸작 <두이노의 비가>로 절정에 달한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께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289
577
604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