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카프카(1) 소송 - 요제프 카의 처형 프로젝트- 프란츠 카프카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작가가 몇 명 있는데, 카프카 또한 그런 작가의 대표자 중 하나다. 이 고통은 난해함과는 다르다. 그저 그가 품고 있는 세계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몇 년만에 카프카의 <소송>을 다시 읽어보았다. 소송, 혹은 심판. 사실 제목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리라 본다. 어찌되었든 이 한 편의 고통스러운 소설은 요제프 카(K)의 소송이자 그의 심판, 혹은 처형에 관한 미완의 이야기다.

<누군가 요제프 카를 모함한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그가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란 급작스런 문장으로 카프카는 요제프 카를 사건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마치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흉측한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듯, 요제프 카 또한 잠에서 깨어나 이유도 알 수 없을 소송에 휘말린다.

그는 누가, 왜 그를 기소했는지도 모른다. 알고자 하지만 그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를 심판하는 판사나 사법부도 결코 알 수 없다. 그저 우중충하고 기괴한 다락방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인채 예심을 받을 뿐이다. 그를 도와주고자 하는 숙부나 변호사, 혹은 화가 또한 그가 결코 알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신부 또한 그저 <법 앞에서>란 우화를 들려줄 뿐이다. 약 1년이라는 그저 무의미한 투쟁 끝에 요제프 카는 결코 알 수도 없을 죄목과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처형된다.

<소송>은 분명 무의미해보이는 상징들로 가득찬 소설인만큼 정말 무한한게 해석될 여지가 열려 있는 그런 소설이다. '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말 그대로 법인가, 아니면 이 사회의 체계인가, 혹은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의미의 도덕이나 결코 닿을 수 없지만 끝없이 추구해야하는 진리, 혹은 신? 카를 돕는 세 명의 여인들, 마치 카프카 본인의 약혼녀들이나 혹은 이브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여자들. 소송이 끝나지 않으며 다른 소송들로 이어진다, 살아있으면 소송이 계속된다는 의미인가? 마치 원죄, 혹은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떨어짐처럼 '소송'은 우리의 존재에 들러붙은 타르 찌꺼기인가?

이런저런 생각의 홍수가 쏟아지지만, 사실 어떤 측면에서도 만족스런 확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텍스트, 카프카가 만들어낸 이 우중충하고 기분 나쁜 책만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왜 <소송>을 읽는 것이 고통의 과정인지조차 사뭇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고통은 요제프 카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리라. 카프카가 쓴 글 한 줄, 한 줄, 요제프 카가 처한 상황 하나 하나가 거리를 좁혀와서,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의 마음을 죄어온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소송>은 이미 시작부분부터 읽는 것의 고통스러움을 보여준다.

소설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지만, 중간은 결코 완성되지 못할 텍스트다. 카프카는 영원히 이 소설을 미완으로 남겼다. 설령 카프카에게 몇 년의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그가 과연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요제프 카는 어찌보면 카프카 본인일 것이다. 마치 인생은 탄생과 죽음만이 정해진채, 계획하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카프카 또한 탄생과 죽음만이 확연하게 정해진 인생이라는 이 책에서 중간단계를 소설로 쓰는 대신, 자신이 끝없이 살아가면서 대신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요제프 카처럼 카프카 또한 다른 의미로 결국 사회에게 처형되었다.

어떻게 보면 요제프 카를 중심으로 한 한 편의 숭고한 그리스식 비극이 아닌가? 요제프 카는 말 그대로 그렇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물이며 약간의 숭고함과 지적임, 그리고 오만함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이미 모든 운명은 정해졌다: 그에게 심판만이 내릴 뿐이다. 그저 빨리 받아들이든, 좀 더 늦추든. 카는 그저 소송에 저항했고, 그의 운명에 저항했으며 결코 늦추는 비겁함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영웅들처럼 그 또한 처형된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과연 카프카가 환상적인 이야기를 쓴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리얼리즘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그가 아닐까? 아무리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든, 요제프가 이유도 모를 소송에 휘말리든, K가 결코 성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카알 로스만이 실종자가 되어버리든, 모든 것은 지극히 현실의 이야기다. 카프카가 정말로 두려운 점은 말 그대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환상을 현실로 가져온데 있다. 이런 카프카를 설명하는 단어는 카프카일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통해, '카프카'를 만들어냈다. 음침한 프라하의 한 작가가 소송과 심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아무리 카프카스러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여길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현실임을 언제나 직시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읽는 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요제프 카의 차이점이 대체 무엇인가?

요제프 카는 한 마리 개새끼처럼 처형되었다.


*판본은 솔에서 나온 카프카 전집 중 <소송>이다.

덧글

  • 쿳시 2013/08/06 11:55 # 삭제 답글

    솔에서 변역된거에는 요제프 k가 요제프 카로 나오나보네요 문동에는 k로 되있던데 어떤게 더 정확한건가요?
  • JHALOFF 2013/08/06 12:58 #

    K의 발음이 '카'라서 요제프 카(K)로 번역했더군요. 사실 별 차이는 없을겁니다. 요제프 케이, 이러듯이 독일 발음으로 요제프 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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