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카프카(2) 실종자 - 아메리카에서 사라지다 프로젝트-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 혹은 <아메리카>는 말 그대로 카알 로스만이 아메리카, 미국에서 실종되는 기나긴 미완의 과정이다.

카프카는 결코 끝을 맺지 않았지만, 독자는 막스 브로드가 예상한 결말, 오클라호마 극장에서 취직한 후, 가족과의 재회하는 행복한 결말과는 달리, 카프카가 예상한 결말, 카알 로스만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결말, 말 그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실종되어버리는 로스만의 최후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카프카의 모든 작품들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것은 모두 괴로운 세계이자 현실을 그리며 어떤 단편이라도 놀랄 정도로 다양한 해석과 한가지 해석이 공존한다.

카알 로스만의 추방 자체는 그리 중요한 점은 아니다. 그는 작품에서 총 3 번의 추방, 그리고 결코 쓰여지지 않은 미완의 추방까지, 끝없이 추방당한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카알 로스만은 하녀에게 유혹당하여 임신시켰단 이유로 부모로부터, 유럽으로부터 추방을 당하여 미국으로 온다.

또한 미국에서 만난 숙부가 지정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단 이유만으로 숙부와 뉴욕으로부터 추방된다.

다시 그는 호텔에서 일하게 되지만,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단 이유로 다시 호텔로부터 추방된다.

이러한 추방의 과정에선 언제나 엄격한 심판자로서의 아버지와 그를 애도하지만, 힘은 없는 연약한 어머니로서의 상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는 말 그대로 이브인지 모르겠다. 유혹자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애인으로서의 모든 총 집합.

<실종자> 속 미국의 세계는 현실의 미국의 세계라 보기는 힘들다. 그저 '아메리카'는 거대한 현실 속 상징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카알 로스만이 이 아메리카에서 언제나 실종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메리카가 요구하는 것을 맞추지 못하는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소설 자체는 로스만의 악몽과도 같다. 현실적이기에 오히려 더욱 몽환적이다. <실종자>에서 그 누구도 벌레로 변신하거나, 단식을 하거나, 소송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다. 하지만 카프카가 그려내는 로스만의 실종 기록은 한 편의 거대한 악몽의 기록이다.

요제프 카와 달리, 그는 무죄를 선고받은 자이지만, 유죄든, 무죄든, 카알 로스만과 같은 인간에게 심판은 필연적이다. 그는 단순히 아메리카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알 로스만은 스스로를 실종시키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적응해야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언제나 자신, 카알 로스만으로 있고 싶어한다. 아메리카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이 이민자의 악몽과도 같은 미국의 기록은 어떤 면에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에서 절망을 발견한 수많은 이민자들의 현실의 기록으로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사실 카알 로스만이 아메리카를 찾아가지 않았어도, 그의 실종은 언제나 계속 될 것이다. 이 세계는 그저 아메리카의 연장선에 불과하기에.

<소송>과 달리, <실종자>는 그 끝을 맺지 않는다. 그저 중간에서 모든 것이 멈춘다. 말 그대로 카알 로스만은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미완의 실종이지만, 우리가 카알 로스만의 고통을 느끼기엔 충분하며 카프카의 세계를 불안한 눈으로 보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카알 로스만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테니까.

*판본은 솔에서 나온 카프카 전집 중 <실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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