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카프카(3) 성 - 성 앞에서 프로젝트- 프란츠 카프카


언제나 나에게 카프카의 최고 걸작은 <성>이었다. 이것은 내가 <성>을 직접 읽기 전부터 어렴풋이 느껴왔던 것이다. 처음 카프카의 장편들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때, 어떠한 근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이 카프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여겼다. 그 후 그 근거없는 믿음은 확실해졌다.

여기 <성>이 있다. 이건 소설도, 악몽도, 현실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거대하고 우중충한 우화다.

측량사 K, 카프카의 K, 이제 카프카는 주인공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조차 그만둔다. '요제프'나 '카알'이란 이름마저 부여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측량사 K는 성의 측량을 위해 초대받아 마을로 온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K는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요제프 카처럼 유죄를 선고받은 것도 아니며 카알 로스만처럼 추방되는 존재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당당히 초대를 받아 성에 입장할만한 권리를 지닌 인물이며 스스로가 원하면 마을과 성을 떠나는 것조차 허락된다. 그렇지만 K는 결국 요제프 카나 카알 로스만과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성이란 무엇인가? 결코 제대로 등장하지 않으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연스레 성은 여러가지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성은 성이다. 성은 이 작품을 지배하는 무대이자 인물들의 정신세계에 크게 자리잡은 의식이다.

마을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하나하나 무언가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 언제나 한 번은 이런 일련의 인물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언제나 성을 읽고 나면, 피곤함에 결코 정리를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저 K의 악몽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다.

K는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이긴 하다. 그가 과연 현대의 인간을 상징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오만하며 신경질적이며 그와 정반대로 친절하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어쩌면 그저 K는 카프카라는 특이할 수밖에 없는 정신의 상징으로만 만족하여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카프카라는 작가에 대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나의 기준에서 카프카라는 작가를 어디에 위치해야할지 아직까지도 정하지 못하겠다. 그는 분명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들에 속하는 작가는 아니다. 이는 간단하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 일말의 즐거움조차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즐거움은 소설을 읽을 때의 즐거움이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을 읽는 것을 좋아하며 조이스조차 퍼즐을 푸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의 이야기 자체를 읽는 즐거움이 있기에 좋아한다.

카프카는 어쩌면 고통만이 가득한 그런 작가다. 그에게 읽기의 즐거움은 없고, 읽기의 고통만이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어쩌면 '즐거움'과는 무관한지도 모르겠다. 마치 마조히스트처럼 그는 고통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그런 작가다. 마치 스스로 고행을 하는 수행자들처럼, 어쩌면 카프카의 작품은 일련의 고행의 과정일 것이다.

K에게 구원은 있는가? 이 미완으로 끝나버렸기에 완성이 되어버린 작품은 결코 제대로 그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프카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K의 최후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에게 직접적인 심판이 있든, 없든 이미 K는 성 앞에서 성의 심판을 받은 존재다.

K가 임종을 맞이할 때, 성이 그를 비웃듯, 그에게 성 안으로 들어옴을 허락하리라.

*판본은 솔에서 나온 카프카 전집 중 <성>이다.

덧글

  • 쿳시 2013/08/06 11:52 # 삭제 답글

    쟐롭님은 하루에 몇시간정도 책읽으셔요? 정말 빨리많이 읽고 서평 올리시는 모습을보면 책을 벽지로만 쓰고있는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군요 ㅠ
  • JHALOFF 2013/08/06 12:57 #

    좀 불규칙한 편이라서 확답은 못 하겠네요. 요즘 번역이라 많이 읽고 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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