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총통각하> - 실패한 뮤즈의 계시 독서일기-소설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배명훈 작가의 뮤즈인 총통 각하는 MB다. 다만, '나의 뮤즈' 총통께서는 음유시인들의 아름다운 무사이와는 달리, 배명훈에게 열정만 주셨지, 영감을 빼뜨린 것 같다. 참으로 뮤즈 실격이 아닐 수가 없다. 열정만 있는 예술품은 추레하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허무주의자이자, 인류혐오자로, 모두를 똑같이 증오한다는 점만 밝히겠다. 그저 증오의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내가 이 단편집을 비판하는 주 요인이 단순히 총통에 대해 바치는 작품이라서가 아니란 점이다. 총통이든, 수령이든, 누구에게 바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잘 쓰여진 작품이라면 좋을 뿐인데. 그렇지만 <총통 각하>는 그런 잘 쓰임의 미학이 없는 그저 열정만 있는 그런 작품이다.

당연히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배명훈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비교할만한 것은 <타워>다. <타워>는 어떤 면에선 좀 구린 풍자도 있었지만, 빈스토크란 세계 자체는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꽤나 흥미를 끌만했다. 만약 <타워>를 읽은 독자라면, 꽤나 <총통 각하>도 기대해 봄직할 만하다. 문제는 작가는 독자를 배반한다.

물론 작중 군데군데 등장하는 '총통'은 모두 같은 총통이라 할 수는 없으며, 이것을 꼭 배명훈의 뮤즈와 직결할 수 있는 캐릭터라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냥 구리다. 
<타워>와 달리, <총통 각하>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다루는 연작이라기보다는 그저 비슷해보이는 세계들을 다루는 단편집이다. 문제는 그것도 구리다.
사건이 매력적인가? 구리다. 인물들이 매력적인가? 구리다. 풍자는 재치있나? 구리다. 무의미한 열정만 있을 뿐이다.

내 안에서 배명훈은 작가로서는 고인으로 판정났다. <사망하셨습니다- 삐이이이->
만약 작가 배명훈이 부활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부활처럼 신성시되야할 것이다. 죽은 작가가 살아돌아올리는 없으니까.

만약 그가 되살아나는 기적을 보인다면, 나는 그를 숭배해야겠지만, 나는 자연법칙의 위배가 일어날 것이란 믿음을 가진 자는 아니므로 글쎄올시다.

-추가: 대부분이 <타워> 이전에 쓰였다길래, 아직 환자의 심장은 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의 궤도>가 최종판단을 내려주기를.



덧글

  • SM6 2013/09/04 18:36 # 답글

    신의 궤도도 개인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웠던 터라(물론 총통각하보다는 훨씬 나았지만.)...은닉도 그렇고 배명훈씨는 장편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 JHALOFF 2013/09/04 19:43 #

    그런 평도 많더군요. 장편도 좀 많이 그렇다고;;
  • 요사리안 2013/09/05 19:02 # 삭제 답글

    비유하기엔 워낙 거물이다만 그냥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자는 취지로, 헤밍웨이가 비평가들한테 그렇게 까이다가 나왔던게 노인과 바다잖습니까. 사망선고까지는 너무 가혹한 감이 있어요.
  • JHALOFF 2013/09/05 21:17 #

    모르겠습니다, 뛰어넘는 무언가를 내놓는다면 살아나겠지만, 그냥 지금은 죽은걸로 치고 싶어서요. 불확실한 미래까지 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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