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 <성 앙투안느의 유혹> 독서일기-희곡



플로베르의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분명 대문호 플로베르가 꽤나 평생에 걸쳐 추구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그의 인생의 역작은 결코 쓰여지지 않은 '나선'이지만.) 특이하게도 총 3번에 걸쳐 쓰여졌으며, 총 3 종류의 판본이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개작이 아닌, 처음부터 다시 쓰여진 것이라, 각 판본마다 차이가 상당하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열린책들이 <성 앙투안느의 유혹> 제 1 판을 고집한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애초에 다른 나라에서는 1판은 번역된적이 없다고 카는데, 그런 것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머지 판본이 어떠한지는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읽기 전까지.

가장 큰 문제는 난잡하다는 점이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며 말 그대로 플로베르의 백과사전식 지식이 쏟아져나온다는 점에서는 <부바르와 페퀴셰>를 연상케하는 등 꽤나 플로베르적이지만, 난잡하긴 하다. 이는 아직 덜 성숙한 대가의 습작 정도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플로베르가 처음 '완성'한 작품이라하니.

소설보다는 희곡으로 보는 편이 맞다. 물론 결코 상영하지 못하는 그런 희곡이지만. 

내용은 말 그대로 성 앙투안느의 저 유명한 유혹이다. 나도 같은 주제의 회화 몇 점을 알고 있으니 상당히 자주 쓰이는 주제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괴테와 파우스트를 연상케도 한다. 특히 둘 다 인형극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결국 앙투안느 한 사람의 내면을 다룬다. 비록 그가 수많은 환상과 악마들, 유혹자들, 이교도들을 보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의 내면에 있는 또다른 자신이자 유혹자로서의 앙투안느들이다. 이야기는 유혹으로 시작하여, 결코 끝나지 않을 유혹으로 끝난다. 플로베르는 상당히 종교적인 작가이지만, 그는 어느 면에서는 순교자스럽다. 아니, 기독교스럽다. 구원은 결코 지상에 있지 않다. 지상은 구원을 향한 고난의 과정일 뿐이다. 지상에 있는한 유혹은 계속된다. 그저 앙투안느처럼 고행으로 다스려야할 뿐, 아니 참아야할 뿐.

특이할 만한 점은 플로베르는 제 8의 죄악으로 '논리'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말이다. 종교에서, 정확하게는 신을 믿는 자에게 논리는 일종의 유혹이다. 논리보다 믿음이 앞서야 믿을 수 있다. 플로베르는 이 점을 대가답게 상당한 통찰을 발휘한다. 그가 만든 논리는 강력하며, 유혹적이다. 그럼에도 앙투안느는 이겨내야한다, 아니 믿어야한다.

난잡하다는 점만 빼면, 플로베르의 성찰이나 내면의 묘사, 그리고 그의 무지막지하게 방대한 박물지적 지식으로 꽤나 눈이 즐거운 작품이긴 하다. 
제 2 판이나 제 3 판도 영역이라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이 대가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보고 싶다.

덧글

  • 쿳시 2013/09/06 21:43 # 삭제 답글

    캬 열린책들 표지 멋지네요
  • JHALOFF 2013/09/07 15:53 #

    ㅇㅇ 표지는 좋습니다
  • Wachtraum 2013/09/08 21:10 # 답글


    초기작이군요. 저도 함 읽어보고 싶네요.
    얼마전 감정교육을 다시 보았는데, 확실히 보봐리가 역작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움찔움찔 하면서 읽었슴다.
    될대로 되란 식으로 쓴 조연 팰르랭에서조차 속임이 없는 것,
    존엄함에 대한 단 한 방울의 기대없이,
    그러나 전혀 냉소적이지 않은 정확함과 신랄함으로 탄복을 주는 것이.

    제 8의 죄악이 논리라는 그 대목은, 까라마에서 아마도 알료샤의 챕터였던 것 같은데,
    최고의 발심자는 리얼리스트라는 내용을 연상케 하는군요.

    오! 그러고보니 도스토, 플로베르 모두 1821년 생!

  • JHALOFF 2013/09/09 01:09 #

    어떤 면에선 비슷하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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