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네(1) 발코니 - 현실과 환상의 경계 독서일기-희곡


장 주네의 <발코니>는 꽤나 독특한 희곡이긴 하다. 우리는 처음 시작의 몇 장면을 통해, 관계의 역전을 본다. 주교나, 장군, 판사 등으로 '분장'한 인간이 여자를 향해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마치 SM 플레이를 연상케하는 행위를 하지만, 곧 그 관계는 역전이 되어, '창녀'가 주인이 되고, 그들이 노예가 된다.

물론 이것들은 단순한 역할극에 불과하다. '판사', '장군', '주교' 등은 실제 세계의 '판사', '장군', '주교'가 아니며, 그저 상황극에 참석한 손님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창녀와 놀려는 익명의 누군가들이다. 

'발코니'는 말 그대로 이런 상황극을 즐기려는 자들에게 현실을 잊고, 환상을 연기하게 해주는 독특한 공간이다. 물론 희곡 자체는 단순히 발코니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바깥 세계에서 문제가 생기며, 말 그대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그 역할 그대로 현실로 나와야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은 실제나 환상에서의 역할이 같은 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가 꽤나 중요한 존재가 되버린다. 그의 최후 등에서)
그들은 여왕의 일행을 연기하고, 점점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서 주네는 상당히 직접적으로 중심 주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바로 '죽음'이다. 

주네의 극들이 부조리극으로 분류된다면, 주로 이런 죽음 자체를 다루며 관객들에게 그것을 위협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듯, 죽음과 삶이 경계도 불분명해지고, 어쩌면 극중 인물들은 사실 죽음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착가에도 빠져든다.

어떤 면에선 발코니 내의 이르마의 집 자체가 성적인 것과 죽음의 결합이 아닌가도 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짧게 들었다.

단순히 무대 속 세계와 무대 속 무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주네는 무대와 관객들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쩌면 극중 인물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고,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꽤나 즐겁게 읽을만한 희곡이긴 하다. 즐겁게 읽는다는게 좀 이상하지만.

어떻게 보든 부조리하다.

추가) 덧붙임: 주네가 쓴 <발코니>에 관한 공연 설명도 꽤나 참고할만하다. 더불어 결국 우리는 발코닉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인지 사실 모른다. 적어도 <발코니>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가 될 수 있다.


덧글

  • Wachtraum 2013/10/01 20:13 # 답글


    오, 전 이거 한국서 연극으로 보았...
    여유있으심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그림과 이에 대한 르네 마그리뜨 패러디 그림을 함 보시길.
    결국 회귀점은 19세기 파리라는,
  • JHALOFF 2013/10/02 01:55 #

    마네 꺼는 어디선가 봤고, 마그리뜨 꺼는 처음 봤는데 독창적이네요. 확실히 두 그림과 관련이 꽤나 있어보입니다. 참고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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