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노 슐츠 <악어들의 거리> 外 - 미로의 거리 독서일기-소설



브루노 슐츠는 흔히 폴란드의 카프카라 불리는 작가인데, 단편 한두편 정도만 예전에 따로 읽어본 것을 제외하면, 작품집 자체는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애초에 단편집 2권 밖에 남기지 못하고 '살해'당한 작가라 작품 자체는 많지 않은 편이다.)

슐츠의 작품 세계를 흔히 고골이나 카프카를 연상시키긴 하는데, 흔히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만, 실제로 보면, 서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일 수 없는 작가들처럼, 슐츠 또한 고골이나 카프카라고 할 수는 없다.

슐츠의 작품에서 환상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현실에서 벌레로 변신하는 카프카류의 단편과 달리, 슐츠의 환상은 말 그대로 몽황적이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환상이라기보단, 꿈 속에서의 환상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변신>보다는 <소송>이나 <아메리카> 쪽이다.

단편들이지만, 모든 단편은 '나'인 프란츠를 중심으로 한 가족에 관한 단편들이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하녀 아델라가 슐츠의 세계에서 핵심적인 인물이고, '나'는 오히려 단순히 관찰하는 서술자에 가깝다.

카프카의 강압적이고 신적인 아버지와 달리, 슐츠의 아버지는 비록 영향력은 있지만, 오히려 나약하다. 현실적이고 위압적인 아델라에게 말 그대로 복종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이 아버지란 인물 자체는 매우 몽환적이라, 발명가이자 시인, 혹은 예술가이고, '데미우르고스'적인 존재다. 그는 철학자이자, 선과 악을 탐구하는 이상주의자이고, 현실인 아델라에게 빌빌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특히 그의 일련의 '강연'들은 꽤나 슐츠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일종의 해설서처럼 보여진다.

눈여겨볼 것은 슐츠는 거의 모든 세계를 일종의 '미로'로 만든다는 점인데, 이 점은 악어들의 거리나, 계피색 가게로 찾아가는 길목이나 심지어 요양원이나 광장, '나'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도시 자체 등 말 그대로 열려있어야할 공간들을 협소하고 단절된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어쩌면 유대인들의 게토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자체는 사실 성격을 정의하기 꽤나 힘들다.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희극적이면서도, 오히려 그로테스크하다.

꽤나 유대교적이며, 종교적인 상징들과 미로와 같이 단절되고 답답한 세계, 그리고 말 그대로 정신이 분열될 듯한 몽황적인 묘사 등등이 모여 굉장히 독특한 색채를 만드는 것은 읽는 행위 자체의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꽤나 즐겁긴 하다. (그는 어쨌든 카프카류 작가니까.)

슐츠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더러 삽입되있는데, 꽤나 기괴하긴 매한가지다.

꽤나 문학을 즐긴다면, 한 번 쯤은 접해보면 좋을 작가다. 아니면 카프카 같으면서도 다른 색채를 원한다면.




덧글

  • 지노 2013/10/07 22:11 # 답글

    유령이웃 지노 입니다. 작품집이 최근 번역됐더군요. 기대되는데요.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 JHALOFF 2013/10/08 02:04 #

    ㅇㅇ 예전엔 두 권으로 번역되었다가 을유에서도 작품집으로 통째로 번역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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