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우리 선조들> 3부작 - 우화를 통해 인간을 보여주다 독서일기-소설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 선조들> 3부작은 그의 <반 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기사>를 묶어놓은 장편집이다.
<반 쪼가리 자작>은 말 그대로 온전한 선과 온전한 악으로 분리된 자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칼비노는 선과 악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전한 악이든, 온전한 선이든, 이미 불완전한 반 쪼가리인 점에서부터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온전한 인간이 될 때야 비로소 자작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무 위의 남작>은 나무 위로 올라가, 한평생을 나무들 위에서 보내고, 언제나 지상을 사랑했으며, 결국 하늘로 떠나가버린 남작의 삶을 그린 장편이다. 여러 실존인물들과 엮으며 칼비노는 마치 실제로 살았던 인물의 가상의 전기를 들려주듯 이야기를 펼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 위' 즉 높은 곳에서 누구나 다 작게 보이는 공정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을 내려다본다는 점인데, 이런 점은 왠지 모르게 디오게네스를 연상케한다. 이 점은 나폴레옹과 남작의 만남에서 패러디되기도 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가장 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장편인데, 말 그대로 샤를마뉴의 '존재하지 않지만, 의지로 갑옷 안에 머무는 기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존재하지만, 자기 자신이지 않는 하인이나, 존재하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고결한 그를 사랑하는 브라다만테,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려는 기사 등등 이야기는 말 그대로 '존재'의 이유를 둘러싸고 진행된다. 마지막은 어떤 면에선 육신과 정신의 결합인 것처럼 끝을 맺는다.

세 이야기 모두 일단은 '과거'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이지만, 전부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도배된 현재의 이야기다. 세 이야기의 원류 모두 볼테르와 그의 캉디드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캉디드가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는 선언을 하는 것과 달리, 어떤 점에서 칼비노는 다른 방향으로 의문만을 던진다.

물론 캉디드든, 우리 선조들이든 그러한 의문은 언제나 유효하다.

덧글

  • 쿳시 2013/11/07 19:21 # 삭제 답글

    저 구글두들 우주만화에 나오는거 아닌가요?? 구글 진짜 센스쩌네요
  • JHALOFF 2013/11/07 22:38 #

    ㅇㅇ 검색해보니 나오더라고요.
  • 요사리안 2014/01/15 01:08 # 답글

    반쪼가리 자작,나무 위의 남작 재미있더라구요 딴작가들은 복잡한걸 쓴다면 이작가는 주위에 있는걸로 글을 쓰는거같아여 한마디로 술술 익히는 책이라서 좋았어여. 주인공들이 복잡한 성격대신 성격의 한면만 보여주는게 좋더라구요
  • JHALOFF 2014/01/23 08:59 #

    아무래도 '우화'스러운 면 때문에 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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