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희 <블랙스틸 어쌔신> - 그가 돌아왔다 감상-라이트노벨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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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신이 돌아왔다." 케인즈는 비트겐슈타인이 귀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적어도 이 유명한 말은 한국 라이트노벨 계에서는 "김월희가 돌아왔다."와 동급인 말일 것이다. 말 그대로 '김월희'가 돌아왔다. 김-월-희-라는 석자는 한국 라이트노벨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하면서도 악명 높은 이름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한국 라이트노벨 계가 낳은 사드일 것이다. 한쪽에서 그는 신으로 추앙되며 다른 한쪽에서는 전범을 미화하는 악마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적어도 '김월희'가 유례가 없는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작가임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렇기에 우리는 신도, 악마도 아닌 '김월희' 자체를 보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여기 그의 신작 <블랙스틸 어쌔신>이 있다. 그의 세계가 낳은 또다른 작품이자, 우리로 하여금 '김월희'가 완전히 죽지 않고 다시 재림하였음을 알려주는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부족한 솜씨로나마 이 작품에 대해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1. 줄거리

<블랙스틸 어쌔신>은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으며 여느 김월희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부조리한 세계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일단 줄거리를 요약하기 앞서 작품의 전반적인 세계를 살펴보자. 과거 '탐정'과 '암살자'가 서로 싸우고 있었고, 암살자는 '악'을 수행하려는 악한 집단이며, '탐정'은 이러한 암살자들을 막기 위하여 '악'까지 이용하기도 하는 그런 암살자에 대한 암살자 집단이다. (무언가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면 일단 넘어가자) 

그러나 <블랙스틸 어쌔신>의 세계는 탐정 대부분이 죽고, 오직 여주인공인 탐정공주 유나 홀로 싸우는, 작품 속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악이 승리해 버린 세계"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악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싸움이 계속되는지, 그리고 왜 세계가 굳이 악으로 물들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리고 사실 '탐정'이나 '암살자'는 그냥 말 그대로 '명칭'이며 실제 탐정이나 암살자와는 무관하다 (김월희의 언어철학적인 면모가 매우 돋보이는 부분이다.)

주인공 레이는 고아 출신이지만, 양부모 밑에서 그럭저럭 자랐고, 현재는 홀로 자취중인 상태인데,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흑철'이라는 검을 택배로 받게 되고, 그 검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반의 아이돌이자 차가운 여성 유나가 집으로 찾아와 검을 내놓으라면서 쌍권총을 꺼내들고, 이에 레이는 태연하게 중2병 환자냐 드립을 치다가, 갑자기 검으로부터  무언가 소리를 듣고 각성하여 흑철을 뺏으려고 총을 발사한 유나의 총알을 검으로 가볍게 방어하고, 이에 유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돌아가며, 주인공도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냥 있는다. 

다음날인지 하여튼 주인공은 검을 메고 등교를 하고, 옥상에서 유나를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데 별 중요한 이야기는 없고, 갑자기 유나의 말에 의하면, 레이가 흑철을 사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는데, 늦었으므로 이제부터 레이와 자신이 같이 싸워야한다는 소리를 한다. 주인공도 그냥 납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약간의 일상 장면을 보여준 후, 갑자기 길 한모퉁이에서 암살자 집단이 나와서 유나와 싸우는데, 아무래도 서로 '다른 세계'라는 이유에서인지 일반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어쩔 수없이 레이는 유나를 도와 같이 싸우고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렸음을 깨닫고, 같이 암살자들과 맞서 싸우기를 결의한다.  이것이 1장의 내용이다.

그 후로는 그다지 길게 쓸 필요는 없는데, 유나는 간략하게 이미 '악이 승리해 버렸다고' 알려주며, 세계를 지배하는 마스터 어쌔신 5명은 회의를 열고는, 마스터 어쌔신 중 하나인 '암살공주' 마리아를 보내어 유나와 레이를 처리하게 한다. 마리아는 갑자기 학교로 와서 한바탕 싸우고, 레이와 유나는 도망치기 위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김월희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매트릭스'에 나오는 고속도로 추격전을 찍으며 여러 가지 짓을 벌인다.

그 후론 갑자기 공격이 멈추었는지, 레이와 유나는 수련을 하고, 좀 싸우기도 하고, 갑자기 뜬금없이 암살자들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하고, 도와줄 이도 없는 상황에서 사랑의 위대함을 깨달았는지 데이트를 하고, 그러다가 결국 유나는 붙잡히고, 레이는 탐정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는데, 갑자기 아마 마스터 어쌔신 중 한 명인 사람이 레이에게 와서, 암살자가 되는 가면을 주며 흑철과 흑철의 원래 주인의 비밀을 알려주고, 레이는 사랑하는 유나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면서 스스로 암살자 '블랙 스틸 어쌔신'이 되어 조종당하는 유나와 싸우다가 사랑의 힘으로 일깨우고, 조무래기 악역을 죽이고, 둘이서 같이 이 '악이 승리해 버린 세계'에서 같이 싸우자고 다짐한다.

물론 이러한 명작은 줄거리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설령 모든 줄거리를 상세하게 요약해도 책을 읽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2. 주인공 레이

아마도 주인공이자 흑철을 사용하는 레이는 김월희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전형적인 주인공일 것이다. 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받아들이는데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것 뿐인가, 그는 쉴새 없이 유나에게 가슴 사이즈를 물어보는 드립을 치는 등 작품 속 '유우머'를 담당하는 큰 축 중 하나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란 저 유명한 니체의 경구가 언급되듯, 어쩌면 애초부터 레이 또한 괴물이기에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레이는 베케트의 <몰로이>의 몰로이 이후로 가장 '실패'한 주인공일 것이다. 몰로이가 스스로가 무엇인지 확립하는 것조차 실패하는 주인공이듯, 우리는 작품 속 레이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평범한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언가 암살자로서의 위기 인식도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멋있는 모습이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이며 마치 발정난 수컷처럼, 유나의 거대한 가슴을 향한 리비도만 용솟음친다. 어떤 면에서 그는 성욕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인물로 바꾼 캐릭터다. 아니면, 마치 흑철에 점점 빙의되어 싸운다는 설정처럼, 어쩌면 여러가지 것이 빙의되어 캐릭터의 자의식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설정이 아닐까?

3. 탐정공주 유나와 암살공주 마리아

작품의 부제가 탐정공주 vs. 암살공주인 것처럼, 독자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둘의 대립을 담을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김월희 작가는 오히려 역으로 그런 예상을 깨며 독자를 조롱한다. 암살공주 마리아는 대략 소설 중반 정도까지만 무언가 존재가 느껴지고, 그 이후론 아주 약간 등장은 하지만, 사실상 필자조차 주인공들 이름을 찾으려고 맨앞의 칼러 일러를 보았을 때, 아, 이런 인물도 있었구나,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영압이 사라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살아있으니 후속권에도 나오겠지만. 아마도?) 

김월희 같이 위대한 예술가는 마치 소설이라는 가짜에 싫증을 느껴 독자와 소설 자체를 조롱하기 위하여 갑자기 중요 적대 캐릭터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글 장난조차 마음대로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부조리극의 후예니까.

탐정공주 유나라는 캐릭터도 실상 부조리극 속 쉴새없이 비슷한 말만 반복하거나 무의미한 행동 등을 하는 인물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인물인데, 어떤 면에선 오글거리고, 어떤 면에선 무언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작가가 정해준 몇몇 프로그램에 따라서 상황에 상관없니 행동하는 그런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김월희 작가는 소위 말하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중국어 방 문제와 연관시키려 이런 부조리한 여주인공을 만든 것이 아닐까?)

4. 악이 승리해 버린 세계

독자는 자연스레 작품 속 세계가 부조리하기에, 여러 무의미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작품 속 세계는 '악이 승리해 버린 세계'인가? 암살자들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학살하고, 사고로 위장해서? '선'인지 '악'인지도 불분명해보이는, 오히려 그냥 조폭 끼리의 세력다툼처럼 보이는 탐정 세력이 대부분 죽어버려서? 글쎄, 세계가 5인의 어쌔신에게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굳이 어떤 마스터 어쌔신은 테러를 담당하거나 할 필요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블랙 어쌔신 속 세계는 그냥 평범하지만 그 속에 추악한 일들이 감춰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미 악이 승리해 버린 세계라면 그냥 평범하게 디스토피아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히 묘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의문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작가조차 이런 부조리 세계를 일부러 만들고 별 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의문을 품는 행위야말로, 작가의 의도이자, 미성숙한 독자를 향한 조롱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소위 말하는 세카이계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년과 소녀. 세계의 멸망. 그리고 정작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세계. 등등.

물론 작가는 '신감각배틀'이라는 표어에 걸맞게, 화성인이라면 느낄 법한,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 느끼면 박진감 있게 느껴질 만한 묘사로 싸움을 실감있게 묘사한다. (이 또한 부조리한 장치일 것이다.)

5. 그러나 결국은 사랑

부조리극이 대개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면, 김월희 작가는 그들의 한계와는 달리, 삶에 초점을 맞추며, 선도, 악도 아닌 사랑 그 자체를 선택한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으며 그렇기에 좋다. 뭐 누가 죽어나가든, 어쨌든 내가 꼴리고, 그녀도 나에게 꼴리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위대함이다. 

6. 김월희 월드와의 연관성.

세계를 지배하는 소수의 흑막이라든가, 암살자라든가, 선도, 악도 불분명한 주인공들이라든가, 어찌되었든 남자의 심장과 사타구니를 자극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랑의 위대함이라든가, '탐정공주' 처럼 무언가 이상하면서 부조리한 용어들의 나열이라든가, 뭔가 쌈마이틱한 전개라든가, 김월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블랙스틸 어쌔신>을 반길 것이다. 말 그대로 김월희는 죽지 않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로 그는 돌아왔다.



이제 무엇이 있겠는가? 필자는 1권을 읽었고, 2권을 기다리며 또한 다음달 나온다는 중2병 데이즈 4권도 기다릴 뿐이다.  

"이처럼 완벽한 작가의 책을 읽을 기회가 또 어디 있다고 그러니?"


덧글

  • 네리아리 2013/12/30 19:00 # 답글

    흠좀무!!!
    ㄴ라지만 새해 첫 라노베 시작을 그의 소설로 시작하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 JHALOFF 2013/12/30 19:06 #

    사실 김월희 작가께서 많이 발전하셔서 괜찮은 책입니다. (단호)
  • 게스트! 2013/12/31 04:20 # 삭제 답글

    이번엔 멘붕에 대한 묘사와 색다른 인용이 없어서 아쉽군요!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나봅니다? ㅋㄷ
  • JHALOFF 2013/12/31 11:46 #

    발전을 하는 작가니까욧
  • show 2013/12/31 23:27 # 삭제 답글

    어쨌든 내가 꼴리고, 그녀도 나에게 꼴리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죽음 마져도 초월하리, 결국 꼴리면서 죽을수 있으면 부조리도 비극도 해피해피!
  • JHALOFF 2014/01/01 10:14 #

    최고로 하이한 기분이다앗
  • 라벨 2014/01/02 14:48 # 삭제 답글

    작가분이 암살자를 너무 좋아하셔...
  • JHALOFF 2014/01/03 11:05 #

    ㅎ허허 김월희 월드의 필수요소죠
  • ㅓㅓㅗㅍ파 2014/01/09 01:56 # 삭제 답글

    뭔가 마크밀러의 원티드가 생각나네요 ㅎ
  • JHALOFF 2014/01/23 08:57 #

    ㅎㅎ
  • 산율 2014/01/15 11:58 # 삭제 답글

    일단 시드노벨만사서 시드노벨만을 읽는 전형적인 시드덕후입니다!
    오늘글을 찾아보는건 다름이아니라 여러 블로그에서 이번작 블랙스틸 어쎄신이 의외로 악평을 받고있더군요 ㅠ;
    평가글들을 다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째서인지 저도 별로란생각이 들어버렷더군요
    하지만 다음작은 역시나 재미있을거라 믿고있습니다.!
  • JHALOFF 2014/01/23 08:57 #

    저도 믿습니다.
  • 후카츠노히 2014/03/31 22:17 # 답글

    혼란스럽다...;
  • JHALOFF 2014/04/15 05:18 #

    ㅎㅎ
  • 뭐랄까 2014/12/06 23:57 # 삭제 답글

    고도의 디스 같은 느낌이로군요 ㅋㅋㅋㅋ
  • JHALOFF 2014/12/17 21:51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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