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잡고 잤을 텐데 2권은 어떻게 다시 좋은 라노베가 되었는가? 감상-라이트노벨


<손만잡> 2권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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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책방>은 레스터스퀘어의 많고 많은 헌책방 중 하나지만, 불행히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에 위치하여, 늘상 먼지 쌓인 책만 가득 있는 책방이다. 주인인 에드워드 피셔 씨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거구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육십대 초반의 전형적인 영국 노인이었다. (주인장의 허풍에 의하면, 소싯적에 SAS에 있었다고 한다.) 비록 좁고, 책도 많이 없고, 위치도 좋지 않은 책방이었지만, 나는 이 책방의 단골 중 하나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피셔 씨가 낱권으로 헌책들을 사들인다는 점 때문이다.

영국의 헌책방들 대부분은 헌책을 매입해도, 박스 단위로 사들이기 때문에,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헌책을 파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낱권으로도 헌책들을 사가는 피셔 씨는 정말 가붐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단순히 박스 단위로 사들일 돈이 없기 때문에 낱권으로 사들이는 것 같지만)

나는 다 읽은 <손만 잡고 잤을텐데?!> 2권을 처분하기 위하여 오랜만에 <바벨의 책방>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무더기 속에서 거구의 피셔 씨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형식적으로 인사했다. 피셔 씨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귀찮다는듯이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셔 씨, 오늘은 책 좀 팔려고 왔는데요?"

"이봐, 미스터 J," 그가 말했다. (그는 늘 나를 J라고 불렀다) "자네는 늘 책을 팔러 오는군. 가끔씩은 좀 사가라고."

"제가 원하는 책이 있으면 사겠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 위에 <손만 잡고 잤을텐데> 2권을 올려놓았다. 

피셔 씨는 금테 코안경을 끼고는 책을 조심스레 집어서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초판 부록이나 띠지 모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책의 흠집 하나 없었으며 일러스트들 또한 완벽했다. 거의 새것과 다름 없었으니 피셔 씨도 꽤나 값을 쳐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피셔 씨는 다시 책을 카운터에 내려놓으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안 팔릴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자네, 저번에도 이거 1권을 나에게 팔았잖아, 그렇지?"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게 악성재고가 되었거든. 한 권도 안 팔렸어."

"1권 자체는 솔직히 재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2권은 달라요."  그럼에도 피셔 씨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뭐가 다르지? 나도 1권은 읽어봤는데, 별로던데." 

"2권은 다릅니다." 나는 '2'를 강조했다. 반드시 이 2권을 팔아야한다.

"그럼 증명해봐." 피셔 씨는 철학도에게 가장 끔찍한 말을 내뱉으며 웃음을 지었다. 제기랄 망할 노인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응하기로 했다. 나는 을이고, 그가 갑이다.

"2권은 확실히 1권보다 전반적으로 발전된 책이에요. 1권의 그 모든 것을 파묻을듯한 드립도 적절하게 줄어들었고, 1권에서 그 쩌리 같은 캐릭터들도 어느 정도 비중이 주어졌고, 1권의 갑자기 시리어스해졌다가 확 해결되는 그런 부분도 2권에선 어느 정도 해결되었어요. 1권보다 발전된 2권이라면 사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은 1권과 비교할 때의 의미잖아. 2권 자체를 볼 가치는 없다는건가?"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2권 자체로만 판단했을 때도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에요. 물론 제일 하드캐리하는 것은 역시 일러스트지만. 2권은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표현하면 될까요? 물론 전반적인 구조나 해결 방식 등은 1권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서 이런 부분을 싫어하면 싫어하겠지만, 그 과정이 1권보다는 납득이 간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요."

"흐음, 그래도 별로 흥미가 땡기진 않는데?"

"자, 보세요, 여기 표지! 영국식 메이드!" 나는 표지 속 진지혜를 가리키며 외쳤다.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서 좀 두근거리긴 했는데, 사실 개인적으론 진지혜는 크게 임팩트는 없었어요. 초중반까진 크게 나쁘진 않았는데, 뭔가 '새로운 캐릭터'로서 작품 속 '새로운 사건'을 일으켰단 생각은 없었고요. 작중 갈등-해결에서 진지혜의 부분은 좀 불필요하지 않았나 란 생각도 좀 들었고. 하지만 1권에서의 조주연들이 그 부족한 부분은 좀 만회해서 괜찮다고 봅니다! 보세요, 괜찮은 공상과학!" 

그 순간 피셔 씨는 카운터 밑에서 권총을 하나 꺼내고는 내 입에 총구를 쑤셔넣었기에 나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한두번 겪어본 일이기에 크게 당황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S.F. 라네, 젊은이."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그는 총구를 거두었다. "계속 설명해보게."

"아, 또, 또," 머리를 긁적였다. "아, 여기 초판 부록으로 같이 나온 단편들도 좋아요. 1권 부록에서 작가의 단편은 좀 별로였는데, 2권에선 좀 더 유용한 정보들이 나와서 좋았고, 모베 작가의 단편도 좋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사야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는데?"

"아 좋아요, 스포일러지만, 말하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2권 자체는 1권에 비해 발전했지만, 사실 뭔가 큰 임팩트는 없었어요. 하지만 반전이 하나 있죠. 작가 후기 뒤에 차후 권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꽤나 괜찮은 것을 하나 알려주죠."

"그게 뭐지?"

"세연이가 2년 후에 죽는다는 것." 그 순간 난 피셔 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뭐...라고?"

"아, 아니, 제 말은 미래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죠. 물론 '죽는다'의 충격은 꽤 크긴 한데, 사실 1권과 비교해야할 것 같은 필요성도 느껴서, 좀 쌩뚱맞다는 생각도 든다고 해야하나? 아니, 뭐 일단 2권 끝날 때 단서를 준 것이니까, 3권에서 작가가 잘 풀면 되겠으니, 그건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근데, 뭐하시는겁니까, 피셔 씨?" 내 말대로 피셔 씨는 갑자기 내 말을 듣지 않고는 카운터 뒤에 위치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군복을 입은채 각종 총기들로 무장하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세연이가 죽는다는 것은 사실이지?"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네, 뭐, 일단 스포일러론. 근데 3권에선 어떻게든 바뀌겠-" 그러나 그가 갑자기 멱살을 잡았기에 난 말을 끝내지 못했다. 노인의 힘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고 강력한 악력으로 멱살을 잡고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렸기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잘들어, 세연이가 죽었어. 난 한국으로 간다."  그러면서 그가 나를 바닥으로 내팽겨쳤다.

"잠깐, 피셔 씨, 설마 이 책에서 세연이를 좋아했던겁니까?"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작가를 만나러 난 코리아로 간다." 

그는 이 말만을 남긴채 나와 책방도 내팽겨치고 사라졌다. 나는 팔지 못한 손만잡 2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몇 번이고 다시 바벨의 책방을 찾았지만, 아직까지도 피셔 씨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덤으로 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두려워 가급적 노블엔진과 관련된 소식은 아직까지도 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듣기론 총기를 든 괴한이 사무실을 테러했다더라, 등의 흉흉한 소문이 있었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에,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어쩌면 3권이 나오지도 않을 이 불행한 2권, 1권보다 훨씬 발전되었기에 더욱 불행한 2권를 눈앞에 두고 나는 한숨만 쉬었다.

3줄 요약:
1. 2권은 1권보다 좋다.
2. 2권은 책 자체로도 괜찮다.
3. 역시 유나물 하드캐리.


덧글

  • 게스트! 2014/02/05 00:01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뷰가 책보다 찰지구나 ㅋㅋㅋㅋ
  • JHALOFF 2014/02/09 02:09 #

    감사합니다.
  • Scarlett 2014/02/05 11:41 # 답글

    첫 문단만 보고 제가 제목을 잘못 봤나 싶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JHALOFF 2014/02/09 02:09 #

    팩션이죠 (웃음)
  • zzzzz 2014/02/10 19:10 # 삭제 답글

    잘들어, 세연이가 죽었어. 난 한국으로 간다. 에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동이 느껴졌습ㄴ다.
  • JHALOFF 2014/02/12 07:10 #

    감동적인 모습이었죠 (눈물)
  • ㅇㅇ 2014/02/16 17:30 # 삭제 답글

    후기에 나온것도 전 약간 충격이 제예상을 뒤집었어요....
  • JHALOFF 2014/02/16 20:05 #

    ㅎㅎㅎㅎ
  • tanatana 2014/02/26 22:27 # 삭제 답글

    갠적으로 1권은 뜬금없었다면, 2권은 재대로 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JHALOFF 2014/02/27 08:03 #

    2권이 많이 발전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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